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부산메디클럽

[조재휘의 시네필] 귀향, 또 다른 삶의 지평을 찾아서

  • 조휘재 영화평론가
  •  |   입력 : 2020-07-08 19:24:38
  •  |   본지 13면
  • 글자 크기 
  • 글씨 크게
  • 글씨 작게
전지희의 ‘국도극장’(2018)은 버스 터미널의 적막한 풍경으로 막을 연다. 만년 고시생으로 사법고시를 붙들고 있던 기태(이동휘)는 어머니의 병환을 전해 듣고 고향 벌교로 돌아간다. 사법고시는 폐지됐고 취업 활동도 여의치 않자, 기태는 지역의 낡은 재개봉관 ‘국도극장’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게 된다. 그는 오랜 시간 동안 떠나있던 고향에서 과거의 인연을 마주한다. 이준익의 ‘변산’(2017)이 청년에게 자신의 기원, 정서적 토포스(Topos)를 마주하도록 해 묵은 감정의 골을 푸는 해원(解寃)의 이야기였던 것처럼, 이것은 또 다른 귀향의 드라마다.
영화 ‘국도극장’ 스틸 컷.
영화에서 고향은 결코 살갑고 따스한 정취를 띠지 않는다. 어머니는 치매 증세가 있고, 가정을 꾸린 형은 이민을 준비 중이며, 가수 지망생인 옛 친구 영은(이상희)은 그곳을 떠나 서울로 가려 한다. 오 실장(이한위)은 극장 구석에서 숙식을 해결하며 극장의 남아있는 나날들을 정리한다. 찾는 사람 하나 없이 철 지난 영화를 상영하는, 언제 문 닫을지 알 수 없는 국도극장서 영화는 낡고 헤진 동네의 풍경과 삶의 균열을 담담히 훑을 뿐, 섣불리 낭만화하지도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는다.

거칠게 말하자면 한국영화에는 ‘상행선’ 영화 그리고 ‘하행선’ 영화라 해도 좋을 두 개의 전통이 있다. 김기영의 ‘하녀’(1960) 김호선의 ‘영자의 전성시대’(1975) 이장호의 ‘바람 불어 좋은 날’(1980)이 지역에서 상경해 살길을 찾는 이들의 이야기라면, 그와 상반된 극점에 ‘삼포 가는 길’(1975)이나 ‘안녕하세요, 하나님’(1987)처럼 역으로 도시를 떠나 지역으로 향하는 방랑의 영화들이 나란히 자리하고 있다. 전자의 서사가 추동하는 동력이 서울이라는 공간으로 표상되는 세속적 성공에 대한 동경 또는 모더니티에 대한 욕망이라면, 후자는 근대화의 과정에서 상처 입은 이들이 갖는 치유와 피안에 대한 바람이다.

도시적 삶이 내뿜는 매혹은 주변부 사람들을 자석처럼 내부로 끌어들이지만, 반대로 그 안에 속하지 못하는 이들과 적응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솎아내고 다시 바깥으로 몰아낸다. 오 실장과 담배를 피우면서 기태는 말한다. “서울은 이제 싫어요. 외로운 곳이에요.” 도시의 삶은 직업과 성공의 기회를 미끼로 흔들지만, 그것을 추구한 대가는 유기적으로 연결돼 있던 가족, 공동체로부터 찢어지는 아픔과 상실이다. 영화는 서울에서 기태의 삶이 어떠했는가를 보여주지 않지만, 그러한 생략 덕분에 관객은 자신의 경험을 공백에 포개 넣음으로써 공감과 이입의 여지를 갖게 된다.

이야기가 진행되면서 국도극장의 간판은 여러 번 교체된다. ‘흐르는 강물처럼’(1992) ‘봄날은 간다’(2001) ‘첨밀밀’(1996) ‘영웅본색’(1986) 순으로 바뀌는 간판은 고향에 돌아오고, 옛 친구와 사랑의 감정을 싹틔우고, 종국엔 떠나지 않고 고향에 머물게 되는 기태의 내적 심리를 암시하는 장치로 작용한다. ‘영웅본색’의 영어 제목인 ‘A better tomorrow’처럼 기태의 미래가 밝을지는 알 수 없다. 그럼에도 분명한 건 기태는 도시로부터의 일탈을 감행했다는 사실이다. 시행착오는 있겠지만 이제부턴 그의 앞날에 다른 대안과 가능성, 성공과 출세, 경쟁에 목매지 않아도 되는 삶의 또 다른 지평이 열릴 것이다. 영화평론가
ⓒ국제신문(www.kookj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국제신문 뉴스레터
국제신문 네이버 뉴스스탠드 구독하기
국제신문 네이버 구독하기
뭐라노 뉴스

 많이 본 뉴스RSS

  1. 1만조 때면 멈추는 광복지하도 에스컬레이터
  2. 2‘부캉이’ 추워지기 전 바다로…21일 3차 외해유도(종합)
  3. 323명 숨진 ‘아리셀 화재참사’ 기업 대표, 징역 4년형 확정(종합)
  4. 4‘좌초 위기’ 해운대 70층 주상복합 개발 기지개 켜나
  5. 5창원 구산해양단지 컨소 회생 포기…26년 표류 끝 좌초되나
  6. 6마무리 캠프 코앞인데…롯데 감독·단장 인선 언제쯤
  7. 7신공항 공사 컨소시엄 1곳 탈퇴…내달 우선착공 무산 우려(종합)
  8. 8부산시, 신임 기조실장 26일 발표…행정부시장 행안부 고위간부 가닥
  9. 9‘청문 부적격’ 기관장들 임명 기류…田시장-시의회 협치 두번째 뇌관
  10. 10부산에 둥지 수산무역협회…김 등 수출 드라이브
  1. 1‘청문 부적격’ 기관장들 임명 기류…田시장-시의회 협치 두번째 뇌관
  2. 2지광(국제신문 대주주) 만난 부산노동청장 “체임 방치 땐 강력 조치”
  3. 3교육위 국감 화두 ‘교부금 축소’…“교육감 대응도 안일” 질타
  4. 4부산회생법원 국감 “지역언론 가치 고려 국제신문 살펴야”
  5. 5與, 초광역특구법안 발의 “주 52시간 특례 숙의”
  6. 6언론노조·국제 비대위 “대주주 엄벌” 청와대 간다
  7. 7與, 추미애 ‘재정 빨대’ 진화 안간힘인데 기름 부은 부승찬(종합)
  8. 8또 도마 오른 항만공사 통합…“소신없는 사장 책임” 질타
  9. 9[속보] 진영승 합참의장 “北 적반하장 용납 못해…추가 도발 감행시 단호하게 대응”
  10. 10[2026 국감 브리핑]조경태 “최고 시스템 갖춘 건기연이 가덕도신공항 부지 침하 연구해야”
  1. 1‘좌초 위기’ 해운대 70층 주상복합 개발 기지개 켜나
  2. 2신공항 공사 컨소시엄 1곳 탈퇴…내달 우선착공 무산 우려(종합)
  3. 3부산에 둥지 수산무역협회…김 등 수출 드라이브
  4. 4송도 바다서 만난 융드립 커피 한 잔
  5. 5가덕 6200억 증액 확약 절실…국회는 특별법 개정안 논의
  6. 6관광과 지역민 함께 성장을…세계가 부산서 묘책 찾는다
  7. 7“친환경 항만 투자 100억 당, 부산 124억 생산유발”
  8. 8부산은행, 불꽃축제 등 지역축제 발전에 2억 후원
  9. 9동남아 접수하러 ‘부산표 게임’ 방콕행
  10. 10예탁원 나눔재단, 17년째 지역상생 실천
  1. 1만조 때면 멈추는 광복지하도 에스컬레이터
  2. 2‘부캉이’ 추워지기 전 바다로…21일 3차 외해유도(종합)
  3. 323명 숨진 ‘아리셀 화재참사’ 기업 대표, 징역 4년형 확정(종합)
  4. 4창원 구산해양단지 컨소 회생 포기…26년 표류 끝 좌초되나
  5. 5부산시, 신임 기조실장 26일 발표…행정부시장 행안부 고위간부 가닥
  6. 6APEC공원·금련산역 러너지원공간 문 열어
  7. 7“기존 공부량 유지하며 취약점 공략…남은 주말 수능처럼 모의고사를”
  8. 8“광안리 해변 보행공간 개선…구 차원 추가 캐시백 검토중”
  9. 9사망사고 1년 만에…부산구치소 수감자 집단폭행 재발
  10. 10구·군 일손 적고 주인 자비부담 꺼려…슬레이트 철거 하세월
  1. 1마무리 캠프 코앞인데…롯데 감독·단장 인선 언제쯤
  2. 231세 데이터 분석가, 최연소 MLB 구단 사장됐다
  3. 3유럽 강호 맞서는 김시우·임성재
  4. 4잘 넣긴 하는데…욱하는 외인, 속 타는 구단
  5. 5전설 수지 수산티 넘은 전설…안세영 47번째 우승 ‘세계新’(종합)
  6. 6KIA 내리 3승이냐, LG 반격 첫 승이냐
  7. 73연승 KIA, LG 꺾고 23년 만에 플레이오프 진출
  8. 8국대 에이스 곽빈, 최동원상 받는다
  9. 9김태형 유임이냐, 이동욱 전 NC 다이노스 감독·조성환 해설위원 등 새 얼굴이냐
  10. 10돈으로 우승은 못 샀다…MLB 월드시리즈 연봉 하위팀 반란
우리은행
부산 야구장 미래는
“돔? 재건축? 미래가치 따져야” “전문가 주도적 역할 부여를”
부산 야구장 미래는
선수 공간까지 체험하는 돔투어…야구 테마 복합문화시설
  • 국제신문 골프대회
  • 맘편한 부산
  • 부산국제마라톤
  • BNK생명나눔챌린지
  • 유콘서트
걷고 싶은 부산 그린워킹 홈페이지
국제신문 대관안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