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노출 콘크리트와 유리 빛 물의 공간
- 타다오 건축으로 완성 ‘전원 박물관’
- 국내 첫 종이 박물관 독특한 볼거리
- 인근 ‘소금산 그랜드 밸리’도 가볼만
부산에서 4시간을 달리면 외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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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연과 예술 조각을 함께 조성한 ‘플라워 가든’. |
일본 중국 몽골 동남아 등의 비행시간이 4시간 정도다. 부산에서 차로 4시간 이상을 가는 곳, 강원도 원주. 여기는 틀림없이 외국이 맞다. 특별한 인연은 없다. 딱히 군대를 강원도에서 생활한 것도 아니고, 애틋한 사랑 이야기가 있는 것도 아니다. 굳이 4시간 이상이 걸리는 원주로 향한 것은 그곳에는, 다른 어디에도 없는 공간이 있기 때문이다.
산속 깊숙이 숨겨진 공간, 바로 ‘뮤지엄 SAN’이다.
뮤지엄 SAN은 단순한 전시 공간이 아니다. 이곳의 시작은 ‘박물관과 미술관이 함께 숨쉬는 공간’을 만들겠다는 한솔문화재단의 오랜 꿈에서 비롯됐다. 그 꿈은 세계적인 명성의 일본 건축가 안도 타다오에게 설계를 맡기면서 현실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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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간결한 건축기법으로 유명한 일본 건축가 안도 타다오가 설계한 ‘뮤지엄 SAN’ 본관. |
안도 타다오의 건축은 언제나 절제되어 있다. 노출 콘크리트, 유리, 물, 그리고 빛. 불필요한 장식은 없다. 대신 침묵이 있다. 그 침묵이 오히려 많은 것을 말한다.
처음 부지를 본 그는 이곳을 어른과 아이가 함께 와서 자연과 예술 속에서 감성을 회복하는 장소로 만들고 싶다고 했다. 살아갈 힘을 되찾는 공간. 그 말은 추상적이지만, 이곳에서는 이상하게 구체적으로 다가온다.
뮤지엄은 전체 길이 700m로, 오솔길을 따라 웰컴 센터와 잔디 주차장으로 시작해 플라워 가든, 워터 가든, 본관, 스톤가든, 그리고 제임스 테렐관으로 이어진다. 그러나 이 길은 단순한 이동 경로가 아니다. 길 자체가 하나의 전시다.
건물 사이로 비친 하늘, 콘크리트 벽을 타고 스며드는 빛, 프레임처럼 잘려 보이는 산의 능선. 공간은 끊임없이 질문을 던진다.
본관은 사각형과 삼각형, 원형 공간이 서로 맞물려 있다. 각기 다른 형상이지만, 결국 하나로 연결된다. 땅과 하늘, 자연과 인간, 과거와 현재가 맞닿는 구조. 건축이 철학이 되는 순간이다.
뮤지엄 SAN의 또 다른 중심은 ‘종이’다. 이곳의 종이 박물관은 국내 최초의 종이 전문 공간으로, 오래된 기록과 공예품, 전통 문서들이 숨 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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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라 고분을 모티프로 한 9개의 스톤마운드로 이루어진 ‘스톤 가든’. |
종이는 느린 매체다. 눌러쓰고, 마르고, 보존되어야 한다. 디지털 화면처럼 즉각적으로 반응하지 않는다. 그러나 바로 그 느림이 인간의 시간을 담는다.
뮤지엄 SAN 청조갤러리에서는 소장품 다시 보기가 열리고 있다. 갤러리Ⅰ에는 운보 김기창의 배우자인 박래현 작가의 한국적 감수성과 현대적 구성 원리를 결합한 회화와 다양한 판화 기법의 작품이 전시되어 있다. 갤러리Ⅱ에는 채색화의 주변성을 넘어 한국 근현대 미술에 중요한 전환을 가져온 박생광 작가의 작품이, 갤러리Ⅲ에는 한국 추상미술을 국제 무대로 확장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 남관 작가의 작품이 있다.
이곳의 슬로건은 ‘Disconnect to Connect’이다. 끊어야 연결된다는 역설. 종이와 아날로그를 통해 그동안 잊고 지낸 삶의 여유와 자연, 예술 속에서 휴식을 선물한다.
느린 걸음으로 마음을 따라 산책하다 보면 사과를 형상화한 조형물이 있다. 안도 타다오가 사무엘 울만의 시 ‘청춘’에서 영감을 받아 배치한 상징물이다. 청춘은 나이가 아니라 태도라는 말. 꿈을 잃지 않는 한, 우리는 늙지 않는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이 말을 듣기 위해 원주까지 왔는지도 모른다.
마음이 충분히 고요해졌다면, 이제 몸을 깨울 차례다.
원주에는 또 하나의 상징적 공간이 있다. 관광의 모든 요소가 갖춰진 곳 ‘소금산 그랜드 밸리’다. 관광지 입구에서 케이블카를 타고 오르면 풍경이 서서히 열리기 시작한다. 이어지는 출렁다리. 발 아래가 흔들릴 때마다 몸은 본능적으로 긴장한다. 그러나 동시에 시야는 멀어진다.
고도 200m 절벽을 따라 조성된 소금 잔도. 360m 길이의 길 위에서 바라보는 계곡은 깊다. 스카이타워에 오르면 소금산을 감싸고 도는 삼산천이 한눈에 들어온다. 그리고 길이 404m의 울렁다리. 출렁다리보다 더 대담하다. 한 걸음 한 걸음이 결심처럼 느껴진다.
마지막은 285m 길이의 산악용 에스컬레이터. 힘겨웠던 오름을 보상하듯, 편안한 하산이 이어진다.
뮤지엄 SAN에서 마음이 산책하고, 소금산에서 몸이 산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