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부산메디클럽

[조재휘의 시네필] 15년 만의 귀환…감독판에 담긴 의미

  • 조휘재 영화평론가
  •  |   입력 : 2020-11-18 19:33:16
  •  |   본지 16면
  • 글자 크기 
  • 글씨 크게
  • 글씨 작게
‘킹덤 오브 헤븐(2005)’의 극장판은 반쪽짜리 영화였다. ‘로보캅(1987)’의 폴 버호벤이 준비하다 그의 손을 떠난 십자군 프로젝트를 이어받은 리들리 스콧은 소년 시절부터 오랜 숙원으로 삼고 있었던 자신만의 중세 기사도 이야기를 만들어내고자 했다. 이것은 감독 본인이 ‘글래디에이터(2000)’로 포문을 열었던 21세기 대형 서사극의 최종적인 발전형이 될 예정이었다. 그러나 20세기 폭스는 상영 회차를 늘리기 위해 장면들을 덜어낼 것을 지시했고, 스튜디오의 요구를 받아들인 리들리 스콧은 자신의 의도대로 완성된 194분 감독판에서 50분 가량의 분량을 들어냈다. 영화 전체에서 장장 4분의 1을 잘라낸 것이다.
리들리 스콧 감독의 ‘킹덤 오브 헤븐’.
145분의 극장판은 인과 관계가 충분히 설명되지 않는 서사구조의 부실함을 지적받으며 혹평을 면치 못했다. 1억3000만 달러의 제작비를 투입한 영화가 거둔 전체 수익 또한 손익분기점에 미치지 못하는 2억1000만 달러 남짓에 그쳤다. 그러나 2005년 12월 23일, 제한 상영의 형태로나마 감독판이 공개되면서 상황은 반전되었다. 원형을 되찾은 영화는 걸작으로 재평가되어 명예를 회복했고, 이듬해 디스크 네 장 분량의 감독판 DVD를 통해 대중에게 공개되었다. 15년 만에 다시 극장에 걸린 ‘킹덤 오브 헤븐’은 바로 이 감독판이다.

‘벤허(1959)’나 ‘스팔타커스(1960)’ 등이 그래왔듯, 전형적인 할리우드 서사극은 명확한 흑백, 선악의 대비와 그에 따르는 갈등, 대결의 구도를 취하기 마련이다. 그러나 십자군을 소재로 다룸에 있어 전통적인 서사극의 내러티브 방식을 취하는 순간, 영화는 반기독교 아니면 반이슬람 한쪽에 기우는 일방적이고 편향된 가치관을 담은 작품으로 전락할 위험을 안고 있었다. 그런 점에서 십자군 전쟁의 역사에서 1184년에서 1187년까지의 기간을 영화의 시간적 배경으로 삼고자 한 리들리 스콧의 결정은 대담한 도전이었다.

예루살렘 공성전, 그리고 살라딘과의 협상으로 이어지는 이 역사적 배경에는 분명 대규모 상업영화가 필요로 하는 스펙터클의 순간들은 있지만, 명쾌한 승리가 아닌 불완전한 타협과 일시적 평화로 맺어진다는 점에서 장르의 규칙을 전면으로 위반하는 것이었다.

섣불리 어느 한 편을 옹호하거나 비난하지 않으며 역사 현실 속에서 작동하는 인간의 현명함과 어리석음, 흥망성쇠를 바라보는 이 ‘가치중립성’은 명쾌한 기승전결을 방해한다는 점에서 ‘킹덤 오브 헤븐’이 지닌 약점이지만 동시에 의도된 핵심이기도 하다. 이 영화를 통해 리들리 스콧은 “야만적인 전쟁보다는 떳떳한 타협이야말로 진정 명예로운 것”이라는 도덕적 메시지를 거대 자본의 블록버스터 속에 관철코자 한다.

‘킹덤 오브 헤븐’의 엔딩에서 관객은 3차 십자군 원정을 떠나는 리처드 1세의 출병을 보게 된다. 그리고 리들리 스콧은 원정에서 돌아오던 리처드 1세의 전사로 ‘로빈 후드(2010)’를 시작한다. 전자가 이라크전에 대한 역사적 대응물이라면, 후자는 테러와의 전쟁 이후 망가져 버린 서구 사회의 내적 모순에 관한 현실적 메타포로서 작동한다. 역사의 공간을 재창조하면서 리들리 스콧은 그 안에 변해가는 세계의 양상을 투영하고 증언하고자 해왔다. 증오와 폭력, 불관용의 불길이 곳곳에서 치솟아 오르고 있는 지금, 다시 돌아온 이 현대의 클래식은 우리에게 무엇을 시사하고 있는 것일까?

영화평론가
ⓒ국제신문(www.kookj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국제신문 뉴스레터
국제신문 네이버 뉴스스탠드 구독하기
국제신문 네이버 구독하기
뭐라노 뉴스

오늘이슈

 많이 본 뉴스RSS

  1. 1고리 3·4호기 '계속운전 허가' 27일 재심의…승인 여부 촉각
  2. 2[도청도설] if, 손아섭
  3. 3전국 언론인 청와대 앞 집결…“국제신문 대주주 엄벌” 촉구
  4. 4[포토에세이] 가을의 꽃 코스모스
  5. 5부산에 엔비디아 전용 생산라인 선다(종합)
  6. 6부산 재정자립도 1위 강서구, 생활임금 도입 나홀로 거부
  7. 7북극항로 개척자 “유빙·극한환경서 새 희망 봤다”
  8. 8되돌아와 수로 출구 앞에서 맴도는 부캉이
  9. 9공공 건설현장인데…추락 안전망 없고 감독 태만 부지기수
  10. 10[속보] 국정원 "김정은 사망설 허위" 국회 정보위에 보고
  1. 1[속보] 국정원 "김정은 사망설 허위" 국회 정보위에 보고
  2. 2北 “국경선 확성기 외 새 대응수단 대기” 연일 대남 협박(종합)
  3. 3가덕 공사비 증액 ‘강제’ 아닌 ‘권고’…법개정 정부 초안 논란
  4. 4이 대통령, 최길수 특별감찰관 임명
  5. 5李대통령 지지율 소폭 상승해 40% 회복…부정평가는 50%
  6. 6최길수 특별감찰관 청문보고서 채택
  7. 7공소청 첫 국감 ‘李 공소 취소’ 공방…檢 총장 대행 “검토·지시 한 바 없어”
  8. 8‘남북 MDL 상호확인·군통신선 복원’ 정부, 군사회담 北에 제안
  9. 9김민석, 소방노조 만나 “정책·예산으로 안전·처우 개선” 약속
  10. 10금융위원장 "산은 부산 이전 하지 않는 것으로 정리" 파장
  1. 1고리 3·4호기 '계속운전 허가' 27일 재심의…승인 여부 촉각
  2. 2부산에 엔비디아 전용 생산라인 선다(종합)
  3. 3북극항로 개척자 “유빙·극한환경서 새 희망 봤다”
  4. 4로그인 없이 서버장악 가능…전 세계 ‘PHP’ 보안 비상
  5. 5부산시대 연 HMM, 올해만 6조원 투자
  6. 6서낙동강 수변입지에 4Bay 구조…실속 갖춘 59㎡ 단일평형 차별화
  7. 7[한 손 뉴스] 낙상·실종 막는 ‘스마트신발’…부산TP, 노약자 지원 확대
  8. 8부산 온 인도 구자라트주 대표단, 지역기업과 조선·금융 협력 모색
  9. 9부산건설사·대기업, 상생협력 머리 맞댄다
  10. 10한은 기준금리 3% 동결…긴축 유지, 속도조절 속 내달 다시 인상 가능성(종합)
  1. 1전국 언론인 청와대 앞 집결…“국제신문 대주주 엄벌” 촉구
  2. 2부산 재정자립도 1위 강서구, 생활임금 도입 나홀로 거부
  3. 3되돌아와 수로 출구 앞에서 맴도는 부캉이
  4. 4공공 건설현장인데…추락 안전망 없고 감독 태만 부지기수
  5. 5부캉이 머물던 북항서 기름 유출…8시간째 모습 안 보여
  6. 6[속보] 여전히 수로 주변 배회하는 ‘부캉이’…“환경 적응하면 바다로 간다”
  7. 7“거제 양대 조선소와 상생 협의…남부내륙철도에 행정력 집중”
  8. 8[속보] '명태균 여론조사비 대납 의혹' 오세훈 2심 무죄
  9. 9오늘의 날씨- 2026년 10월 23일
  10. 10부산교통공사 노사, 파업 직전 잠정 합의…도시철도 정상 운행
  1. 1종합 6위 부산, 고른 활약에도 아쉬움
  2. 2만년 꼴찌 삼성 선두 ‘파란’…前 챔프 KCC 최하위 ‘수모’
  3. 3쇼트트랙 전설 최민정의 마지막 질주
  4. 4‘성폭행 의혹 제기’ 초교후배…기성용에 1억 배상해야
  5. 5‘높이’ 키운 BNK썸, 2년 전 영광 재현 노린다
  6. 6호랑이 발톱 세운 김도영…돌아온 사자 포효 최형우
  7. 7축구협회장 선거, 12월 18일 추진
  8. 8요트 하지민, 레이저급 정상…전국체전 16연패 역사 쓰다
  9. 9부산시설공단 여자핸드볼팀 전국체전 2년 연속 금메달
  10. 10마무리 캠프 코앞인데…롯데 감독·단장 인선 언제쯤
우리은행
부산 야구장 미래는
“돔? 재건축? 미래가치 따져야” “전문가 주도적 역할 부여를”
부산 야구장 미래는
선수 공간까지 체험하는 돔투어…야구 테마 복합문화시설
  • 국제신문 골프대회
  • 맘편한 부산
  • 부산국제마라톤
  • BNK생명나눔챌린지
  • 유콘서트
걷고 싶은 부산 그린워킹 홈페이지
국제신문 대관안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