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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주희에게’의 한 장면. |
누워있을 수밖에 없는 와상장애인 ‘철규’는 버킷리스트인 번지점프를 하고 싶다. 그는 꿈을 이루기 위해 백방으로 알아보지만 번번이 거절당한다. 철규는 그 거절을 이해할 수밖에 없는 자신의 현실이 답답하다.
세월호 희생자 경빈의 엄마 ‘인숙’은 10년이 넘는 세월이 흘러도 여전히 책임자들이 처벌되지 않는 현실을 바꾸고자 활동을 멈추지 않는다. 그는 국가를 상대로 아들의 구조 지연 책임 규명 소송을 청구하며 다시 한번 싸우기로 한다.
영화감독 ‘성필’은 제주 출신으로, 제주 4·3 사건 당시 경찰인 할아버지와 어린 큰아버지를 잃은 집안에서 자랐다. 앞서 철규의 이야기를 다큐멘터리로 찍은 적 있는 그는 제주 4·3 사건과 세월호 참사 유가족에 관한 다큐멘터리를 찍고 싶어 하지만 좀처럼 창작을 이어가지 못하고 있다.
그리고 이 세 인물을 연결하는 또 다른 선, ‘주희’가 있다. 주희에게 집은 안식처가 아닌 늘 폭력의 공간이었다. 여기에 불현듯 찾아온 백혈병은 영화감독이란 오랜 꿈마저 포기하게 만들었다.
힘겨운 투병 생활 끝에 회복한 주희는 장애인 자립생활센터에서 일하던 중 우연히 성필과 철규를 만나게 된다. 이후 그는 성필과 함께 다큐멘터리를 작업하며, 자신을 괴롭히고 있는 내면의 상처와 사회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 보기로 한다.
‘주희에게’는 제주 4·3사건과 세월호 참사, 가정폭력, 장애인 차별 등 다양한 형태의 사회적 폭력을 겪은 네 인물의 삶을 그린 작품이다. 영화는 이들의 이야기를 통해 한국 사회의 과거와 현재를 살아가면서 마주한 폭력이 실은 모두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을 드러낸다.
이 과정에서 눈에 들어오는 것은 상처와 고통을 대하는 이들의 자세다. 온몸이 부서질 듯한 힘든 투병 생활을 하면서도 2014년 4월 16일 그날의 뉴스를 보며 “더 큰 세상의 고통을 마주했다”고 회상하는 주희. 제 한 몸 가누기 힘들면서도 “나만 힘들어? 당신들도 힘들잖아”라고 말하는 긍정적인 철규. 이들이 건네는 말은 단순히 공감의 정서라고만 설명할 순 없을 것 같다. 자신의 고통과 상처에 매몰되지 말고 각자 그대로의 존재로서 타인과 ‘함께’ 살아가자는 외침처럼 들린다.
슬프게도 세상은 여전히 폭력과 상처 혐오 배제로 가득하다. 그리고 아마도 그로 인한 고통은 계속해서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그렇기에 ‘주희에게’는 기승전결이 분명한 하나의 ‘이야기’로 끝맺음이 될 수 없다. 끊임없는 실패에도 성필의 카메라가 계속해서 돌아가는 것도, 결말부가 마치 영화가 다시 시작하는 듯 보이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영화에서 내레이션을 주로 이끄는 인물은 주희 본인이다. 그러나 그의 목소리는 자신의 사연을 호소적으로 설명하기보다, 오히려 타인의 이야기를 들려주듯 감정을 덜어낸 채 담담하게 흘러간다. 이는 위로와 연대의 메시지를 전하는 대상이 ‘주희에게’인 동시에 ‘우리 모두에게’이기 때문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