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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재휘의 시네필] ‘리코리쉬 피자’ 방황하는 청춘의 오디세이

  • 조재휘 영화평론가
  •  |   입력 : 2022-03-16 18:49:48
  •  |   본지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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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코리쉬(Licorice)라 불리는 서양 감초로 만든 사탕은 검은 빛을 띤다. 그중 피자처럼 원형으로 말린 제품은 레코드판처럼 보이는데, 실제로 ‘리코리쉬 피자’는 과거 미국 로스엔젤레스에 있었던 레코드 가게 체인점의 이름이었다고 한다. 폴 토마스 앤더슨의 ‘리코리쉬 피자’(2021)는 일종의 모험극이다. 1970년대의 미국이라는 소우주로 떠나는 시간의 오디세이. 우리의 두 주인공 개리(쿠퍼 호프만)와 알라나(알라나 하임)는 영웅적인 면모와는 담 쌓은 평범한 소시민이며, 신들의 시험 대신 주어진 요지경 같은 시대상을 미숙한 청춘의 시행착오와 좌충우돌하며 나간다.
‘리코리쉬 피자’ 스틸 컷.
‘펀치 드렁크 러브’(2002) 이래, 폴 토마스 앤더슨의 경력에서 가장 대중적인 색채를 띠는 이 영화는 성격이 판이한 두 남녀가 만나 다툼을 거듭하다가 맺어지기까지의 과정을 그리는 스크루볼 코미디다. 그러나 제임스 조이스가 더블린에 사는 두 남자의 평범한 하루를 다룬 소설에 ‘율리시즈’란 거창한 제목을 달고 갖가지 상징과 암시를 채워 넣었던 것처럼, ‘리코리쉬 피자’ 역시 이야기의 가벼운 인상은 미끼일 뿐 세심한 감상을 요구한다. 중요한 건 두 남녀의 관계에서 드러나는 양상과 이들의 발걸음을 따라가는 과정에서 포착되는 풍경들이다.

‘팬텀 스레드’(2017)에 이어 손수 촬영을 맡은 감독 폴 토마스 앤더슨의 카메라는 미끄러지듯 유려한 움직임으로 공간을 휘젓고 다닌다. 화면에 지속적인 운동감을 부여해 지루할 새를 주지 않는 이러한 방식은 정주의 안정감 없이 방황하는 청춘의 기분을 반영하고, 재현된 과거의 시공간으로 관객의 시선을 빨아들인다. 영화의 도입부는 이후 있을 극의 전개를 단적으로 함축한다. 알라나는 데이트를 신청하는 연하의 개리를 반기면서도 철없는 아이로 취급하는데, 이는 극 내내 커플 관계에 작용하는 신경전, 위계의 우열을 두고 벌이는 권력 게임의 전초전이다.

어엿한 성인 남자로 인정받고 싶은 개리는 아역배우 경력을 과시하고 물침대 사업을 벌이지만 사려 깊지 못하고 충동을 자제하지 못하는 철부지에 지나지 않는다. 고객으로 등장하는 영화제작자 존 피터스는 그의 유아적 남성성을 극단적으로 희화화한 거울상처럼 보인다. 엄격한 아버지에게 짓눌린 알라나는 성적 매력을 무기삼아 수시로 개리를 도발하며 우월감을 만끽하는 한편으로는, 아버지 뻘인 마초 배우나 정치가에게 접근한다. 그러나 더 나은 남성성에 의지해 주류에 편입하려는 알라나의 욕망은 배우의 오토바이 뒷좌석에서 떨어져 넘어지거나, 동성애자라는 정치가의 숨겨진 정체성을 발견하는 것으로 무산되고 만다.

도입부에서 개리와 알라나는 한 프레임 안에 포착되지만 헤어지는데, 엔딩에선 정방향과 역방향으로 각각 달려오는 둘의 모습이 교차 편집되다가 마침내 하나로 합쳐지며 대비를 이룬다. 서로를 외면하며 엇갈리던 커플의 시선은 그제야 비로소 같은 지평에 가까이 있는 상대를 마주보게 된 것이다. 멜로드라마의 관점에서 ‘리코리쉬 피자’는 상대를 위에서 내려다보려는 동정(Sympathy)을 떠나 동등한 눈높이로 서로를 대면해 공감(Emphathy)으로 이행하는 개안(開眼)의 과정에 관한 영화이다. 사방팔방 다 돌아봐도 어른다운 어른 같은 건 만나지 못했지만, 쓴맛 단맛 다본 끝에 한결 성숙해진 이들은 스스로 어른이 되어서 자신의 시대를 꿋꿋하게 살아나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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