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월대보름 달은 풍요의 상징 그 자체
- 오곡밥·귀밝이술·부럼에 더위팔기까지
- 액 쫓고 복 부르는 풍속 특히 많은 명절
- 농경사회 유산 달집태우기 한밤의 볼거리

‘설은 나가서 쇠어도 보름은 들어와서 쇠어야 한다’.

정월대보름날은 음력 새해가 지난 후 첫 번째 보름달이 뜬다고 해서 한 해의 건강과 풍요를 비는 다양한 세시풍속이 행해진다. 사진은 해운대해수욕장에서 열린 달집놀이. 해마다 정월대보름이 되면 가정에서는 오곡밥과 귀밝이술을 먹고, 기온이 따듯한 영호남 해안가를 중심으로 달집태우기가 진행된다. 모두 액운을 쫓고 복을 기원하는 의미가 담겨 있다. 국제신문 DB

책 ‘정상박의 우리민속 되짚어보기’(민속원 펴냄)를 쓴 민속학자 정상박(89) 전 동아대 교수는 ‘정월대보름’의 중요성을 두고 이같이 표현했다. 어부들이 바다에 나가느라 음력 설날은 못 챙기더라도 정월대보름날에는 꼭 돌아와 한 해의 풍요와 안녕을 함께 기원해야 한다는 의미가 담겼다.

정월대보름은 음력 1월 1일인 설날(지난 10일) 이후 15일(보름)이 지나 첫 보름달이 뜨는 날을 말한다. 올해는 오는 24일이 정월대보름날이다. 양력 1월 1일을 한 해의 시작으로 삼는 일이 이제는 익숙하지만, 농경사회 기반의 민족 생애가 켜켜이 쌓인 생활문화 민속, 그리고 세시풍속에서 정월대보름은 빼놓을 수 없는 주요 명절과 다름없다. 정 박사는 “우리 민족의 세시풍속 종류가 30여 가지라면, 그중 절반 가까이가 정월대보름날 행해진다. 그만큼 우리 민족의 세시풍속을 집약적으로 볼 수 있는 게 정월대보름날”이라고 설명했다.

24절기와 명절(설날 추석 등) 삼복(초복·중복·말복) 등을 구분해 가정과 마을 단위에서 행하는 관행 의식 놀이 등이 모두 세시풍속에 속한다. 정월대보름에는 달집태우기와 다리밟기 지신밟기 부럼 깨기 등이 가정과 마을에서 벌어진다. 모든 것은 가정과 마을의 평안과 풍요를 비는 마음에서 시작된다.

농경사회에서 달은 풍요를 상징한다. 음력 새해가 밝은 뒤 첫 번째 보름달이 뜨는 날을 정월대보름으로 특별히 여기는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정월대보름날 행하는 세시풍속 중 대부분이 풍요와 관련 있다. 정 박사는 “언제부턴가 달이 막연한 그리움이나 동경 등 서글픈 이미지로 대표됐는데 실제 달은 풍요의 상징이다”고 했다.

보름날 가정에서는 오곡밥을 먹고 귀밝이술을 마시며, 부럼을 깬다. 남에게 더위를 파는 ‘더위팔기’도 이날 행해진다. 모두 한 해 병치레를 예방하고 액운을 쫓는다는 주술성과 축원성이 포함된 세시풍속이다. 부럼은 부스럼을 예방하고 치아를 튼튼하게 하려고 날밤 호두 은행 같은 견과류를 어금니로 깨무는 것이다. 식전에는 귀가 밝아지고 일 년간 즐거운 소식을 듣고자 차가운 탁주나 청주를 귀밝이술로 마신다.

특히 오곡밥은 여러 곡식으로 밥을 지어 신에게 바친다는 의미가 있다. 이때 ‘복쌈’이라고 해서 ‘첫술은 쌈으로 먹어야 복이 온다’는 말도 전해지는데, 이에 대해 정 박사는 “복쌈을 먹을 때, 입은 우리집 대문을 뜻하고 잎에 밥을 싼 것은 볏섬을 뜻했다. 풍요를 빈다는 뜻”이라고 설명했다. 지금은 오곡밥 또는 약밥을 김에 싸 먹는 것으로 대체했지만, 예전에는 넓은 아주까리 잎 등을 말려뒀다가 보름날 삶아 오곡밥을 넣고 쌈을 싸먹었다고 한다.

최근에는 ‘아재 개그’로 전락해 버린 ‘더위팔기’ 역시 원래는 아이들 사이에서 성행했던 놀이다. 아침 일찍 친구를 찾아가 부르고, 친구가 대답하면 “내 더위 사가라”고 외치는 식이다. 대답한 사람이 더위를 산 셈인데, 상대가 미리 알아채고 대답 대신 “내 더위 사가라”고 선수 치기도 한다. 여름철 더위로 건강을 해치는 일을 예방하려는 주술적 방법이 담긴 놀이다. 소 돼지 등 가축들도 한 해 더위를 잘 넘기라고 복숭아가지 등을 걸어주기도 했다.

마을 단위에서는 달집태우기와 지신밟기 다리밟기 등 규모 있는 행사가 열린다. 그중 달집태우기는 나뭇가지와 짚 등을 쌓아 달이 떠오를 때 불을 붙이는데, 액을 쫓고 복을 부른다는 의미가 강하다. 본래는 논 한가운데서 마을 공동체끼리 소규모로 모여 달집을 태운 게 시작이다. 산 근처에서 태우면 산불로 번질 위험이 있어서 사방이 트인 논 한가운데 또는 물가 근처를 택했다. 하지만 일제강점기 강제로 음력 설이 없어지고 사람이 모이는 게 금지되며 한동안 달집태우기는 우리 민족 사이에서 사라졌다. 정월대보름날 다시 달집에 불이 붙은 건 설날이란 명칭을 되찾은 1989년부터였다.

세시풍속이 중단된 사이 농경·어업문화는 약해졌고, 산업·도시화가 확산하며 정월대보름의 의미도 조금씩 변하기 시작했다. 초기 목적이 풍요와 안녕을 빌기 위함이었다면, 이제는 액운을 쫓고 복을 기원하는 마음이 더 크다. 소규모로 모이기 힘드니 지자체 등에서 주관하는 큰 행사가 됐다.

달집 태우기는 특히 영호남에서 활발한데, 이는 수도권에 비해 상대적으로 높은 기온과 연관 있다. 따뜻한 남쪽지역에서 규모 있는 야외행사가 열리기가 비교적 쉽다는 뜻. 이 때문에 기온이 따뜻하고 바다를 낀 부산에서 정월대보름 세시풍속 문화를 콘텐츠로 키워야 한다는게 정 박사의 설명이다. 그는 “우리 고유의 행사를 축제화하면, 외국인 관광객도 한겨울 부산을 찾게 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 마침 올 대보름은 주말…달집 태우기·강강술래 등 부산 곳곳서 다양한 행사

마침 올해 정월대보름날은 주말인 토요일이다. 복을 기원하면서 민족의 세시풍속을 좀 더 세심히 지켜볼 계기로 삼으면 어떨까. 지난해 엔데믹과 함께 4년여 만에 다시 활활 타오른 달집놀이를 포함해 부산 경남 곳곳에서 열리는 정월대보름 행사를 추렸다.

▷해운대달맞이온천축제 :해운대해수욕장에서 22일부터 사전행사를 포함해 사흘간 열린다. 대규모를 자랑한다. 달집기원제, 소원문 쓰기를 포함해 정월대보름인 당일에는 월령기원제, 달집 태우기, 강강술래 등이 열린다. 오후 5시30분부터 사전 준비를 시작해 오후 6시 이전 달집에 불이 붙는다.

송도해수욕장에서 열린 송도달집축제. 서구 제공

▷정월대보름 송도달집축제 :송도해수욕장에서 정월대보름날 낮 12시부터 밤 9시까지 열린다. 오후 6시 개막식에 앞서 부산고분도리걸립보존회의 길놀이와 지신밟기·달맞이제 등이 식전행사로 열린다. 제기차기·투호놀이, 떡메치기 체험, 소망 연·청사초롱 만들기 등 다양한 체험행사도 병행된다. 송도 주민이 보름간 제작한 초대형 달집 태우기는 오후 6시30분부터.

▷제25회 수영전통달집놀이 :광안리해수욕장 일원에서 24일 오후 2시부터 시작한다. 오후 2시10분 무형문화재 ‘수영야류’ ‘좌수영어방놀이’ ‘수영농청놀이’ 공연이 열리고, 권원태 명인의 아슬아슬한 줄타기 공연과 권원태연희단의 신명 나는 공연이 진행된다. 소망포에 한 해의 소망을 적어 달집에 감아두면 오후 5시58분, 달집과 함께 타오른다.

지난해 부산 사상 삼락생태공원에서 열린 사상전통달집놀이 장면. 사상구 제공

▷제21회 사상전통달집놀이 :낙동강변 삼락생태공원 럭비구장에서 열린다. 오전 11시부터 오후 4시까지 다양한 민속 체험을 할 수 있고, 오후 5시부터 30분간 민속공연이 열린다. 이때 캘리그라피 퍼포먼스도 함께 볼 수 있다. 이후 개회식과 지신밟기 퍼포먼스, 영월기원제(오후 6시 시작)가 완료되면, 6시30분 달집을 태울 횃불을 점화한다.

▷제32회 밀양법흥상원놀이 ‘블루 문 법흥!’ :경남 밀양 단장면 법흥마을에서 23일 지신밟기를 시작으로 당일인 24일 오전8시30분부터 열린다. 당신제 용왕제 전통민속 체험장 등이 열리며 오후 5시30분에는 부녀자들이 다리에 병이 나지 않게 해달라는 의미로 “내 다리 쇠 다리 되어주소”라고 외치며 돌다리 밟기를 진행한다. 관람객과 달맞이 노래를 함께 부른 뒤 오후 6시20분부터 달집태우기 사전 준비가 시작된다.

▷김해천문대 달맞이 특별 관측회 :가장 큰(大)보름달이라서 대보름이 아니고, 음력 새해 첫 번째 보름달이기에 대보름이라 부른다. 김해천문대에서는 오후 7시50분부터 30분가량 세 차례 천체관측실에서 보름달과 목성, 오리온대성운, 시리우스 등을 볼 수 있다. 스마트폰으로 보름달을 촬영할 수 있고, 매표소 옆에 달 소망을 거는 이벤트도 열린다. 회차당 선착순 80명(온라인 40명, 현장 40명). 이용료 성인 기준 4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