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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편익타산에 빛바랜 항일정신 /박성조

항일의 고장 기장 기념탑을 악취·소음 극심한 철로 옆에 세운다니

  • 디지털콘텐츠팀 inews@kookje.co.kr
  •  |   입력 : 2010-09-01 21:08:12
  •  |   본지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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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술국치 100주년이 되었다. 그런데 우리 스스로는 무엇인가에 사로잡혀 하고 싶은 말을 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우리는 과거 치욕스러운 국권의 상실을 되풀이했지만 이러한 치욕의 역사를 저지른 조상들은 이미 가신 지 오래다. 누구도 탓할 수 없다. '역사를 바로잡는다'고 야단이지만 흘러간 사실을 도대체 '어떤 기준에 의해 바로잡을 수 있는가?'.

역사는 인간의 사고와 행동에서 출발하여 최종적으로 원점으로 돌아오기 마련이다. 그러나 역사 속에는 사람들이 공유하는 가치관이 피처럼 흐르고 있다. 이것을 전통이라고 해도 좋으며, 좋은 전통이면 나라의 경사이며 국경일이라고 할수 있다.

후쿠야마의 선형적 사관과는 달리 역사는 끝나지 않고 변증법적으로 원점에 회귀한다. 우리의 정체성은 이러한 역사적 원점에의 부단한 회귀를 통해 형성되고 확신된다. 때문에 미래는 단순히 내일부터가 아니라 역사 속에 내재하고 있는 현재의 필연적 연속이다. 바꿔서 말하자면 역사를 무시하고 순간의 편익에 치우치는 인간은 역사의 원점에 돌아갈 수 없고 미래도 없는 것이다. 즉, 치욕스러운 과거만이 있는 것이다. 이러한 일들이 우리 주위에서 비일비재하게 일어난다.

필자가 살고 있는 베를린은 독일 근현대사를 치욕의 도가니로 몰아넣은 곳이다. 1, 2차 세계대전을 거듭했고, 수많은 유대인들을 잔혹하게 학살하는 계획이 이곳에서 이뤄졌다. 독일 통일 후 동서베를린 간의 통로인 브란덴부르크 문도 개통되어 명실공히 수도 베를린의 상징이 되고 있다. 그 바로 옆에는 홀로코스트 경고탑들 (Holocaust Mahnmal)이 있다. 무수히 많은 짙은 회색의 크고 작은 탑들은 마치 죽은 자들의 무덤이 끝없이 펼쳐져 있는 것처럼 보인다. 이러한 치욕의 역사를 독일인들이 영원히 기억하며 다시는 되풀이하지 않겠다는 경고의 메시지가 되고 있는 것이다. 역사와 그 속에 묻혀 있는 정신은 모든 사람들이 공감하는 장소를 통해 다시금 되살아난다. 즉, 역사의 원점이 새로이 정의되어, 역사로부터 버림받은 (자랑할 만한 역사를 갖고 있지 않은) 독일인들은 이를 통하여 역사의 원점으로 회귀하자는 뜻이다.

부산은 대한민국 역사에서 4·19시민혁명과 부마민주항쟁 등 민주투쟁에 앞장서 왔다. 자랑스럽다. 그래서 민주공원에 높이 우뚝 솟은 민주주의 탑은 부산인들의 역사관을 상징한다. 이것은 바로 부산인들의 가치관의 결정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리고 부산이 민주선거에 의해 최초의 대통령을 배출한 곳이 된 것도 결코 우연이 아니다.

그럼 항일투쟁의 역사는 어떠한가. 아마도 부산지역에서 가장 조직적이고 치열했던 항일투쟁의 장은 기장 지역일 것이다. 기장이 항일 투쟁의 상징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기장군도 '항일운동기념탑' 등을 갖춘 공원을 만들어 항일운동과 민족운동의 중심지였던 기장의 역사적 의미를 널리 알릴 계획이라고 한다. 그런데 항일투쟁의 선열들을 기리는 기념탑이 공교롭게도 오염에 의한 악취가 극심하고, 소음투성이인 철로 옆에 세워진다고 한다. 기장인들의 이성은 어디로 갔는지 묻고 싶다. 부산의 '3·1동지회'는 어디로 가버렸는지! 민성(vox populi)은 천성 (vox dei)이라는데….

또 얼마 전 국제신문의 사설 '인구 10만 명 시대 연 기장군의 비전과 과제'는 기장군이 무작정, 무계획으로 시멘트에 의지하는 근대화에 탐닉되고 있음에 일침을 가하고 있다. 주말이면 일대 도로는 자동차 정체로 몸살을 앓은 지 오래이고, 해안은 방파를 위한 흉한 시멘트 뭉치들로 가로막히면서 천혜의 자연절경이 갖는 아름다움을 이미 파괴하고 말았다. 부산에서 최후로 남은 녹색지역이 없어질 것이라는 걱정을 하는 사람들은 환경오염과 교통정체에 의한 생활의 질 저하까지도 우려하고 있다.

국경일, 국치일과 무관하게 우리는 역사의 원점으로 부단히 돌아와 우리의 미래를 재정리해야 한다. 그래서 거기서 우리의 정체성을 다시 찾아야 한다. 즉, 우리는 역사의 원점에 순례하는 정신을 갖는, 칸트가 말한 이성의 판단에 의지하는 성년이 되어야 할 것이다.

동아대 석좌교수·베를린자유대 정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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