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부산메디클럽

[조재휘의 시네필] 피해자 서사의 시대…‘오징어 게임’

  • 조재휘 영화평론가
  •  |   입력 : 2021-09-29 18:57:19
  •  |   본지 14면
  • 글자 크기 
  • 글씨 크게
  • 글씨 작게
넷플릭스를 통해 공개된 ‘D.P.’(2021)와 ‘오징어 게임’(2021)이 화제 몰이를 하는 중이다. 이 드라마에 쏟아지는 호응은 산업의 주류가 극장 상영 포맷에서 스트리밍 서비스로 이동하고, 영화의 위상을 8부작 내외의 웰메이드 드라마가 차지해가는 현실을 여실히 증명한다. 다만 작품이 참신하다는 인상은 받지 못했다. ‘D.P.’는 추리극의 구성을 도입해 몰입감을 높였지만 ‘용서받지 못한 자’(2005)가 개척했던 군대 부조리에 대한 사실주의적 접근으로부터 받은 영향이 역력하고, ‘오징어 게임’은 ‘배틀 로얄’(2000) 이래 서바이벌 장르의 클리세을 답습한 자리에 관습적인 신파극을 덧대어 서사의 활력을 잃고 있었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오징어게임’.
진정으로 흥미로운 건 작품 자체가 아니라, 이를 둘러싸고 터져 나오는 여러 발화(發話)들이었다. 요컨대 ‘D.P.’를 본 남성 관객들이 군대 시절의 끔찍한 경험담을 공유한다던가, ‘오징어 게임’을 통해 한국사회의 야만적 면면을 털어놓는 반응들. 사실적인 터치든, 왜곡된 우화의 형태를 취하든, 두 작품의 폭발력은 사회구조에 대한 비판과 풍자의 메시지를 바탕에 깔고 시대의 불우를 옮기는 순간, 관객이 경험하고 살아온 현실의 공통된 경험, 익숙한 풍경과 초점이 맞아떨어지는 데서 생겨난다. 보편적이고 총체적인 현실의 이미지를 극에서 목격한 관객은 드라마의 서사에 한국 사회를 살아오면서 겪었을 개별적 경험의 실제를 접붙이면서 현실과 가상의 경계를 무너뜨리고 이입하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반응을 지켜보고 있자면 어딘가 익숙한 기시감이 든다. ‘조커’(2019)가 센세이션을 일으켰을 때, 사람들은 사회로부터 소외의 정상성으로부터 소외되고 버려진 아서 플렉의 비극적 처지에 감정을 이입하면서 스스로와 동일시하는 반응을 여러 후기에서 보였다. ‘기생충’(2019) 때도 과거에 겪었던 가난을 추억하고, 얼마나 힘겹게 살아가고 있는지를 인증하는 고백 또는 회고 조의 언어들을 SNS에서 심심찮게 찾을 수 있었다. 작품의 문제의식과는 별개로 관객은 작품을 계급주의 피해의식을 투사할 거울로 받아들였고, 아울러 자신의 삶을 피해자 서사의 틀로서 재서술하고 있었던 것이다.

자신을 피해자로 규정지은 이는 다른 사람을 악하다고 비난하고, 도덕적 정당성을 스스로에게 부여함으로써 관계를 망가뜨리곤 한다. ‘도덕의 계보학’에서 철학자 니체는 이를 두고 ‘원한의 정신(ressentiment)’이라 한 바 있다. 개혁과 개선의 여지가 있는 상황에서 사람들은 서로를 격려하고 발전하는 방향을 추구하기 마련이다. 그러나 억압과 착취가 사회를 지배하는 원리가 되어버린 사회, 가학과 피학의 순환고리에서 스트레스를 받은 사람들은 타인에 대한 시기심과 질투를 드러내며 손쉽게 원한과 적대에 빠져들고 만다. 이러한 ‘원한의 정신’이 일어나는 기반은 바로 죽음에 대한 공포다.

   
생존에 대한 불안을 느끼는 사람들은 거듭 공포를 환기하면서 무기력해지고, 보다 나은 사회에 대한 청사진과 상상력을 상실한 채 타인을 헐뜯는데 골몰하고 만다. ‘조커’에서 ‘오징어 게임’에 이르기까지 화제작의 유행과 반응들, 갈수록 ‘원한의 정신’이 만연해가는 풍경은 갈수록 한국사회가 위험의 임계점에 치달아 가고 있음을 드러내는 전조처럼 보인다. ‘언젠가 세상은 영화가 될 것이다’던 말이 점점 두려워지는 이유이다.

영화평론가
ⓒ국제신문(www.kookj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국제신문 뉴스레터
국제신문 네이버 뉴스스탠드 구독하기
국제신문 네이버 구독하기
뭐라노 뉴스

 많이 본 뉴스RSS

  1. 1150년史 부산항 무대 삼은 아레나, 세계 어디에도 없는 K-팝 명소로
  2. 2이재명 대통령 넘어선 민주당 지지율에 분열 확대
  3. 3연휴 사흘간 32만 ‘부캉이앓이’…다가오는 작별(종합)
  4. 4[도청도설] 부캉이가 띄운 북항
  5. 5“부산관광 뜨는 지금이 적기” 호텔투자 열기 서부산까지
  6. 6분유에 소주 타 먹인 친부…여직원 2년간 추행한 임원
  7. 7‘부캉이’를 市 명예 홍보대사로…온라인 투표 몰표
  8. 8영화숙·재생원 진실규명 공로 손석주 ‘민주시민상’
  9. 9한동훈 ‘지뢰폭발’ 대여공세 주도…복당론 선긋는 장동혁과 대립각
  10. 10부산시 재정난 겪는데…시유재산 세입관리 부실 투성이
  1. 1이재명 대통령 넘어선 민주당 지지율에 분열 확대
  2. 2한동훈 ‘지뢰폭발’ 대여공세 주도…복당론 선긋는 장동혁과 대립각
  3. 3폭풍 SNS, 배우자 외부활동…총선운동 방불케 한 추석행보(종합)
  4. 4與 “민생 더 챙기라는 말 많아” 野 “대선 언제냐며 시민 분노”
  5. 5안보·사법·與 내홍…추석 이어 국감정국 달군다(종합)
  6. 6北포로 송환 공개 논란, DMZ 사고 조사 지연…연휴 일파만파(종합)
  7. 7[2026 국감 브리핑] 김희정 "'대입 원서 접수번호로 경쟁률 유추 가능' 사실로 확인…정부 대책마련해야"
  8. 8연휴 강타한 우크라 포로 송환· DMZ 지뢰사고 늑장조사 논란
  9. 9李대통령, 미국·멕시코 순방 후 귀국…한미회담 등 성과 점검
  10. 10울산 북구·구의회, 노동자 권익 보호 위해 맞손 잡았다
  1. 1150년史 부산항 무대 삼은 아레나, 세계 어디에도 없는 K-팝 명소로
  2. 2“부산관광 뜨는 지금이 적기” 호텔투자 열기 서부산까지
  3. 3K-팝 효과 끝? 관광수지 넉 달만에 적자 전환
  4. 4늘어나는 법무수요…부산도시公 사내 변호사 찾기 안간힘
  5. 5한화에어로 ‘경력직 가이드라인(특정 학력·나이)’ 논란…“채용과정 개선할 것”(종합)
  6. 6금고 과당경쟁 제동…지역은행 판도 촉각
  7. 7“독자 기술이 미래 경쟁력…내년 매출 4100억 목표”
  8. 8세 가지 맛 한 번에…CU 트리플 삼각김밥 가성비 한 끼 호응
  9. 9대출 갈아타라더니…은행 16곳 중 11곳 주담대 ‘금리 역전’
  10. 10CG 없이 대규모 전쟁·액션신 뚝딱…생성형 AI 활용 본격화
  1. 1연휴 사흘간 32만 ‘부캉이앓이’…다가오는 작별(종합)
  2. 2분유에 소주 타 먹인 친부…여직원 2년간 추행한 임원
  3. 3‘부캉이’를 市 명예 홍보대사로…온라인 투표 몰표
  4. 4영화숙·재생원 진실규명 공로 손석주 ‘민주시민상’
  5. 5부산시 재정난 겪는데…시유재산 세입관리 부실 투성이
  6. 6야구 없는 날에도 팬·관광객 북적…도쿄돔 일대는 미니도시
  7. 7금정구의원이라 믿었는데…임대보증금 1년 넘게 안 줘
  8. 8선거때 식사대접 혐의 사하구 체육회장 송치…돈봉투 수사는 무혐의
  9. 9부산지하철노조 쟁의 가결…조정 거쳐 내달 파업 예고
  10. 10양산 춘추공원 재정비…6년 만에 변경안 고시
  1. 1오상욱 끝냈다…펜싱 男 단체 우승…승마 남동헌, 12년 만에 정상 탈환(종합)
  2. 2K-농구 황금시대…남녀 동반 우승, 3대3도 첫 金(종합)
  3. 3이강인·황인범 활용법 찾아라
  4. 4안세영, 세계 5위 가볍게 압도하며 4강행…사상 첫 2연패 도전
  5. 5[속보]강준이, AG 스케이트보드 ‘금빛 트릭’…한국 사상 첫 金
  6. 6높이뛰기 우상혁, 2m22로 동메달
  7. 7우승 타이틀 박탈 위기…맨시티 ‘유죄 판단’보도에도 회장 “결백 입증하겠다”
  8. 8[속보]'약속의 8회’ 한국 야구, 일본 3-1로 꺾고 AG 5연패
  9. 9한국 야구, 일본 꺾고 금메달…아시안게임 5연패 달성
  10. 10남동헌, 아시안게임 승마 마장마술 금메달
부산 야구장 미래는
야구 없는 날에도 팬·관광객 북적…도쿄돔 일대는 미니도시
부산 야구장 미래는
사직 역사성 있지만 대체구장 부담…북항 돔은 재원 관건
  • 2026 국제환경에너지산업전
  • 국제골프아카데미
  • 부산국제마라톤
  • 어린이청소년경제아카데미
  • BNK생명나눔챌린지
  • 유콘서트
걷고 싶은 부산 그린워킹 홈페이지
국제신문 대관안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