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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엔 무역기지, 조선엔 침략기지…두 얼굴의 히라도섬

일본 나가사키현 역사탐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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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550년 유럽 선박 최초 히라도항 기항
- 그리스도교 전파·대외 개방 창구 역할
- 성당·네덜란드 건물 등 포구 풍경 이색

- 한반도와 지리적으로 가까운 특성 탓
- 사가현 가라쓰시 나고야 성과 함께
- 임진왜란 때 조선 침략 중심지 되기도

일본 규슈의 나가사키현은 일본이 유럽과 가장 먼저 접촉한 곳으로 대외 교류의 창구 역할을 했다. 그런 한편으로 임진왜란 때는 조선 침공의 선봉에 선 지역이다. 일본군이 퇴각할 때 다수의 조선인이 끌려간 곳이기도 하다. 악연이라면 악연이지만 부산과는 뗄 수 없는 관계다. 부산은 외부로 열려 있어 무역의 중심지 역할을 하지만 임진왜란 때는 침략의 예봉을 가장 먼저 맞았다. 그래서 부산과 나가사키현은 닮은 듯 다른, 반대의 모습을 비추는 거울과도 같은 곳이다. 부경대 페리 해역인문학 아카데미가 주최하고 부산초량왜관연구회(회장 강석환)가 후원한 ‘바다를 건넌 사람들’ 주제의 동아시아 해양교류 역사탐방이 지난 14~17일 열렸다. 탐방단과 동행해 일본 대외 개방의 창구이자 한반도 침략의 전진기지 역할을 한 나가사키현 히라도섬을 비롯해 사세보시, 사가현 가라쓰시 일대를 답사했다.
일본 나가사키현 히라도항 서쪽 비탈의 골목을 따라 올라가다 보면 사원의 지붕 위로 일본에 처음으로 기독교를 전한 프란시스코 사비에르를 기리는 기념교회의 첨탑이 보인다. 서양과 일본의 교류를 상징하는 듯한 장면이다.
■유럽으로 열린 창(窓), 히라도섬

규슈의 가장 서쪽 키타마쓰우라반도의 끝과 마주 보는 섬이 히라도(平戶)섬이다. 16세기 인도네시아와 필리핀을 거쳐 북상한 서양 선박들이 태평양과 동중국해의 거친 파도를 피해 일본 본토 쪽으로 항해하면 반드시 거쳐 갈 수밖에 없는 곳이다. 현재 규슈 본토와 히라도섬 사이 거리가 가장 짧은 곳에 길이 665m의 붉은색 히라도대교가 놓였다. 이곳을 거쳐 북쪽으로 빠져나가는 물길을 바라보는 곳에 히라도항이 자리 잡고 있다.

이런 지형적 특성으로 일본을 찾은 서양 선박이 히라도항을 가장 먼저 방문한 건 필연이었다. 이번 역사탐방단이 가장 관심 있게 둘러본 곳도 히라도항이었다. 1550년 최초의 서양 선박인 포르투갈 선박이 이곳에 기항했는데 이 배에는 예수회 소속의 스페인 출신 선교사 프란시스코 사비에르가 타고 있었다. 그런 이유로 히라도는 일본에서 처음 그리스도교가 전해진 곳이기도 하다. 히라도항에서 골목길을 따라 올라가면 항구를 내려다보는 언덕 위에 그를 기리는 프란시스코 사비에르 기념교회가 서 있다. 항구에서 올라가면 ‘사원과 교회가 보이는 풍경’ 표지판이 나온다. 이곳에서는 사찰의 기와지붕 위로 옅은 초록색의 첨탑이 올려다보이는 흔치 않은 모습을 볼 수 있는데 마치 서양과 동양(일본)의 교류와 융합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듯하다. 일본 야마구치와 마카오 등에도 사비에르를 기리는 성당과 교회가 있다.
히라도성 천수각에서 바라본 히라도항 전경.
포르투갈을 시작으로 스페인, 네덜란드, 영국 선박이 잇따라 히라도를 찾았다. 해상 교통의 요충지인 이곳에는 1609년 네덜란드 상관에 이어 4년 뒤에 영국 상관이 세워졌다. 특히 네덜란드의 자취가 강하게 남아 있는데 열린 항구의 북동쪽 입구에 네덜란드 상관이 자리 잡았다. 주변에는 관사와 우물, 네덜란드에서 온 선박이 접안했던 계단식 부두가 있다. 또 포구 안쪽 영국 상관이 있던 히라도시청 앞에는 네덜란드를 뜻하는 오란다 다리로 불리는 석교가 있다. 하지만 히라도의 전성기는 오래 가지 않았다. 일본이 쇄국정책을 펴며 1641년 네덜란드 상관이 나가사키로 옮겨가 무역 기지로서의 히라도는 역할을 다했고 이후로는 임진왜란 후 항구 남동쪽 산 위에 세워진 히라도성에 딸린 도시로 성장했다. 히라도성의 축성 과정은 임진왜란과 뗄 수 없는 밀접한 관계가 있다.
히라도시청 앞의 오란다 다리.
■한반도를 향한 창(矛), 히라도와 가라쓰

히라도섬의 또 다른 지리적 특성으로 꼽자면 한반도와 가깝다는 것이다. 그래서 히라도섬을 비롯해 가까운 사가현 가라쓰시 해안은 오랜 기간 왜구의 본거지였고 16세기 말 임진왜란 때는 침략의 중심지가 되었다. 탐방단이 가장 먼저 찾은 가라쓰시의 나고야 성터는 임진년의 조선 침략을 앞두고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출병기지로 지은 곳이다. 성터와 함께 당시 전국에서 온 장군들의 진영 터가 일본 특별사적으로 지정돼 있다. 성과 진영은 정유재란이 끝난 뒤 용도 폐기돼 지금은 성벽과 건물터만 남아 있다. 천수각이 있던 자리에서 북서쪽을 보면 이키섬 너머 대마도가 손에 잡힐 듯하다.

이어 찾은 곳이 일본 대외 교류의 창구이기도 한 히라도섬이다. 이곳은 교류와 침략, 두 얼굴을 가진 곳이다. 히라도항을 내려다보는 자리에 선 히라도성은 임진왜란 때 선봉대로 나선 초대 히라도 번주 마츠라 시게노부가 임진왜란이 끝난 다음 해인 1599년에 세운 히노타케성에서 비롯됐다. 화재로 무너진 뒤 1707년 성주인 마츠라 다카시가 지금의 히라도성을 축조했다. 천수각에 오르면 이런 역사와는 무관하게 성당과 사원, 네덜란드 상관 등이 어우러진 평화로운 작은 포구의 풍경이 펼쳐진다. 시게노부는 전쟁이 끝날 때도 가장 마지막에 퇴각하며 조선인들을 끌고 왔다. 그 가운데 경남 진해의 도공도 있었다. 이들은 히라도에서 가마를 열고 도자기를 생산했는데 처음 만든 가마터와 무덤, 근래 세운 고려비 등을 볼 수 있다. 포구 뒤 역사의 길을 따라가면 나오는 마츠라사료박물관에는 1593년 11월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시게노부에게 ‘도공을 보내라’며 보낸 문서가 전시돼 있다.

히라도에 끌려온 진해 웅천 출신의 사기장 거관을 비롯한 도공들은 후에 사세보시 미카와치로 옮겨 가마를 열었다. 지금도 이곳에는 조선 도공의 후손들이 가마를 운영하고 있다. 거관의 손자를 모신 도조신사와 ‘고려할머니’로 불린 웅천 출신 ‘에이’를 모신 부산신사가 있다. 부산신사 입구에 광상요를 운영하는 에이의 17대손 나카자토 씨가 탐방단을 맞았다. “내 몸에는 조선인의 피가 흐른다”고 말하는 그의 표정에 묻어나는 자부심을 바라보며 미카와치 일정을 마무리했다.


◆ 히라도섬 손쉽게 가려면

- 도보 여행·가톨릭 성지순례까지… 다양한 관광객 찾는 ‘핫플레이스’
- 부경대·여행사 공동 방문 프로그램
- 내년 3·6월 예정… 현지서 역사 강연도

규슈 나가사키현은 대마도와 후쿠에섬, 나카도리섬 같은 큰 섬을 포함해 제법 면적이 넓다. 이 가운데 히라도섬은 최근 부산을 비롯한 한국인들의 발걸음이 부쩍 늘고 있다. 규슈에 한정한다면 후쿠오카시와 같은 대도시에서 누릴 수 있는 화려한 볼거리와 쇼핑, 음식은 부족하지만 일본 내에서도 변두리 취급을 받는 곳인 만큼 청정한 자연은 어디와 비교해도 우위에 있다. 특히 이곳에는 규슈에 만들어진 올레길 22개 코스 가운데 하나인 히라도 올레길이 있다. 히라도항 교류광장을 기점이자 종점으로 하는 거리 13㎞의 원점 회귀 코스다. 이 코스는 아름다운 항구와 역사유적, 다도해와 같은 일본 바다를 감상할 수 있는 가와치도게 능선의 억새밭 등 다양한 풍광을 품고 있다. 도보 여행자뿐만 아니라 임진왜란이나 일본의 대외 교류와 관련한 역사 탐방, 가톨릭 성지순례까지 다양한 여행객이 이곳을 찾고 있다.
히라도항 마츠라사료박물관 앞에서 기념촬영한 문화탐방단.
하지만 히라도를 찾으려면 후쿠오카에서 사세보로 간 뒤 다시 철도와 버스로 갈아타야 히라도항까지 이동할 수 있어 불편하다. 이번 부경대 페리해역 인문학 아카데미 프로그램을 진행한 세중여행사(www.sejoong.com, 051-462-1911)는 올해 세 차례 히라도-미카와치 방문 프로그램을 운영한 데 이어 내년에도 부경대와 함께하는 프로그램을 마련한다. 현재 내년 3월과 6월 프로그램이 확정돼 있다. 특히 이 프로그램에 참여하면 후쿠오카로 가는 선상과 현지에서 역사 탐방과 관련한 교수들의 강연도 들을 수 있다.

글·사진=이진규 전문기자 ocean@kookj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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