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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쌀 한 되로 사탕 바꿔주던 할머니 그리며 만들었죠”

‘감쪽같은 그녀’ 허인무 감독

  • 김정록 기자 ilro12@kookje.co.kr
  •  |   입력 : 2019-12-04 19:29:01
  •  |   본지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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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0년 전 기억으로 대본·연출
- 정감 어린 부산 배경으로
- 가족 관계·의미 되새기고파

- 영화 속 할머니 맡은 나문희
- 고령에 건강 염려에도 열연
- 손녀 김수안, 아역 초월 배우

“제가 초등학생 2학년 때는 시골 가게에서 돈 대신 쌀 한 되에 사탕 500~700원어치 정도를 줬다. 할머니의 손을 잡고 사탕을 사러 갔던 30여 년 전의 기억은 영화에서 할머니와 손녀가 서로 설탕을 나눠 먹는 신으로 대신 표현했다.”
   
따뜻한 가족영화 ‘감쪽같은 그녀’에서 부산 할머니와 갑자기 찾아온 낯선 손녀를 연기한 나문희와 김수안. 메가박스중앙(주)플러스엠 제공
경기도 이천시 신둔면 읍내에서도 차를 타고 15분, 20여 가구가 사는 마을에 어스름하게 노을이 물들면 농사일에 지친 할머니는 사탕 사달라는 손자의 떼에 못 이겨 쌀 한 되를 들고 그의 손을 잡았다. 한 폭의 수채화 같은 기억을 갖고 영화 ‘감쪽같은 그녀’(개봉 4일)의 시나리오를 직접 쓰고, 메가폰까지 잡은 허인무 감독의 얘기다. 최근 서울 강남구의 한 카페에서 만난 그는 “가족 간의 관계와 의미를 되새기고 싶어 돌아가신 할머니에 대한 기억을 떠올렸다”라고 영화의 제작 배경을 설명했다.

   
허인무 감독
‘감쪽같은 그녀’는 부산에서 혼자 사는 말순 할머니(나문희)에게 처음 보는 열두 살 손녀 공주(김수안)가 갓난아기 동생 진주를 업은 채 찾아와 가족이 되어가는 과정을 담은 영화다. ‘감쪽같은 그녀’는 ‘혼자 있던 그녀들에게 감쪽같이 가족이 생겼다’는 의미다.

영화에서 중요한 것은 가족의 분위기였다. “나문희 선생님은 집이라는 안온하고 포근한 느낌을 주기 위해 친어머니가 입었던 의상을 한 보따리 갖고 오셨다. 그중 절반가량을 실제 촬영에 사용했다. 친어머니의 스카프를 매는 순간, 분장 등의 스태프가 따로 무엇을 할 필요가 없었다.” 나문희의 의상 때문에 허 감독이 원했던 가족의 체취가 촬영 현장과 영화에 묻을 수 있었다.

영화에서 할머니와 손녀를 연기한 나문희와 김수안의 실제 나이 차도 64세다. 허 감독은 “수안 양은 촬영 1주일 만에 나문희 선생님에게 ‘할머니’라는 호칭을 붙이며 살갑게 다가갔다. 나 선생님도 수안 양을 친 손녀처럼 대했다. 아침 간식은 나 선생님이 수박을, 저녁 간식은 수안 양이 초콜릿과 사탕을 갖고 와 서로 나눠 먹고 소소한 얘깃거리를 공유하며 각별해졌다. 짧은 시간 안에 가족의 친밀함을 표현할 수 있게 됐다”고 후일담을 전했다.

영화에서 말순 할머니, 공주, 진주는 가족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서로를 의지한다. 하지만 말순 할머니에게 기억이 없어지는 치매 증상이 찾아오며 아픔을 겪는다. 그동안 할머니가 손수 수를 놓은 손수건을 팔아 가족의 생계를 책임졌다. 가난 때문에 쉰 김밥도 나눠 먹고 그 때문에 설사가 나면 나란히 화장실로 가 해결하기도 했다. 그런데 그녀가 아프면 어린 손녀들을 돌볼 사람이 없었다. ‘사랑하기에 떠나보낼 수밖에 없는 상황’에 직면한 것이다. 손녀들을 낯모르는 사람의 손에 맡겨야 하는 현실과 드문드문 끊기는 얄궂은 기억 때문에 말순 할머니 나문희는 혼자 애절하게 울어야 했다.

나문희는 실제 나이 77세로 고령이다. 허 감독의 입장에서는 중요한 신에 대한 욕심보다 배우에 대한 걱정이 앞섰다. “배우들이 몰입하는데 힘들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세 테이크 이상 안 간다고 하고, 그 순간 배우들이 집중하게 준비를 했다. 그래도 감정 신을 찍고 나면 나 선생님의 안색이 창백해졌다. 그런데도 한 번도 못 하겠다고 말씀하신 적이 없었다. ‘끝나고 아프면 아팠지!’라며 더 집중을 하셨다. 당신에 대해 배려를 하면 불편해하시면서 오히려 야단까지 치셨다. 전작 ‘아이 캔 스피크’ 이후 건강이 안 좋아지셨다고 해서 걱정을 많이 했는데 다행히 별 사고 없이 촬영을 마쳤다.” 그리고 편집을 하는 과정에서 왜 나문희를 ‘국가대표 할머니’라고 부르는지 알게 됐다고 덧붙였다. “‘감독님이 알고 있는 것 외에 내가 알고 있는 할머니를 추가해 줄게’라며 연기하셨더라. 영화에 그것이 고스란히 녹아있다”며 황혼의 아픔을 담은 나문희의 연기에 감동받았다는 허 감독이다.

떠나보낼 수밖에 없는 말순 할머니와 그녀의 곁에서 한사코 가족을 지키려는 어린 손녀 공주의 모습은 눈물을 자아냈다. 이것을 어떻게 표현할지 고민하던 허 감독은 김수안의 손녀 연기에 기댔다. “병든 사람 옆에서는 가족이 먼저 지쳐간다. 그래서 공주는 안 지쳤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우리가 모두 지치지만, 공주만은 지치지 않고 그 자리를 계속 지켜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수안 양이 그것을 너무 잘해줬다”며 “심지어 가족을 지키려는 어린 손녀의 아픔을 처연한 미소로도 표현했다. 수안 양은 아역배우가 아닌 배우”라고 김수안에 대한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영화에서는 김수안의 초등학교 선생님 역으로 출연하는 천우희도 만날 수 있다. 특별출연한 천우희는 허 감독의 영화 ‘신부수업’으로 데뷔해, ‘허브’에도 출연하는 등 15년간 인연을 이어오고 있다.

한편 2000년 부산을 배경으로 한 ‘감쪽같은 그녀’는 남부민동 감만동 감전동 부암동 송정해수욕장 등지에서 지난해 5월부터 2개월간 촬영했다. 말순 할머니의 집이 위치한 남부민동은 정감 어린 부산을 담아내기에 적격이었다. 허 감독은 “부산은 바다와 도시는 물론 삶의 소소한 모습까지 영상으로 담아낼 수 있어 처음부터 촬영지로 생각했다. 제가 시나리오를 쓰면 부산 출신 후배가 사투리로 변경해주는 작업도 했다. 남부민동의 집은 남향인데 일몰이 너무 예뻤다. 나 선생님이 해 질 녘 앉아서 그것을 지켜보다 ‘이제야 내가 말순이 된 것 같다’고 말할 정도였다”고 부산에 대한 애정을 드러냈다.

영화에서는 김수안이 직접 부르는 OST ‘나의 사람아’가 흘러나온다. 1970년대 히트곡인 이 노래에서 허 감독은 ‘당신 없이는 못 살아’라는 가사를 제일 좋아한다. 그는 “사람이라면 언젠가 떠나가는 순간이 있다. 그런데 떠나는 당신 없이는 못 살 것 같은 순간도 있다. 제발 내 주변에 그런 사람들이 많아졌으면 좋겠다. 당신 없이는 못 살 것 같은 사람들. 저도 나이를 먹으니 그런 사람들이 점점 줄어들게 된다”며 나직이 노래를 흥얼거렸다.

김정록 기자 ilro12@kookj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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