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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우의 인서트] 일상의 균열을 듣다

차임

  • 김민우 영화평론가
  •  |   입력 : 2026-03-18 18:34:26
  •  |   본지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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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사회나 인간 내면의 어두움을 탁월하게 묘사하는 구로사와 기요시 감독의 최근 활동이 활발하다. 2024년부터 지난 2년 동안 무려 장편 3편(‘뱀의 길’ ‘클라우드’ ‘흑뢰성’)과 중편 1편 (‘차임’)을 찍으며 올해 70세에 접어든 나이에도 노익장을 과시하고 있는데, 그 중 국내에서는 ‘차임’이 가장 빨리 개봉해 한국 관객과 먼저 만나게 됐다.
구로사와 기요시 감독이 연출한 영화 ‘차임’의 한 장면.
‘차임’은 기요시의 초기작인 ‘큐어’(1997)와 ‘회로’(2001)를 떠올리게 만드는, 불쾌하리만치 찝찝하고 어두운 기요시 특유의 세계관이 극명하게 드러난 영화다.

먼저 영화의 길이에 대해 언급해야겠다. 작품은 극장에서 좀처럼 보기 힘든 중편 길이(본편 기준 45분)의 영화다. 중편은 인물을 설명할 시간은 부족하지만 진행해야 하는 서사의 분량은 어느 정도 있어야 하기에 단시간에 몰입할 수 있는 매력적이고 완결성 있는 이야기를 갖추어야 한다. 하지만 ‘차임’은 오히려 중편의 형태이기 때문에 기요시 영화가 가지는 매력을 극대화한다.

요리 교실 선생님인 마츠오카 다쿠지(요시오카 무츠오)는 수강생 다시로 이치로(코히나타 세이이치)로부터 이상한 이야기를 듣는다. 자신에게 언제부턴가 차임벨 소리가 들리고 그 소리가 자신을 조종하는 메시지를 보낸다는 것이다. 이상한 건 교실에서뿐만이 아니다. 마츠오카의 가족은 그와 아내와 아들 등 3명으로, 여느 가족과 다름없이 모여서 밥을 먹지만 이들은 서로 한 공간에 있지 않은 듯이 행동한다. 그러던 어느 날, 다시로가 수업 시간에 괴이한 행동을 하게 되고 이후 마츠오카에게도 차임벨 소리가 들리기 시작한다.

영화는 인물들이 왜 그런 행동을 하는지, 차임벨 소리의 정체가 무엇인지, 그 소리가 실제로 존재하는 것인지 설명하지 않는다. 그러니 관객의 시선은 자연스럽게 공포의 실체가 무엇인지로 향하게 된다. 하지만 영화 안에서 차임벨 소리는 표면적으로 작동하는 공포가 아니다. 모호하고 정체를 알 수 없는 불안에 가깝다. 정확히 규정할 수 없는 미지의 무언가를 마주할 때 공포는 더 크게 다가오기 마련이다. 그렇게 영화 속 설명되지 않는 불안은 스크린 안에 머무르지 않고, 스크린 밖 관객의 일상까지 파고드는 공포로 확장된다.

그런 측면에서 영화 내내 강조되는 금속성 음향에 귀 기울일 필요가 있다. 요리 도구가 내는 소리는 부엌이라는 일상 공간의 섬뜩함을, 마츠오카의 아내가 한가득 모아둔 캔을 쏟아부으며 집안의 소리를 지우는 장면은 모종의 불안감을, 들릴 듯 말 듯 희미하게 울리는 차임벨 소리는 정체불명의 불확실함을 자아낸다. 그렇게 일상적으로 이용하던 공간은 스릴러의 공간으로 전환되고 무심코 지나쳤던 평온한 풍경을 되돌아보게 만든다. 어쩌면 금속성의 소리는 현재를 살아가는 현대인이 가장 일상적으로 듣고 느끼는 음향이 아닐까. 이처럼 구로사와 기요시는 미처 모른 채 벌어지고 있는 일상의 균열을 새로운 방식으로 듣게 만든다. 극장을 나온 뒤 당신의 귀에도 차임벨 소리가 들릴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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