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안 어딘가, 버리지 못한 채 먼지가 쌓인 물건들이 있다. 남이 보기엔 그저 낡은 고물에 불과하지만 주인에게는 도저히 내다 버릴 수 없는 기억과 애착이 서린 물건들. 이를 ‘센티멘탈 밸류(Sentimental Value)’라 부른다. 주관적 기억이 부여된 ‘정서적 가치’라는 뜻이다. 요아킴 트리에 감독의 신작이자 제78회 칸 영화제 심사위원 대상을 받은 동명의 영화는 바로 이렇게 버리지 못한 것들에 관해 이야기하는 작품이다.
 |
| 요아킴 트리에 감독의 영화 ‘센티멘탈 밸류’의 한 장면. |
어머니의 장례식에 오랜 기간 가족을 떠났던 아버지 구스타브(스텔란 스카스카드)가 찾아온다. 동생 아그네스(잉가 입스도테르 릴레오스)는 비교적 담담하게 아버지를 대하려 노력하지만, 언니 노라(레나테 레인스베)는 다르다. 어린 시절 아버지가 떠날 때 느낀 배신감과 원망이 여전히 생생하기 때문이다.
심지어 영화감독인 구스타브는 뻔뻔하게도 노라에게 자신의 새 작품에 출연할 것을 요청하기까지 한다. 노라는 매몰차게 거절하지만 갑작스레 자신의 인생에 등장한 아버지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혼란스럽다.
흔한 가족의 애증극처럼 보이는 이 영화가 특별해지는 지점은 감독이 ‘역사’라는 세밀한 결을 덧입히면서부터다. 영화 초반에는 노라가 초등학생 시절 학교 숙제로 ‘집’의 관점에서 쓴 에세이가 내레이션으로 흘러나온다. 그리고 카메라는 이들 가족이 대대로 살아온 ‘집’의 100여 년 역사를 재현한다.
그 과정에서 관객은 오랜 기간 이 가족을 짓누른 우울과 슬픔의 정체를 목격하게 된다. 그 뒤에는 전쟁과 당시 시대 상황이 도사리고 있다. 이처럼 이들의 아픔이 단순히 개인의 감정적 문제만이 아니라, 역사의 비극과 그로 인한 트라우마에서 비롯되고 있음을 감독은 차분한 어조로 밝히고 있다.
그런 측면에서 인물의 설정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들은 각자의 직업적 언어로 서로를 이해하거나 다가가려 한다. 영화감독인 구스타브는 자신이 가장 잘할 수 있는 시나리오(영화)로 두 딸에게 화해를 청한다. 시나리오는 2차 세계대전 당시 생존자이자 저항군이었던 자신의 어머니이자 자매의 할머니 카린의 이야기다. 하지만 동시에 두 딸을 향한 구스타브의 마음이 담겨 있기도 하다.
노라는 매우 촉망받는 연극배우로 시나리오를 가장 잘 이해하고 표현할 수 있는 존재다. 그는 대본을 연기하며 비로소 자신과 아버지를 들여다보는 계기를 마련한다. 역사학자인 아그네스는 나치에게 고문을 당한 할머니의 증언 기록을 찾아낸다. 그녀가 발견한 역사를 통해 비로소 카린과 구스타브, 자매의 깊은 마음속 상처의 근원이 드러난다. 멀게만 느껴졌던 가족은 그렇게 각자의 언어로 연결되기 시작한다.
영화 도처에는 제목처럼 끝내 버리지 못하는 물건과 관계, 감정이 산재해 있다. 요아킴 트리에는 이들을 엮어 아픔과 상처를 대면할 수 있는 자리를 만든다. 배우들은 그 자리에서 애써 외면해 온 것들을 온몸으로 통과하는 연기를 선보인다. ‘센티멘탈 밸류’는 가족의 화해와 회복만이 목적인 영화가 아니다. 각자가 기억 너머에 있는, 알 수 없는 감정이나 고통을 다시 들여다볼 수 있는 영화다. 그게 사람이든 시대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