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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져도 돼 뛰어놀아도 돼…미술관, 놀이터가 되다

부산현대미술관 첫 어린이 전시

  • 최승희 기자 shchoi@kookje.co.kr
  •  |   입력 : 2023-01-11 19:04:25
  •  |   본지 1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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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포스트모던 어린이’展 관람객 북적
- 회화·조각·설치·영상·음악 130여 점
- ‘훈육과 규칙은 좋은걸까’ 질문 던져
- 동화작가 안녕달 기획의도 쉽게 설명
- 제지 줄이고 눈높이 맞게 단상 설치

아이들은 ‘착한 어린이’가 되려고 한다. 착한 어린이란 어떤 아이일까. 말 잘 듣는 아이? 시끄럽게 소리 지르지 않는 아이? 여러 의견을 모아보면 ‘어른이 만든 규칙을 잘 따르는 아이’ 정도로 정의할 수 있을 듯하다. 여기서 질문. 착한 어린이가 되는 건 아이가 원하는 걸까, 어른이 원하는 걸까. 아이는 훈육의 대상이고, 그 규칙을 잘 따르는 건 항상 좋은 걸까.
부산 사하구 부산현대미술관에서 선보이는 어린이 전시 ‘포스트모던 어린이’에서 엄마와 아이가 작품을 함께 감상하고 있다. 전민철 기자 jmc@kookje.co.kr
이런 물음에 대해 어른과 아이가 함께 생각해볼 수 있는, 부산현대미술관의 첫 어린이 전시 ‘포스트모던 어린이 1부, 불안한 어린이를 위해 조용한 자장가를 불러주지 마세요’가 입소문을 타고 관람객의 발길을 끌어모으고 있다. 지난달 이 전시를 포함해 신규 전시 3개가 동시 오픈하면서 부산현대미술관 주말 관람객은 1500~2000명으로 전년 대비 2배 이상 껑충 뛰었다.

■ 어른이 정한 규칙은 잊어요

‘포스트모던 어린이’ 전시장 입구 모습.

전시장 입구에서는 동화책 작가 안녕달의 글과 그림으로 기획의도를 쉽게 풀어내고 감상 방법을 안내한다. ‘여기에서는 어른들이 정한 규칙은 잠시 잊고, 자신의 마음속에 있는 여러 가지 생각에 귀 기울여 보세요’. 생동감 넘치는 리듬으로 전시장을 채우는 피아노 선율은 음악가 정재형이 전시 주제에 맞춰 작곡한 신곡 ‘쓰루(through)’이다.

전시는 입구에서부터 관람객에게 주제의식을 던진다. 입구 앞까지 안내하는 바닥 화살표 얘기다. 거대한 화살표를 밟으면서 안정감을 느끼는가. 전시장 안까지 이어지는 화살표 작품 ‘따라와’를 출품한 디자이너 집단 워크스는 화살표가 ‘따라오라’며 천진하고 솔직하게 말을 걸어오지만 사실 그 내용은 타협 없는 지시일 뿐이라고 말한다. 화살표가 나쁘다는 건 아니다. 누군가에겐 위안일 수 있으니까. 워크스는 말한다. 세상에 나쁜 화살표는 없다고.

SNS에서 디지털 회화 작품을 선보이는 ○○○(팀 이름이 ○○○이다)의 4컷 만화 작업들 ‘아이의 방’ 역시 전시 주제가 잘 드러난다. 한 작품 속 대사를 보면 이렇다. “(▲ 모양을 보여주며)이게 뭘로 보여?”/“산!”/“아니 이건 세모야”/“따라 해” “세모”. 한 벽면을 가득 채운 6개의 4컷 만화는 우리가 보편타당하다고 생각하는 지식이 정상이고, 옳으며, 좋은 지식이라는 데 의문을 제기한다. 전시장 가운데 벽면을 울퉁불퉁한 타원 모양으로 무뚝뚝하게 잘라낸 어스 피서의 작품 ‘중산층 영웅들’은 뚫린 구멍을 통해 우리의 시야를 벽 너머로 이동시킨다.

전시장은 아이를 동반한 가족 관람객뿐만 아니라 청소년이나 어른 관람객에게도 인기가 좋았다. 대학교 입학을 앞두고 지난 10일 미술관을 찾은 구혜원 임희원(18) 양은 “‘털이 자라지 않는 아이’ ‘물을 주면 우는 꽃’ 등 평소 생각을 ‘뒤집어버리는’ 작품이 기억에 남는다. 어린이 전시지만 나이에 관계 없이 생각할 거리를 많이 던져주는 전시다”고 감상을 나눴다.

웹 기반의 8개 작품을 하나의 설치물로 조합한 HHHA의 ‘하이퍼 매니페스토’엔 어른이 특히 호응했다. ‘커닝쪽지’ ‘좌표 탈출’ ‘어린이 비권장도서’ 등 참여형 웹 기반 작품들은 아이나 아이였던 어른에게 우리 사회가 요구하는 어린이의 행동 양식을 저항하는 메시지로 발길을 붙잡고 있었다.

■ 놀이터 같은 미술 전시장

전시장 안은 마치 놀이터 같다. 아이들은 자유롭게 뛰어다니는가하면 작품에 바짝 가까이 다가가 유심히 뜯어보는 모습도 보였다. 그러고 보니 작품에 손을 대지 못하도록 관객을 일정한 거리 밖으로 떼어내는 가드(관람선)가 없다. 아이 둘과 미술관을 찾은 지인엽 씨는 “전시장에 오면 아이들이 작품을 만질까 봐 눈치 보느라 감상은 뒷전으로 밀리곤 했다. 이 전시에는 그런 제지가 없어 나도 작품 감상에 집중할 수 있었다”며 미소지었다.

방학을 맞아 미술관에 온 임지우(10) 양은 이영미 작가의 회화 ‘말 탄 여자’를 가장 마음에 드는 작품으로 꼽았다. 색깔이 예쁘고 글씨가 쓰여있어 그림을 읽을 수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강렬한 원색 위에 단순하게 표현한 화면은 친밀하면서도 ‘두통’ ‘달리다’ 등 담백한 서술 문자로 이미지의 언어적 기능을 암시했다. 임지우 양의 어머니 심영신(43) 씨는 “아이들이 미술관에 오면 난해한 전시일수록 무섭다며 빨리 지나가기도 했는데, 여기선 작품 하나하나 주의깊게 보고 같이 얘기할 수 있어 즐겁다”며 좋아했다.

전시장 중간에 놓은 40㎝ 높이의 단(段)도 다른 전시장에선 볼 수 없는 광경이다. 어린이를 ‘해방’한다는 전시 주제처럼 물리적으로도 아이들을 어른과 분리하기 위해 설치했다. 초등학교 저학년 학생의 평균 키 130㎝를 고려해 40㎝ 높이로 정했는데, 아이는 어른의 시선으로, 어른은 또 새로운 시선으로 감상하도록 돕는다.

부산현대미술관 최상호 학예연구사는 “아이들이 반드시 작품에 주목하지 않아도 된다. 대개 ‘만지면 안 돼’라는 어른의 제지를 받던 공간에서 아이들이 하고 싶은 대로 뛰어다녔다면 그것만으로도 전시 주제를 충분히 전달한 것”이라며 “전시가 주장하는 바에 모두가 동의하길 바라지 않는다. 이 또한 근대의 강제된 요구로 여겨져서다. 근원적 질문에 관한 다양한 사유를, 전시를 통해 체험하고 토론할 수 있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포스트모던 어린이’ 1부 전시에는 36개 팀이 참여해 회화 조각 설치 영상 음악 등 다양한 매체의 작품 130여 점을 오는 4월 23일까지 선보인다. 5월 어린이날 개막할 2부에선 보편타당으로 여겨온 지식이 해체됐을 때 비로소 다양한 공존이 가능함을 이야기할 예정이다.


# “생태 주제로 미술관 정체성 부각…어린이 프로그램도 집중할 것”

■ 취임 6개월 강승완 관장

지난 10일 부산현대미술관 강승완 관장이 ‘2023년 연두기자간담회’에서 발표하고 있다. 전민철 기자
“평생 서울에서 산 제게 부산은 새로운 환경이자 도전입니다. 특히 부산현대미술관은 개관 5주년을 맞는 신생 미술관이죠. 기반을 다져가는 단계여서 새로운 일을 하고 도전할 수 있다는 점이 굉장히 매력적이었습니다. 저의 오랜 미술관 경험이 많은 도움이 될 거라 생각합니다.”

부산현대미술관 강승완 신임 관장이 지난 10일 연두 기자간담회에서 취임 6개월 만에 소감을 밝혔다. 그동안 미술관이 부산비엔날레 전시장으로 쓰이면서 새 전시를 보여주지 못한 데다 운영 청사진을 짜느라 공식적인 자리를 미뤄온 터였다. 강 관장은 이날 글로벌 미술관으로 도약하기 위한 중점 운영방향과 전시 라인업 등 오랜 시간 준비한 철학과 비전을 처음으로 공개했다.

미술관은 올 한 해 ‘생태’에 집중한다. 을숙도 생태공원에 위치한 미술관의 특성을 살려 ‘생태적 상상력’ ‘상생’ ‘친환경 미술관’ 구현을 목표로 콘텐츠를 개발한다는 구상이다. “지금 세상의 모든 관심은 생태 환경이에요. 팬데믹 이후 더 그렇죠. 작가들도 모두 이 주제에 집중하고 있어요. 우린 주변 환경을 활용해 이러한 미술관의 정체성을 부각하려 합니다.”

정기전과 상설전도 새롭게 선보인다. 생태·영화· 역사 문제를 포괄적으로 다루는 ‘부산현대미술관 시네미디어’는 격년제로, 여러 분야 전문가와 함께 협업 프로젝트로 만드는 ‘부산현대미술관 플랫폼’은 연례전으로 신설한다. 하반기에는 지하 1층에 ‘부산현대미술관 소장품섬’ 전시장이 열린다. “부산현대미술관은 2년에 한 번 열리는 부산비엔날레를 위해 5개월 이상 전시장을 내줍니다. 그렇지만 어떤 경우에도 미술관이 문을 닫아선 안 된다고 생각해요. 소장품 상설전은 미술관이 전시를 쉬지 않기 위해 만드는 공간입니다.”

올해는 어린이 전시도 지속적으로 개최한다. 지난달 개막한 ‘포스트모던 어린이 1부’에 이어 오는 5월 ‘포스트모던 어린이 2부’를 준비 중이다. 9월부터는 어린이 특화 생태전시 ‘노래하는 땅’을 연다. “최소 1년은 어린이 프로그램에 집중해볼까 합니다. 사실 어린이를 싫어하는 미술관도 많아요. 시끄럽다고. 그런데 그만큼 미래세대에게 투자하는 의미가 있지 않을까요.”

강 관장은 미술관 하드웨어의 변신도 예고했다. 안내데스크 카페 뮤지엄숍이 있는 1층 로비를 전면적으로 재배치하고, 관람객이 을숙도의 아름다운 풍광을 감상하도록 4층 옥상과 3층 실내 공간 일부를 개방할 예정이다. 지난 6개월 동안 예산 짜는 일에만 매진했다는 그는 ‘전시를 보지 않더라도 쉬러 올 수 있는 미술관’을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신생 미술관에 부임한 관장으로서 역할을 묻는 질문에 그는 학예사 역량 강화를 자신의 주요 과업으로 꼽았다. “미술관은 굉장히 긴 호흡으로 갑니다. 결국 미술관을 오래 끌고 나갈 사람은 학예사에요. 이들이 구심점이 돼서 끌고 갈 힘을 키우도록 재교육과 동기부여를 해주는 게, 부산현대미술관의 기틀을 닦아야 할 저의 중요한 역할일 것입니다.”

강 관장은 홍익대 서양학과를 졸업하고 홍익대와 미국 보스턴대 대학원에서 미술사학 석사학위를 취득했으며, 홍익대 대학원 미술사학 박사 과정을 수료했다. 1990년부터 2019년까지 30년간 국립현대미술관에 몸담았다. 부산현대미술관 관장에는 지난해 6월 임명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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