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이난(台南)은 대만에서 가장 오래된 도시다. 대만 남부에 있는 이 도시는 한때 수도였던 곳으로, 항구를 중심으로 성장하며 역사를 쌓아 왔다. 타이베이가 한국의 서울에 비견되는 현대적인 수도라면 항구 도시 타이난은 부산과 닮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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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만 타이난의 조식 전문 식당 주방에서 직원들이 음식을 준비하고 있다. 중화권 나라마다 조식 문화가 발달했으나 대만은 다양한 메뉴를 접할 수 있어 선택의 폭이 넓은 것이 특징이다. 김진철PD |
기후도 따뜻하다. 타이베이의 1~2월 평균 기온이 15~16도 안팎이지만, 타이난은 평균 18~20도로 3, 4도 정도 높다. 체감상 한국의 초봄에 가까운 날씨다. 이런 기후 조건과 잘 갖춰진 야구 인프라 덕분에 타이난을 비롯한 대만 남부는 국내외 프로야구팀의 전지훈련지로 사랑받는다. 올해는 롯데 자이언츠가 타이난에, 키움 히어로즈가 가오슝에 캠프를 차렸다.
롯데 자이언츠의 전지 훈련 취재를 위해 지난 4~8일 타이난을 방문하면서 대만의 독특한 식문화인 ‘조식’의 매력에 빠져봤다. 중국 본토와는 또 다른 대만의 조식은 향토음식부터 일식 양식까지 다양한 메뉴를 즐길 수 있어 현지인과 관광객 모두 즐길 수 있는 문화이다.
■대만의 하루를 여는 ‘자오찬디엔’
대만의 조식 문화를 맛보려면 새벽 5시부터 부지런히 움직여야 한다. 대만을 비롯해 중국 본토, 홍콩 등 중화권에는 이른 새벽 5~6시에 문을 열어 점심시간 전 문을 닫는 조식 전문 식당 ‘자오찬디엔(조찬점)’이 많다. 긴 시간 일하는 중화권의 노동 환경 특성상 이곳 사람들은 아침을 밖에서 사 먹는 문화가 발달했다. 특히 전통 중식은 웍을 이용한 고온 조리가 기본이기 때문에 일반 가정에서 전문 설비를 갖춰놓고 만들어 먹기 어려워 이를 다루는 식당과 노점이 발달했다.
다양한 자오찬디엔이 줄지어 있는 거리. 아직 해가 완전히 뜨지 않았는데도 유난히 사람들이 붐비는 식당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바오청양러우’(바오청 양고기)라는 간판을 단 가게는 출근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는데도 자리를 찾기 어려울 만큼 붐볐고, 기다리는 손님도 여럿 있다.
이곳은 가게명에서 짐작할 수 있듯 양고기탕을 전문적으로 취급하는 조식 식당이다. 메뉴판에는 양고기탕을 기본으로 맑은탕·당귀탕·볶음 중 조리 방식을 고를 수 있고, 갈빗살·힘줄·내장 모둠·창자 등 부위도 선택할 수 있다. 다양한 메뉴가 있지만 손님들은 모두 가게의 대표 메뉴 ‘칭탕양러우(淸湯羊肉·맑은 양고기 탕)’를 먹고 있었다. 구미가 당겨 주문했더니 맑은 갈비탕처럼 투명한 국물이 나왔다. 한 숟가락 뜨자 예상보다 훨씬 담백한 맛이 입안에 들어왔다. 특유의 양고기 냄새는 거의 느껴지지 않았고 대신 한약재 향이 은은하게 맴돌았다. 기름기도 과하지 않아 아침 식사로 딱이었다. 칭탕양러우(맑은 양고기 탕)는 소(小) 150대만 달러(한화 약 6900원), 대(大) 200대만 달러(한화 약 9200원)로 맛과 양, 가격까지 ‘든든한’ 아침 한 끼로 부담 없었다. 바쁜 출근 시간에도 손님이 끊이지 않는 이유가 있는 가게였다.
■중식 일식 양식이 한 자리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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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타이난 조식 전문 식당의 테이블 위에 또우장, 일본식 탕면, 햄버거, 단빙 등 다양한 메뉴가 놓여 있다. |
같은 자오찬디엔이라도 중국 본토와 대만의 가게는 분명한 차이가 있다. 가장 큰 차이는 메뉴 구성이다. 중국 본토의 식당은 소룡포(중국식 육즙 만두), 요우티아오(중국식 튀김빵), 또우장(중국식 두유) 등 전통 중식 중심으로 구성된다. 반면 대만은 한 메뉴판에 중식 일식 양식이 구분 없이 공존한다. 이는 대만이 일본의 식민지 시기와 이주민의 유입 등을 겪으며 본토와는 다른 독특한 문화가 형성된 데서 영향을 받았다.
또 땅이 넓은 중국 본토는 이동 거리가 길고 이용하는 손님도 많아 음식을 포장하는 것이 일반적인 반면, 대만은 자리에 앉아 천천히 여유롭게 식사를 즐기는 이가 많다. 아침을 단순히 ‘때우는 끼니’가 아니라 하루를 여는 하나의 일상으로 여기고 있는 것이다.
다양한 메뉴를 맛볼 수 있는 식당을 찾아갔다. 타이난의 랜드마크 ‘하야시 백화점’ 근처의 조식 전문 식당 ‘후오수이 자오찬디엔(활수 조찬점)’이 눈에 들어왔다. 메뉴판에는 양식 중식 일식 메뉴가 나란히 적혀 있다. 양식의 햄버거, 중식의 단빙(달걀을 넣어 부쳐낸 밀전병), 일식의 오코노미야끼가 한 테이블 위에 올려진 모습은 대만의 아침에만 볼 수 있는 풍경이다.
테이블에 앉아 햄버거, 단빙, 일본식 면 요리를 주문했다. 단빙은 빵 속에 햄 옥수수 채소 등을 추가해 넣을 수 있었는데, 옥수수를 더해 보았다. 담백한 빵 위로 옥수수의 은은한 단맛이 올라와 맛에 포인트를 줬다. 일본식 탕면은 일본 편의점에서 파는 즉석 라면이 연상되는 익숙한 맛이었다. 햄버거는 일반적인 고기나 치킨 패티 대신 주문한 베이컨과 얇게 썬 오이, 케첩이 약간 들어 있다. 햄버거 번을 사용했지만 샌드위치에 가까운 맛이어서 어릴 적 동네 빵집에서 맛볼 수 있는 옛날 햄버거가 떠오르는 맛이었다.
후오수이 자오찬디엔의 햄버거와 단빙(옥수수 토핑 추가) 은 30대만 달러(한화 약 1400원), 일본식 탕면은 60대만 달러(한화 약 2700원)로 가격이 가벼워 ‘풍족한’ 조찬을 즐기기에 충분했다.
■타이난의 소울 푸드 ‘갯농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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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타이난의 향토 음식 스무위저우(갯농어 죽). 김진철PD |
양고기 탕과 중식 일식 양식이 한 테이블에 오르는 아침 식탁도 좋지만 타이난의 정체성을 뚜렷하게 보여주는 음식을 맛보는 것도 좋은 경험이다. 현지에서 만난 시민들은 ‘스무위저우(蝨目魚粥·갯농어 죽)’와 ‘스무위탕(蝨目魚湯·갯농어 뱃살 탕)’을 추천했다.
‘스무위(갯농어)’는 대만 전역에서 즐겨 먹는 국민 생선이다. 살이 우유처럼 하얗다고 해서 ‘밀크피시’로도 불린다. 타이난에서는 스무위를 활용한 죽과 탕이 아침 식탁의 중심을 이룬다. 실제로 타이난 거리에 생선이 그려진 간판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스무위를 이용한 음식이 타이난의 향토 음식으로 자리 잡은 데에는 지리적 환경과 이주 역사가 함께 작용했다. 16세기부터 대만으로 넘어온 중국 푸젠성 남부 민난 지역 출신 이주민들은 해산물을 중심으로 한 국물 요리에 익숙했다. 얕은 연안과 기수 환경이 발달한 타이난은 스무위 양식에 최적의 조건을 갖추고 있었고, 자연스럽게 생선 죽과 탕의 주재료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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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타이난의 향토 음식 위창탕(갯농어 창자 탕). |
갯농어 요리를 파는 식당 ‘푸성샤오스디엔(푸성 소식점)’과 ‘아탕시엔저우(아탕 해산물 죽집)’를 찾아 대만의 향토음식을 맛봤다. 스무위탕을 주문했더니 요리사가 갯농어 뼈와 살을 넣고 팔팔 끓인 커다란 솥에서 생선 뱃살 한 조각과 국물을 부은 뒤 가늘게 썬 생강채를 얹어 내줬다. 식초를 넣지 않은 복지리나 맑은 대구탕을 떠올리게 하는 맛이었다. 생강채가 생선의 비린내를 깔끔하게 잡아줬다. 푹 끓인 덕분에 생선 살은 숟가락으로 들어 올리면 부서질 듯 부드러웠다.
스무위저우도 주문해 봤다. 이곳의 스무위저우에는 굴이 들어가 해산물 향이 한층 풍부하게 느껴졌다. 함께 나온 다진 마늘과 쪽파가 비린 맛을 잡아줬다. 맑은 스무위탕이 속을 깨우는 해장용 국물이라면, 스무위저우는 든든한 국밥 한 그릇처럼 하루를 버틸 힘을 채워주는 느낌이었다.
식사를 하던 중 옆 테이블의 낯선 메뉴가 호기심을 자극했다. 맑은 국물 위에 전화선처럼 꼬여 있는 무언가가 올라간 음식이었다. 식당 주인에게 어떤 음식인지 묻자 스무위의 창자를 사용한 ‘위창탕(魚腸湯·갯농어 창자 탕)’이라고 했다. 맛보지 않을 수 없어 결국 한 그릇을 더 주문했다. 꼬불꼬불한 창자와 시커먼 내장, 그와 상반되는 우유 같은 뽀얀 국물. 쉽지 않은 첫인상에도 맛은 환상적이었다. 국물은 앞서 맛본 스무위탕보다 훨씬 진했고, 내장은 아귀 간을 연상시키는 부드러운 식감을 자랑했다. 창자는 씹는 순간 고소한 풍미가 터져 나왔다.
아침에 즐기는 호사스러운 보양식이지만 푸성샤오스디엔 스무위탕(120대만 달러·한화 약 5500원)과 아탕시엔저우의 스무위저우(180대만 달러·한화 약 8300원)·위창탕(120대만 달러·한화 약 5500원) 모두 부담 없이 즐길 수 있는 가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