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부산메디클럽

[조재휘의 시네필] 극장의 풍경, 한국영화와 독과점의 폐단

  • 디지털콘텐츠팀 inews@kookje.co.kr
  •  |   입력 : 2019-12-25 18:54:20
  •  |   본지 23면
  • 글자 크기 
  • 글씨 크게
  • 글씨 작게
켄 로치의 ‘미안해요, 리키’(2019)를 보기 위해 찾은 극장의 아침은 황량했다.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성황리에 상영된 거장의 신작에 배정된 상영관은 한 개뿐이었고, 시간 역시 오전 8시의 조조영화 아니면 심야영화의 하루 두 번으로만 편성되어 있었다. 사실상 영화를 보지 말라는 소리다. ‘겨울 왕국 2’(2019)의 썰물이 빠진 자리에 ‘백두산’(2019)의 밀물이 들이닥쳤다. ‘해운대’(2009) 이래 한국형 대작의 상투적 수사들을 모조리 집어넣다시피 한 이 진부하고 비싼 영화는 개봉 6일 만에 300만 관객을 돌파했다. 1970개의 스크린을 독식한 결과다. 총 128편이 걸린 지금 극장가에 ‘백두산’ 한 편이 상영 횟수 44.5%, 좌석 수 중 50.6%를 차지했고, 그 이외의 영화들은 변변한 관 하나 잡기 힘든 것도 모자라 띄엄띄엄 상영되는 판이다.
영화 ‘겨울왕국2’ 스틸.
관객이 원하는 영화이기에 상영관을 많이 잡는다는 소리가 뻔뻔한 거짓말이라는 걸 모두 알고 있다. 인위적으로 시장의 수요와 공급을 조작한 결과 선택은 원천적으로 봉쇄되었고, 영화의 다양성과 관객의 선택권은 허울 좋은 명분이자 환상이 되어버렸다. 지금 한국 주류 영화계에 횡행하는 건 100억~200억 원대의 자본을 투입한 대작을 자사 배급망의 와이드 릴리즈로 풀어 한탕을 노리는, 돈 놓고 돈 먹기 식의 투기 전략이다. 참신함을 원하는 관객과의 소통 능력을 상실한 한국 영화 산업은 웰메이드를 추구한 ‘엑시트’(2019)의 성공에도 교훈을 얻지 못한 채, 구태의연한 흥행 공식을 답습해 이전보다 열화되고 퇴보한 결과물만을 재생산해내고 있다.

장 뤽 고다르의 말처럼 “영화의 경제는 곧 영화의 이념”이다. 블록버스터가 해내지 못하는 비전이 관철되려면 30억~50억 원 중간 규모의 영화 층이 탄탄히 형성되어 있어야 한다. 그러나 배우가 확보되지 않으면 투자와 배급 자체가 어려운 현재 상황에서 한국영화는 산업의 허리를 잃었다. 독립영화나 소규모 영화사의 저예산 영화들은 어떠한가? 김보라의 ‘벌새’(2018)가 10만 명을 넘긴 건 기적이라 할 만큼 운이 좋은 경우다. 부산국제영화제 폐막작이었던 임대형의 ‘윤희에게’(2019), 전주국제영화제에서 공개된 김경원의 ‘아티스트 - 다시 태어나다’, 정대건의 ‘메이트’, 임태규의 ‘폭력의 씨앗’(2017)은 진중한 문제의식과 더불어 대중적 소통 능력도 갖춘 젊은 세대의 작가들이 출현함을 알리는 수작들이었지만, 철저한 무관심 속에 사장되었다. 영화를 소개할 제대로 된 상영관 수를 얻지 못한 탓이다.

영화제를 통해 소개된 수입된 작품, 그리고 영화제에서 제작 지원한 작품이 산업과의 연계와 공조를 통해 관객과 만나는 건 중소규모 영화 제작사 내지 수입 배급사와의 공생, 신진 감독의 발굴을 통한 세대교체 등 영화산업을 지속시키는 선순환 구조를 만드는 데 필수적이다. 그러나 전주국제영화제 대상까지 수상했음에도 정형석의 ‘성혜의 나라’(2018)는 변변한 단관 하나 잡지 못해 별도의 클라우드 펀딩을 추진하고 있다. 작은 영화들에 단 한 개관조차 쉽사리 할당되지 않는, 그로 인해 작가의 등장이 차단되는 이런 상황은 한국 영화 산업에 장기적인 안목이 결여되어있음을 증명한다.

가망 없는 넋두리라는 건 안다. 그럼에도 우리는 매년 지겹도록 반복되는 스크린 독과점, 10년 넘도록 해결될 기약이 없는 이 해묵은 문제를 다시 논의해야 한다. ‘기생충’(2019) 이후, 100주년을 넘긴 한국 영화의 미래가 유토피아일지 디스토피아일지는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가 없는가에 달려있기 때문이다.
ⓒ국제신문(www.kookj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국제신문 뉴스레터
국제신문 네이버 뉴스스탠드 구독하기
국제신문 네이버 구독하기
뭐라노 뉴스

 많이 본 뉴스RSS

  1. 1경남 9곳, 1인당 월 15만 원 농어촌 기본소득 쟁탈전
  2. 2창원문화복합타운 매각 불발
  3. 3‘김해공항 최장노선’ 두바이 직항 내년 열린다
  4. 4“지방주도 성장 33조 투자…공공기관 이전 내년 착수”
  5. 5영도 포차거리 해상추락 잇따르자 뒷북 안전조치
  6. 6‘국민아버지’ 배우 최불암 떠나보내며
  7. 7[사설] 가덕도신공항 착공 늦춘 정부, 공사비 증액 확약하라
  8. 8[시민기자] 랜드마크 ‘범선형 관광시설’ 북항에 만들자
  9. 9정파·지역도 초월…‘국제신문 회생’ 국회 팔 걷었다
  10. 10‘창업도시 600억’ 품어라…부산, 해양·금융 앞세워 총력
  1. 1“지방주도 성장 33조 투자…공공기관 이전 내년 착수”
  2. 2정파·지역도 초월…‘국제신문 회생’ 국회 팔 걷었다
  3. 3국힘 “가덕 건설 의지 없는 정부…공사비 증액 확약해야”
  4. 4이해충돌 빗장 풀려는 시의회…“사익추구” vs “전문성 강화”
  5. 5정치권 “능인선원 경영능력 불합격…국제신문 회생 동의를”
  6. 6민주, 5일 조희대 국조요구서 보고…국힘 “탄핵 역풍 맞을까 질질 끌어”
  7. 7국힘 새 당무감사위원장 양준모 교수
  8. 8[와이라노] “한국은 단검” 美 안보청구서 점점 커진다
  9. 9주민자치회 정식 출범 원년…유럽 모범사례 현장을 가다
  10. 10박수영 ‘국쫌만’ 300회…888건 민원 풀어
  1. 1‘창업도시 600억’ 품어라…부산, 해양·금융 앞세워 총력
  2. 2주식 팔면 다음날 돈 받는다…증권시장 결제주기 하루 단축
  3. 3호반, 한진칼 최대주주 기업결합 신고
  4. 4K-팝 열풍 타고 부산관광 키운다…한류산업 진흥 조례 추진
  5. 5“9증9포 독보적 특허 ‘명품 홍삼’…글로벌 1위 도전”
  6. 6[한 손 뉴스] 부산·통영 ‘환경교육도시’로…특화 환경교육 행·재정 지원(종합)
  7. 7“올해 북극항로 이용 150척…역대 최다 전망”
  8. 811월 제철 삼치·가리비 맛보세요
  9. 9팬스타엔터프라이즈, 해운·조선해양 중심 사업구조 재편
  10. 10올 ‘산소부족 물덩어리’ 완전히 사라졌다
  1. 1경남 9곳, 1인당 월 15만 원 농어촌 기본소득 쟁탈전
  2. 2창원문화복합타운 매각 불발
  3. 3‘김해공항 최장노선’ 두바이 직항 내년 열린다
  4. 4영도 포차거리 해상추락 잇따르자 뒷북 안전조치
  5. 5모집 공고만 15차례…부산 보건소도 ‘의느님’ 모시기 진땀
  6. 6국제사우회 “지광 손 뗄 때까지 함께 싸울 것”
  7. 7김해, 동아시아 람사르지역센터 유치
  8. 8인니 선원 모텔 감금 혐의 경호원들 송치(종합)
  9. 9오늘의 날씨- 2026년 11월 3일
  10. 10봉사·일·문화 등 다양한 분야 경험·재능 나눠
  1. 1박항서 향해 “김치맨”…태국 관중들 인종차별
  2. 2BNK 개막전 첫 승…두터워진 선수층 빛났다
  3. 3김지율, 고교 최동원상 수상…부산고 하현승 아쉽게 고배
  4. 4체력 비축한 마법사, 타선 폭발한 사자…누가 웃을까
  5. 5단거리 최강馬 위너클리어 짜릿한 역전승…국제신문배 우승
  6. 6“실책·기복 없어야 강팀…거인 맞춤 훈련 강화할 것”
  7. 7“좋은 젊은 피 많아…잠재력 극대화”
  8. 8삼성, KIA 6-1 꺾고 2년 만에 한국시리즈 진출
  9. 9BNK, 여자농구 개막전 ‘디펜딩챔프’ KB 완파
  10. 10‘친정 팀 복귀’ 이동욱 감독, “기본기 다져 승리하는 팀으로 만들겠다”
우리은행
부산 야구장 미래는
“돔? 재건축? 미래가치 따져야” “전문가 주도적 역할 부여를”
부산 야구장 미래는
선수 공간까지 체험하는 돔투어…야구 테마 복합문화시설
  • 국제신문 골프대회
  • 맘편한 부산
  • 부산국제마라톤
  • BNK생명나눔챌린지
  • 유콘서트
걷고 싶은 부산 그린워킹 홈페이지
국제신문 대관안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