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용두산 공원 중심 33만579㎡ 일대

- 일본사신 무역·외교 위해 거주한 마을 

- 1876년 폐쇄될 때까지 조선 유일 왜관

- ‘조선통신사’ 외 볼거리 마련 차원

- 시·관광협회, 역사트레킹 코스 개발

- 급속한 개발로 사료 많이 없어졌지만

- 향양원·방공호 등 흔적 남아 있어 

부산시와 부산시관광협회는 부산의 역사를 바로 세우는 한편 일본과 중국 관광객들에게 볼거리를 제공하기 위한 관광 코스 개발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사드 배치와 북한의 미사일 개발, 소녀상 설치 등 외부 영향으로 관광객이 줄기도 했지만 볼거리 부족이라는 내부 문제에도 관심을 가진 결과다. 그래서 준비한 것이 ‘부산 초량왜관 역사 트레킹’이다.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를 앞둔 조선통신사에 버금가는 관광상품으로 부산 초량왜관을 관광상품화하겠다는 의지의 표명이기도 하다. 왜관은 일본 사신들이 외교와 무역을 위해 한시적으로 거주했던 마을로 용두산 공원을 중심으로 33만579㎡(약 10만 평)에 걸쳐 조성됐다. 초량왜관이 주목받는 이유는 1876년 일본 전관 거류지로 폐쇄될 때까지 약 200년간 조선의 유일한 왜관으로서 기능을 했기 때문이다. 초량왜관 역사 트레킹이 시동을 건 지난 2일 문화해설사와 시민 참여자 등 50여 명과 함께 용두산 공원을 중심으로 초량왜관의 자취를 따라가 봤다.

■초량왜관을 따라 걷다

지난 2일 오전 초량왜관 역사 트레킹 참가자들이 부산역 인근 상해문 주변에 모였다. 상해문 근처 홍성방이 위치한 곳이 왜관의 설문이었기 때문이다. 설문이란 왜인들의 무단출입을 막기 위한 출입문이다. 최차호 부산왜관연구회 초대회장은 “당시 왜관은 조선인과 일본인의 경계를 담으로 나눠 서로 섞이지 않게 했다”며 “1년 중 춘분 추분 백중 등 3일만 성묘를 위해 조선인들의 출입을 허용했다”고 설명했다. 너나들이 풍물패의 공연을 시작으로 왜관 트레킹이 시작됐다.

초량객사 터였던 봉래초등학교로 이동한다. 이곳은 일본 사신들이 부산에 도착하면 맨 먼저 국왕의 전패에 숙배를 올리는 숙배식이 열렸던 곳이다. 정문을 나서 직진하면 왜관 거주 일본인과 협상하는 조선 훈도 등이 거주했던 성신당(현 영주교회)이 있다. 심당요양병원 쪽으로 내려가다 오른쪽으로 꺾은 뒤 한정오피스텔을 통과하면 오른쪽에 공터가 있는데 시탄고가 있었던 자리다. 시탄고는 왜관의 왜인들에게 땔감과 숯을 공급하던 곳이다.

40계단과 또따또가를 지나  숙배식이 끝난 뒤 동래부사와 일본 사신이 외교문서를 교환하고 환영연을 열었던 연향대청(현 광일초등)으로 이동한다. 연회를 마친 일본사신 일행은 초량왜관으로 들어가 머물렀다. 초등학교 담벼락이 두 개의 층으로 나뉘어 있다. 기존 담에 새로운 담을 얹은 듯하다. 연향대청 주변에는 눈에 띄는 주택이 하나 있다. 가톨릭센터 옆 대청맨션으로 올라가는 길 옆에 담쟁이가 둘러싼 주택으로 안중근 의사에게 총탄을 맞아 사망한 이토 히로부미의 숙박지로 사용됐던 향양원이라는 곳이다.

대청로로 나가 부산근대역사관 옆길로 들어서면 서대청(옛 유나백화점), 중대청(대각사), 동대청(부산은행 신창동 지점)이 이어진다. 초량왜관 내에서 도자기를 만들던 부산요(현 고갈비골목과 로얄호텔)를 만난다. 일본은 임진왜란 후 초량왜관 내에 가마를 만들어 조선 도공들에게 주문했고 일본 도공을 파견하기도 했다. 광복로를 따라가다 용두산공원으로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올라가면 초량왜관이 들어설 때 상인들이 돈을 모아 재물신을 모신 변재천신사(현 미타선원)가 있다. 용두산공원에 오르면 가장 먼저 용두산공원 표지석이 눈에 띄는데 이는 애초 우남공원이라 적힌 것을 긁어 새로 새긴 것이라 한다.

부산장으로 내려가면 왜관 최고책임자 저택이었던 관수가(현 MU호텔)와 아로마모텔 부지에 있는 3개의 일제 방공호를 둘러볼 수 있다. 당시 방공호는 내부가 서로 연결돼 있었으나 현재는 막혀 있다. 백산기념관 쪽으로 올라가다 오른쪽으로 꺾으니 한창 공사가 진행되는 곳이 눈에 띈다. 왜관을 통과하는 모든 외교문서를 공식 기록하는 승려가 머물렀던 사찰인 동향사 터로 한쪽 벽면에 일본식 붉은벽돌의 흔적이 남아 있다. 맞은편 주차장 주변에도 일본식 적벽돌의 흔적이 있다. 전체 코스를 둘러본 김정화 수필가는 “개발 위주의 정책으로 후세에 남겨야 할 역사적 사료들이 사라진 것 같아 아쉬움이 컸다”며 “방공호 등 지금 남은 흔적이라도 훼손하지 않고 잘 관리해 후세에 물려줄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초량왜관의 경계는 어디였을까

초량왜관은 조선 전기 부산포왜관, 임진왜란 직후 설치된 절영도왜관, 1607년(선조 40) 조성된 두모포왜관에 이어 1678년에 마련된 네 번째 왜관이다. 조선 후기 왜관에는 대마도에서 온 500여 명의 성인 남성이 거주했다. 조선 전기까지는 왜관에 가족을 동반했지만 임진왜란 이후에는 금지됐다. 초량왜관은 가운데에 용두산공원이 자리하고 초량왜관의 동남쪽에는 용미산이 있었다. 용두산 넘어 북쪽에는 복병산이 있다. 용미산은 일제강점기에 깎여 평평해졌고, 그 후 부산부청이 들어선 뒤 1996년까지 부산시청이 있다가 오늘날에는 롯데백화점 광복점이 들어섰다.

용미산 북쪽으로는 선창이 있었고, 초량왜관 담장을 따라 북쪽으로 가면 초량왜관의 정문인 수문이 있었다. 담장을 따라 북쪽으로 더 가면 담장 안쪽으로 동향사가 위치했다. 동향사를 끼고 왼쪽으로 돌면 오늘날 중구의 대청로가 나타나고 이 길에 초량왜관 북쪽 담장이 세워졌다. 북쪽 담장을 따라 서쪽으로 걸어가면 광일초등학교가 나오는데 그 앞에는 연향대청으로 들어가는 연향문이 서 있었다. 이곳에서 더 서쪽으로 가면 복병산으로 올라가는 비탈길과 만나게 된다. 보수동 책방골목 어귀가 보이는 사거리가 나타난다. 이곳에서 초량왜관 담장은 다시 남쪽으로 이어져 국제시장을 지나 광복로와 만나게 된다. 광복로를 따라 동쪽으로 난 담장을 따라가면 남쪽 해안이 펼쳐진다. 초량왜관 남쪽 담장 중간에는 부정문이란 문이 있었는데 왜관에서 사망한 일본인의 시신이 나가는 문이었다. 계속 동쪽으로 가면 초량왜관 선창과 용미산을 만나게 된다. 

# 40계단서 백산기념관까지…근현대사 아픔 간직한 명소 곳곳에

■ 주변 볼거리

초량왜관 주변에는 볼거리가 많다. 먼저 오늘날의 영주동에서 옛 부산역과 국제여객부두를 왕래하는 편의를 위해 일제강점기에 설치된 40계단(사진)이 있다. 한국전쟁 당시 헤어진 가족들의 상봉 약속 장소였으며 숱한 피난민들이 영도다리를 보며 고달픔을 달랜 곳이기도 하다. 

40계단 인근에는 부산에서 가장 오래된(1959년 설립) 제과점인 백구당이 있다. 백구는 흰 갈매기를 뜻하는데 별도의 지점을 내지는 않았다. 하지만 부산을 대표하는 제과점인 옵스의 대표 등 제과 기술자들이 널리 퍼져나갔다.

연향대청(광일초) 주변 이토 히로부미의 별장으로 쓰였던 향양원은 양조장 사업으로 갑부가 된 대마도 출신 후쿠다 소베가 만든 별장으로 1905년 을사늑약을 체결한 이토 히로부미가 돌아가는 길에 머물렀던 곳이다. 

동향사 터 주변에는 의령 출신 항일 독립투사이자 교육운동가였던 백산 안희제 선생을 기리는 백산기념관이 있다. 백산은 독립운동을 하기 위해서는 경제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시급하다는 사실을 깨닫고 1914년 백산상회를 설립했다. 이후 1919년 백산무역주식회사를 차려 무역업을 하면서 실제로는 독립운동 연락책과 자금지원책을 맡았다. 이후 발해학교를 세워 민족교육에 힘쓰다가 59세에 순국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