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지희의 ‘국도극장’(2018)은 버스 터미널의 적막한 풍경으로 막을 연다. 만년 고시생으로 사법고시를 붙들고 있던 기태(이동휘)는 어머니의 병환을 전해 듣고 고향 벌교로 돌아간다. 사법고시는 폐지됐고 취업 활동도 여의치 않자, 기태는 지역의 낡은 재개봉관 ‘국도극장’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게 된다. 그는 오랜 시간 동안 떠나있던 고향에서 과거의 인연을 마주한다. 이준익의 ‘변산’(2017)이 청년에게 자신의 기원, 정서적 토포스(Topos)를 마주하도록 해 묵은 감정의 골을 푸는 해원(解寃)의 이야기였던 것처럼, 이것은 또 다른 귀향의 드라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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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국도극장’ 스틸 컷. |
영화에서 고향은 결코 살갑고 따스한 정취를 띠지 않는다. 어머니는 치매 증세가 있고, 가정을 꾸린 형은 이민을 준비 중이며, 가수 지망생인 옛 친구 영은(이상희)은 그곳을 떠나 서울로 가려 한다. 오 실장(이한위)은 극장 구석에서 숙식을 해결하며 극장의 남아있는 나날들을 정리한다. 찾는 사람 하나 없이 철 지난 영화를 상영하는, 언제 문 닫을지 알 수 없는 국도극장서 영화는 낡고 헤진 동네의 풍경과 삶의 균열을 담담히 훑을 뿐, 섣불리 낭만화하지도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는다.
거칠게 말하자면 한국영화에는 ‘상행선’ 영화 그리고 ‘하행선’ 영화라 해도 좋을 두 개의 전통이 있다. 김기영의 ‘하녀’(1960) 김호선의 ‘영자의 전성시대’(1975) 이장호의 ‘바람 불어 좋은 날’(1980)이 지역에서 상경해 살길을 찾는 이들의 이야기라면, 그와 상반된 극점에 ‘삼포 가는 길’(1975)이나 ‘안녕하세요, 하나님’(1987)처럼 역으로 도시를 떠나 지역으로 향하는 방랑의 영화들이 나란히 자리하고 있다. 전자의 서사가 추동하는 동력이 서울이라는 공간으로 표상되는 세속적 성공에 대한 동경 또는 모더니티에 대한 욕망이라면, 후자는 근대화의 과정에서 상처 입은 이들이 갖는 치유와 피안에 대한 바람이다.
도시적 삶이 내뿜는 매혹은 주변부 사람들을 자석처럼 내부로 끌어들이지만, 반대로 그 안에 속하지 못하는 이들과 적응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솎아내고 다시 바깥으로 몰아낸다. 오 실장과 담배를 피우면서 기태는 말한다. “서울은 이제 싫어요. 외로운 곳이에요.” 도시의 삶은 직업과 성공의 기회를 미끼로 흔들지만, 그것을 추구한 대가는 유기적으로 연결돼 있던 가족, 공동체로부터 찢어지는 아픔과 상실이다. 영화는 서울에서 기태의 삶이 어떠했는가를 보여주지 않지만, 그러한 생략 덕분에 관객은 자신의 경험을 공백에 포개 넣음으로써 공감과 이입의 여지를 갖게 된다.
이야기가 진행되면서 국도극장의 간판은 여러 번 교체된다. ‘흐르는 강물처럼’(1992) ‘봄날은 간다’(2001) ‘첨밀밀’(1996) ‘영웅본색’(1986) 순으로 바뀌는 간판은 고향에 돌아오고, 옛 친구와 사랑의 감정을 싹틔우고, 종국엔 떠나지 않고 고향에 머물게 되는 기태의 내적 심리를 암시하는 장치로 작용한다. ‘영웅본색’의 영어 제목인 ‘A better tomorrow’처럼 기태의 미래가 밝을지는 알 수 없다. 그럼에도 분명한 건 기태는 도시로부터의 일탈을 감행했다는 사실이다. 시행착오는 있겠지만 이제부턴 그의 앞날에 다른 대안과 가능성, 성공과 출세, 경쟁에 목매지 않아도 되는 삶의 또 다른 지평이 열릴 것이다. 영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