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를 통해 공개된 ‘D.P.’(2021)와 ‘오징어 게임’(2021)이 화제 몰이를 하는 중이다. 이 드라마에 쏟아지는 호응은 산업의 주류가 극장 상영 포맷에서 스트리밍 서비스로 이동하고, 영화의 위상을 8부작 내외의 웰메이드 드라마가 차지해가는 현실을 여실히 증명한다. 다만 작품이 참신하다는 인상은 받지 못했다. ‘D.P.’는 추리극의 구성을 도입해 몰입감을 높였지만 ‘용서받지 못한 자’(2005)가 개척했던 군대 부조리에 대한 사실주의적 접근으로부터 받은 영향이 역력하고, ‘오징어 게임’은 ‘배틀 로얄’(2000) 이래 서바이벌 장르의 클리세을 답습한 자리에 관습적인 신파극을 덧대어 서사의 활력을 잃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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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오징어게임’. |
진정으로 흥미로운 건 작품 자체가 아니라, 이를 둘러싸고 터져 나오는 여러 발화(發話)들이었다. 요컨대 ‘D.P.’를 본 남성 관객들이 군대 시절의 끔찍한 경험담을 공유한다던가, ‘오징어 게임’을 통해 한국사회의 야만적 면면을 털어놓는 반응들. 사실적인 터치든, 왜곡된 우화의 형태를 취하든, 두 작품의 폭발력은 사회구조에 대한 비판과 풍자의 메시지를 바탕에 깔고 시대의 불우를 옮기는 순간, 관객이 경험하고 살아온 현실의 공통된 경험, 익숙한 풍경과 초점이 맞아떨어지는 데서 생겨난다. 보편적이고 총체적인 현실의 이미지를 극에서 목격한 관객은 드라마의 서사에 한국 사회를 살아오면서 겪었을 개별적 경험의 실제를 접붙이면서 현실과 가상의 경계를 무너뜨리고 이입하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반응을 지켜보고 있자면 어딘가 익숙한 기시감이 든다. ‘조커’(2019)가 센세이션을 일으켰을 때, 사람들은 사회로부터 소외의 정상성으로부터 소외되고 버려진 아서 플렉의 비극적 처지에 감정을 이입하면서 스스로와 동일시하는 반응을 여러 후기에서 보였다. ‘기생충’(2019) 때도 과거에 겪었던 가난을 추억하고, 얼마나 힘겹게 살아가고 있는지를 인증하는 고백 또는 회고 조의 언어들을 SNS에서 심심찮게 찾을 수 있었다. 작품의 문제의식과는 별개로 관객은 작품을 계급주의 피해의식을 투사할 거울로 받아들였고, 아울러 자신의 삶을 피해자 서사의 틀로서 재서술하고 있었던 것이다.
자신을 피해자로 규정지은 이는 다른 사람을 악하다고 비난하고, 도덕적 정당성을 스스로에게 부여함으로써 관계를 망가뜨리곤 한다. ‘도덕의 계보학’에서 철학자 니체는 이를 두고 ‘원한의 정신(ressentiment)’이라 한 바 있다. 개혁과 개선의 여지가 있는 상황에서 사람들은 서로를 격려하고 발전하는 방향을 추구하기 마련이다. 그러나 억압과 착취가 사회를 지배하는 원리가 되어버린 사회, 가학과 피학의 순환고리에서 스트레스를 받은 사람들은 타인에 대한 시기심과 질투를 드러내며 손쉽게 원한과 적대에 빠져들고 만다. 이러한 ‘원한의 정신’이 일어나는 기반은 바로 죽음에 대한 공포다.
생존에 대한 불안을 느끼는 사람들은 거듭 공포를 환기하면서 무기력해지고, 보다 나은 사회에 대한 청사진과 상상력을 상실한 채 타인을 헐뜯는데 골몰하고 만다. ‘조커’에서 ‘오징어 게임’에 이르기까지 화제작의 유행과 반응들, 갈수록 ‘원한의 정신’이 만연해가는 풍경은 갈수록 한국사회가 위험의 임계점에 치달아 가고 있음을 드러내는 전조처럼 보인다. ‘언젠가 세상은 영화가 될 것이다’던 말이 점점 두려워지는 이유이다.
영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