4월 9일은 좌절의 시간이었다. 국회의원 선거에서 당선된 사람보다 몇 배나 많은 떨어진 사람들, 낙선 후보를 지지한 엄청난 수의 유권자들. 이들은 사흘이 지난 오늘까지도 고통과 분노로 마음을 추스르지 못하고 있을 것이다. 세상이 마음대로 되지 않기 때문에 누구든 좌절은 피할 수 없다. 운명의 여신은 행운만 선사하지 않고 불행과 재난도 주는 것이다. 이렇게 좌절은 누구나 언제든 경험할 수 있기 때문에 우리는 항상 좌절에 대비해야 한다.
좌절에 대한 첫 번째 대처는 욕망을 제거하는 것이다. 좌절의 기본 구조는 욕망과 현실의 충돌이다. 우리의 의도가 현실의 벽에 부딪히면서 좌절은 일어나는 것이다. 따라서 좌절이 일어나지 않게 하려면 욕망을 품지 않으면 된다. 국회의원이 되려는 야망을 갖지 않았다면 낙선의 좌절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만약 당신이 선거일 밤에 집에서 느긋하게 개표방송을 시청할 수 있었다면 선거에 출마하지도 않았고, 열렬히 지지하는 후보도 없었기 때문이다.
욕구를 제거하여 좌절을 극복하는 방식은 널리 퍼져 있다. 불교 사상의 해탈은 모든 종류의 욕망을 제거하는 것이다. 돈, 권력, 명예, 지식, 사랑, 이 모든 것에 대한 마음을 다 버리면 현실과 충돌할 일이 없으므로 좌절은 없을 것이다. 불교는 이렇게 현실에 참여하지 않음으로써 좌절을 피하려 한다. 실존주의도 비슷한 전략을 구사한다. 그들은 인생의 무의미와 부조리를 외치면서 삶을 관망한다.
당신은 철학자라고 하면, 파이프 담배를 꼬나물고 공원을 어슬렁거리는 사색인을 떠올리지 않는가. 그들은 인생의 의미를 진지하게 탐색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삶의 노고로부터 도망치고 있는 것이다.
인생을 보람 있게 사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것은 자신을 통제하는 인내, 공동체를 위한 희생, 그리고 좌절의 극복을 요구한다. 실존주의는 삶에 의미가 없다고 주장하며 삶 자체에서 발을 뺀다. 인생에 의미가 없으니 목표를 세우고 이루기 위해 노력할 필요도 없고, 그 과정에서 좌절을 겪을 일도 없을 것이다. 욕망을 없애라고 하든, 인생이 무의미하다고 외치든, 그것은 모두 좌절이 두려워 현실에서 도피하는 전략에 지나지 않는다.
좌절을 이겨내는 두 번째 방법은 현실을 개조하는 것이다. 좌절은 욕망과 현실의 충돌에서 발생하기 때문에, 현실을 우리 의도에 맞게 바꾸면 좌절은 사라질 것이다. 독일의 철학자 헤겔이 지적했듯이 인간은 활동을 통하여 세계를 바꾸어 나가면서, 변화된 세계 속에서 자기 자신을 발견한다. 부산시민은 빠르고 편안하게 이동하기 위하여 바다 위에 다리를 건설하였다. 이제 그들은 광안대교를 보며, 교통문제를 극복해낸 자신의 지혜와 용기를 자랑스럽게 바라본다. 현실을 목적에 맞게 변화시켜 좌절을 이겨내는 방식은 가장 좋다. 그러나 이것은 항상 가능한 것이 아니다. 지진이나 전쟁처럼 개인의 힘으로 돌파할 수 없는 재난도 있는 것이다.
세 번째 방식은 불가피한 좌절에 대비하기 위한 것이다. 좌절 자체를 없앨 수는 없지만, 좌절에 따라오는 분노, 충격 근심 같은 고통은 줄일 수 있다. 로마의 철학자 세네카는 낙관적 태도가 좌절의 고통을 증가시킨다고 지적한다.
입사 시험에 떨어질까 걱정하는 친구에게 대개 사람들은 "넌 꼭 합격할거야"라는 식으로 격려한다. 그런데 이것은 매우 위험하다. 왜냐하면 그런 위안은 친구를 방심으로 몰아넣을 수도 있고, 만약 떨어지게 되면 충격을 피할 수 없을 것이라고 계속 겁주는 말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세네카는 우리가 불행한 일을 예상하고 있어야 하며, 가만히 따져보면 그런 일이 닥치더라도 그렇게 나쁘지 않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고 했다. 당신은 사업에 실패하여 가난하게 될 수 있다. 그러면 당신은 가난한 많은 사람 중에 하나가 될 뿐이다. 재난과 불행을 예상하고 그것이 견디지 못할 정도로 나쁘지 않다는 것을 깨달으면 좌절을 이겨낼 수 있는 것이다.
욕망이 크면 좌절의 가능성도 크다. 그렇지만 좌절이 두렵다고 욕심을 비난하거나 인생이 허무하다고 한탄하며 현실에서 도망해서는 안된다. 도전 없이 어떻게 인류사의 위대한 성취가 있었겠는가. 중요한 것은 야망을 크게 가지고 노력하되 좌절을 예상하고 대비하는 것이다. "모든 것에 기대를 걸어도 좋다. 그러나 모든 일이 일어날 것이라고 예상해야 한다."(세네카)
경성대 철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