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판 누르거나 화면 터치 익숙
- 펜 잡는 근육 약해져 ‘삐뚤빼뚤’
- 엄지·검지로 펜 가볍게 쥐고
- 중지로 뒷받침… 각도는 120도
- 바른 자세로 앉기 등도 중요
- “교정은 글씨 구조 다듬는 것
- 글씨체는 개인 취향 맞춰 연습”
친구의 짝사랑 이야기다. 상대는 함께 논술학원에 다니는 남학생으로, 이름과 나이 말고는 아는 게 별로 없었다. 친구는 남몰래 그를 지켜보며 한동안 설레는 상상(그와 사귀고 결혼해서 행복한 삶을 꾸리는 전개)에 빠졌다. 어느 날 친구는 우연히 그 남자의 노트를 보게 됐다. 친구의 상상 속에서 완벽한 이상형으로 살던 그가, 사실은 완벽한 악필이란 걸 확인하는 순간이었다. 친구는 지렁이처럼 기어가는 그의 글씨를 보고 자신의 로맨스 드라마를 조기 종영했다.
글씨는 때로 그 사람의 이미지를 좌우하는 선입견 요소가 된다. ‘참바른글씨’ 부산점(해운대구 재송동) 허진호 원장은 “글씨는 그 사람의 성격을 드러낸다. 제2의 인격과 마찬가지”라고 강조했다. 종이에 쓰는 것보다 자판을 누르거나 화면을 터치하는 게 더 익숙한 시대인 지금, 펜을 잡는 근육은 점점 약해진다. 악필이 늘어나는 이유다. 이번 황금연휴에는 차분한 마음으로 종이를 펼치고, 그동안 신경 쓰지 못했던 자신의 글씨와 마주하면 어떨까. 허 원장의 글씨 처방을 참고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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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바른글씨’ 부산점 허진호 원장이 한 수강생에게 연필 잡는 방법을 알려주고 있다. 조금만 글을 써도 손과 팔이 아프다면 펜을 잡는 방법이나 자세가 잘못된 게 아닌지 살펴봐야 한다. 참바른글씨 부산점 제공 |
■연필 각도 120도, 힘주지 마세요
글을 쓰는 것은 일기처럼 개인적인 영역을 빼면 답안지나 편지처럼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위함이 대부분이다. 다른 사람이 알아보지 못하고 가독성이 떨어지는 글씨를 쓰는 사람을 ‘악필’이라고 부른다. 악필은 스스로도 그 사실을 알고 있다. 주변에서 “무슨 글씨인지 모르겠다”거나 “글씨 좀 예쁘게 써라”는 핀잔을 많이 듣기 때문이다.
스마트폰에 익숙한 세대일수록 악필이 될 가능성은 더욱 커진다. 글씨를 못 쓰는 사람에게 나타나는 공통적인 특징은 없다. 허 원장은 “악필이 100명 있다고 가정하면, 그들이 글씨를 못 쓰는 이유는 100가지 이상이다”고 말했다. 그는 “펜을 잡는 자세가 잘못됐거나 앉는 자세가 바르지 않아도 글씨를 제대로 쓰지 못한다. 또 글자의 구조를 생각하지 않고 막 쓰는 사람, 성격이 급해서 마구 휘갈기는 사람, 펜을 쥘 때 손에 힘을 너무 주거나 빼는 사람도 글씨를 잘 쓰기 어렵다. 이 단점들을 모두 가진 사람도 있다”고 덧붙였다.
조금만 글을 써도 팔이나 손이 아프면 잘못된 자세로 펜을 잡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 펜을 올바로 잡는 법은 다음과 같다. 먼저 엄지와 검지로 펜을 가볍게 쥐고 중지로 살짝 받쳐 준다. 나머지 손가락은 달걀을 쥐듯 공간을 유지한다. 그대로 지면 위에 손을 가볍게 얹는다. 이때 펜의 각도는 120도 정도가 적당하다. 너무 눕히거나 세워서 쓰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그래픽 참고). 허 원장은 “글씨를 쓸 때 손이 아픈 건 힘이 골고루 들어가지 않았기 때문이다. 혹시 글씨를 많이 쓰지도 않았는데 손이 아프다면 펜을 쥐는 방법이 잘못된 게 아닌지 의심해야 한다”고 밝혔다.
■글씨와 글씨체는 서로 달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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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초등학교 6학년생의 교정 전 글씨(위 사진 )와 교정 후 글씨. 참바른글씨 부산점 제공 |
글씨 교정을 위해 학원을 찾는 사람 중에는 악필이 아닌데도 스스로 만족하지 못하고 예쁜 글씨체를 갖게 해달라고 찾아오는 사람도 많다고 한다. 글씨와 글씨체는 엄밀히 말하면 서로 다른 영역이다. 허 원장은 “본인이 쓰는 글씨의 구조를 다듬어 최대한 깔끔히 정리하는 게 글씨 교정의 목적”이라며 “돋움체처럼 각이 진 모양의 글씨를 좋아하는 사람도 있고, 귀엽고 둥글둥글한 글씨체를 좋아하는 사람도 있다”며 “아래한글 프로그램을 쓸 때 수많은 글씨체 중 마음에 드는 모양 하나를 고르듯, 글씨체는 개인의 취향에 맞춰 연습하면 된다”고 말했다.
무조건 필사를 많이 한다고 해서 좋은 글씨를 쓰게 된다고 보장할 수 없다. 골프 탁구 등의 운동을 처음 시작할 때 자세를 잘못 배우면 나중에 바로잡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리듯이, 글씨도 마찬가지다. 글씨를 쓰는 자세도 오랫동안 몸에 밴 습관 중 하나이기 때문에 잘못된 자세를 바로잡지 않고 계속 글씨를 쓰면 나중에 교정하기 어려워진다. 허 원장은 “운동신경과 비슷한 ‘글씨 감각’이 어느 정도 있다면 금세 글씨를 잘 쓰게 되겠지만, 그렇지 않으면 시간이 오래 걸린다”고 강조했다. 이어 “나를 표현하는 수단 중 하나인 글씨를 차분히 다듬는 시간을 가져보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김미주 기자 mjkim@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