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부산메디클럽

[조재휘의 시네필] '한산 : 용의 출현(2022)' 명장을 돋보이게 하는 건 훌륭한 적수

  • 조재휘 영화평론가
  •  |   입력 : 2022-08-03 19:38:54
  •  |   본지 14면
  • 글자 크기 
  • 글씨 크게
  • 글씨 작게
수년 전 이두용 감독을 직접 뵙고 저녁 식사를 같이 한 적이 있었다. ‘용호대련’(1974)과 같은 태권도 액션영화로 초점이 옮겨갔는데 대화 도중에 이런 말을 했던 것이 기억에 남는다.

“악역을 멋있게 그려야 해요. 그래야 극복하는 주인공이 돋보이거든.”

지극히 당연한 말이지만 적잖이 놀랐었다. 당시 한국영화에서 인상적인 악역의 등장, 또는 악역의 캐릭터를 신경 써서 다듬은 각본이 얼마나 되는지 당장 뇌리에 잘 떠오르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주인공과 악역은 항상 대칭 관계에 선다. 능력 있고 품격을 갖춘 악역을 만들면 자연스럽게 그에 맞서야 하는 주인공의 설정이 다듬어지고, 악역의 동기와 욕망이 명확히 설정되면 주인공 행동의 당위성, 이야기의 갈등구조와 플롯도 만들어지기 마련이다. 그러나 한국영화의 시나리오 창작에서 이런 경우는 좀처럼 드물었던 것 같다. ‘극한직업’(2018)의 희화화된 경찰들은 그만큼 어설픈 악당들을 만났고, ‘봉오동 전투’(2019)의 일본군은 잔학함 못잖게 독립군의 유인에 순순히 휘말리는 멍청함을 과시했다.

‘한산 : 용의 출현’(2022)은 다르다. 김한민이 취한 전략의 영리함은 이순신(박해일)이 지닌 명장으로서의 면모를 살려내려면, 적장인 와키자카 야스하루(변요한)를 범용치 않은 인물로 그려내야 한다는 점에 착안한 데 있다. 부산포에 막 상륙한 와키자카가 취하는 행동들은 대사로 일일이 설명하지 않아도 인물이 지닌 본질을 단적으로 보여 준다. 나머지 장병의 사기를 꺾지 않고자 귀환한 패잔병들을 즉결 처분하는 데선 잔인성과 냉정함을, 거북선과 충돌해 박살난 군함을 유심히 관찰하거나 첩보와 작전 수립에 공을 들이는 면면에선 이성적인 치밀함을 드러내며 긴장감을 부여한다.

일본 수군의 군세는 막강하고 지휘관 또한 상당한 수완가이다. 전황은 불리하고 내부에는 훼방꾼 원균이 사사건건 시비를 걸어온다. 수세에 몰린 이순신을 주변의 제장들은 불안한 심정으로 바라보고, 이들의 답답한 기분은 관객에게도 그대로 전달된다. 하지만 주인공이 극한 상황으로 몰리면 몰릴수록 그의 선택이 불러오는 결과의 카타르시스는 극대화되기 마련이다. 초중반부의 예비서사가 탄탄히 다져져 있기에, 클라이맥스를 장식하는 한산도 해전 시퀀스는 휘몰아치는 스펙터클과 서스펜스, 운율의 몽타주로 화려하게 장식될 수 있었다.

‘명량’(2014)에서 우리는 수난 받은 구국의 영웅을 도와 백성들이 위기에 빠진 국운을 구원해낸다는 메시아주의의 종교극을 보았다. 그리고 김한민은 괄목할 만한 연출의 발전을 선보이며 또 다른 이순신의 서사를 내놓았다. 비판받을 지점이 없는 건 아니나 ‘한산’은 한국형 블록버스터 사극의 이정표이며, 신파 없이도 한국의 역사와 인간을 그려낼 수 있다는 자신감의 증거이다.
ⓒ국제신문(www.kookj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국제신문 뉴스레터
국제신문 네이버 뉴스스탠드 구독하기
국제신문 네이버 구독하기
뭐라노 뉴스

 많이 본 뉴스RSS

  1. 1문 前 대통령 거제 생가 복원키로
  2. 2신세계, 센텀 롯데百 인수…쇼핑·문화·관광 복합타운 만든다(종합)
  3. 3팔만대장경 다시 판각…해인사 50년 대장정
  4. 4신세계 야외주차장도 복합개발 속도…센텀 유통지형 요동
  5. 5고리원전에 가짜 베어링 납품 업체들, 1년째 수사 표류
  6. 6“영도 절영초 통폐합 추진 중단하라”
  7. 7“국제신문 살리는 게 지역 민주주의 지키는 일”
  8. 8행사 한창인데 벡스코 정전…전력관리체계 도마(종합)
  9. 9부산시, 쿠팡 등 3곳 1630억 투자 유치
  10. 10김해 시내버스 개편…장유 등 23대 증차
  1. 1“영도 절영초 통폐합 추진 중단하라”
  2. 2“능인, 경영능력에 의문” 부산국힘 내주 지원안 머리 맞댄다
  3. 3국힘 부정선거론 다시 띄우기…민주 “선동에 열중” 비난
  4. 4李 비판 유시민에 김민석 “대응 불필요”
  5. 5송파 247만 장 검증, 신분확인·촬영요구로 시작부터 차질(종합)
  6. 6대한항공 말흐리기…실체없는 통합LCC 부산 허브
  7. 7국민의힘 곽규택 의원 등 동구 주요 당직자, 북항 돔구장 정부 공모 참여 환영
  8. 8[뉴스 분석] 종교인·언론사주가 국회 권위 훼손…도덕성 논란까지
  9. 9李 대통령 지지율 2%p 오른 46%…조희대 탄핵 반대 45%
  10. 10부울경 광역의회 협력강화 선언 “미래산업 함께 육성”
  1. 1신세계, 센텀 롯데百 인수…쇼핑·문화·관광 복합타운 만든다(종합)
  2. 2신세계 야외주차장도 복합개발 속도…센텀 유통지형 요동
  3. 3행사 한창인데 벡스코 정전…전력관리체계 도마(종합)
  4. 4부산시, 쿠팡 등 3곳 1630억 투자 유치
  5. 5삼성전자 분기 영업익 107조 역대 최대…반도체로만 106조(종합)
  6. 6미분양·빈집 누적…부산 안서도 주택 위기 제각각
  7. 7롯데, 영도대교 복원 인연 축제로 잇는다
  8. 8AI드론으로 참치 찾는 선박 부산 출항
  9. 9가계대출 금리 5% 턱밑…고정형 주담대 사상 첫 5% 뚫어
  10. 10‘덕후 천국’ 부산에 떴다…롯데百 전국 첫 IP 전문관
  1. 1문 前 대통령 거제 생가 복원키로
  2. 2팔만대장경 다시 판각…해인사 50년 대장정
  3. 3고리원전에 가짜 베어링 납품 업체들, 1년째 수사 표류
  4. 4“국제신문 살리는 게 지역 민주주의 지키는 일”
  5. 5김해 시내버스 개편…장유 등 23대 증차
  6. 6본사 비대위·퇴직자, 지광 고소…실질경영자에 ‘체불 책임’ 추궁
  7. 7“대화 거부한 건 대주주…당당하면 왜 국회서 소명 안 했나”
  8. 8오늘의 날씨- 2026년 10월 30일
  9. 9기말고사에 EBS 유사 문항, 처음 아니었다
  10. 10검증 체계 없는 유가보조금…줄줄 샌다
  1. 1괜찮을까…모레노호, ‘96라인’·손흥민 모두 품었다
  2. 2마침내…밀워키, 월드시리즈 첫 우승(종합)
  3. 3“AG 환희 잊고…리그 첫 경기부터 승수쌓기 총력”
  4. 4여자프로농구 절반이 女감독
  5. 5롯데 수석코치 허문회, 2군 감독 박승민
  6. 6모레노, 은퇴소동 ‘96라인’ 달랜다…대표팀 내홍 풀까
  7. 7부산시대 2년차 읏맨 “홈팬 응원에 성적으로 보답”
  8. 8밀워키, 창단 58년 만에 WS 우승…5차전서 4-1로 탬파베이 제압
  9. 9경남 생활체육 대축전 30일 개막…3일간 31개 종목 열전
  10. 10롯데, 공격서 수비로 중심 이동…주전 새판짜기 예고
우리은행
부산 야구장 미래는
“돔? 재건축? 미래가치 따져야” “전문가 주도적 역할 부여를”
부산 야구장 미래는
선수 공간까지 체험하는 돔투어…야구 테마 복합문화시설
  • 국제신문 골프대회
  • 맘편한 부산
  • 부산국제마라톤
  • BNK생명나눔챌린지
  • 유콘서트
걷고 싶은 부산 그린워킹 홈페이지
국제신문 대관안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