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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재휘의 시네필] ‘베네데타’ 속됨을 감춘 종교 고발

  • 조재휘 영화평론가
  •  |   입력 : 2021-12-15 19:36:28
  •  |   본지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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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 버호벤은 통념의 파괴자이다. 네덜란드 시절의 초창기 작품은 차치하더라도, 페르소나인 룻거 하우어와 함께 미국에 가서 만든 첫 영화 ‘아그네스의 피’(1985)부터 그는 인간의 상스러움과 폭력을 거리낌 없이 묘사하며 낭만적인 중세 서사극을 원했던 관객의 머리를 후려갈긴 바 있다. ‘로보캅’(1987)은 폭력으로서 유지되고 재생산되는 자본주의 메커니즘의 야만성에 대한 해부였으며, ‘스타쉽 트루퍼스’(1997)는 블록버스터를 위장해 전체주의를 비꼰 한 편의 거대한 풍자극이었다. 근작인 ‘엘르’(2016)는 성폭행 사건을 겪은 한 여성과 가족의 일상을 그리지만 모순과 부조리함의 고리가 얼기설기 엮이는 혼란함을 연출하며 피해자 서사와 가족 드라마의 전형성을 비켜나간다.
영화 ‘베네데타’의 한 장면.
로맨티시즘과 자본주의, 국가 질서와 가족 공동체에 이르기까지, 폴 버호벤의 영화는 보통 사람이 정상적인 것이라 믿는 가치에 도발적인 질문을 던지고 그에 대한 믿음을 해체해버린다. 명징한 선악의 이분법, 구원의 서사를 걷어낸 자리엔, 심술궂은 지식인의 악취미스러운 블랙 유머, 그리고 도덕과 이데올로기로 쉽게 규정짓고 재단할 수 없는 인간 현실의 모호한 회색지대가 남아있을 뿐이다. 이러한 그의 관점엔 종교마저도 예외는 아니다.

레즈비언 수녀 베네데타 카를리니의 삶을 그린 전기 영화 ‘베네데타’(2021)에서도 감독은 대중의 통념에 철퇴를 날린다. 유년기에 수녀원에 들어간 베네데타는 20대에 접어들어선 에로틱한 망상과 결합된 예수의 환상을 겪게 된다(어린 시절 쓰러진 성모상의 젖을 무는 장면은 루이스 부뉴엘의 ‘황금시대’(1930)에서 여성이 대리석상의 발을 핥는 장면을 상기시킨다). 자기 자신을 예수의 신부라 굳게 믿은 베네데타는 몸에 십자가형의 상처와 같은 성흔이 생기면서 성녀로 인정받고 수녀원장의 자리까지 꿰차게 된다. 그러나 동료 수녀 바르톨로메아와의 동성애 연인 관계가 교회의 조사를 받게 되면서 몰락의 위기를 맞는다.

극 중 상황과 인간 군상을 통해 감독은 엄숙하고 성스러운 종교의 아우라를 벗겨내고 교회 역시 돈과 권력의 문제, 속세의 질서로 움직이는 인간사의 현장임을 드러낸다. 원장 수녀는 협상에서 밀리지 않고 돈을 뜯어내는 수완 있는 사업가이고, 신부는 주교로의 승진을 노리는 정치인의 모습을 보일 뿐, 신실한 종교인의 면모는 퇴색되고 없다. 정작 성녀여야 할 베네데타 역시 유년기의 드레스를 보관한 서랍장을 열어보면 바퀴벌레가 가득 차 있는 장면으로 겉과 속이 다른 인물임이 암시된다. 표면과 심층의 괴리, 이중성과 도덕적 모호함이라는 폴 버호벤의 작가적 모티브는 어김없이 관철된다.

‘베네데타’는 정신분석학적인 접근을 요구하는 텍스트이기도 하다. 우연한 자연 현상을 성모의 징벌이라고 해석해 도적에게서 어머니의 목걸이를 돌려받았던 베네데타는, 성년이 돼서도 종교적 환상에 히스테리적으로 몰입해 성녀의 이미지를 연출하며 현실을 왜곡한다. 바르톨로메아는 지금까지의 허위와 위선을 고백하고 같이 다른 곳으로 떠나길 원하지만, 그녀는 끝내 부인한 채 수녀원으로 돌아간다. “어머니 자궁에서 떠밀린 아기”의 기분이었다고 말했을 때 겁에 질린 표정처럼, 베네데타에게 있어 가장 공포스러운 일은 수녀원이라는 안전한 자궁을 떠나 바깥 세상에서 자신이 성녀도 무엇도 아니라는 진실을 대면하는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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