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에 커피숍이나 패스트푸드점 같은 곳을 들르면 괴이한 모습을 마주한다. 아이를 데리고 온 젊은 엄마들, 삼삼오오 모여 잡담하는 아이들, 데이트 중일 것 같은 청년들. 언뜻보면 서로 같이 있지만, 따로 떨어져 있다. 아이는 혼자 먹고 있고 젊은 엄마는 아이의 눈 대신 스마트 폰을 보고 있다. 아이들은 잡담하지만 그 와중에 스마트 폰을 보고 열심히 손가락으로 어딘가로 메시지를 교환한다. 청년들 역시 서로 다른 스마트 폰 화면을 보다가 뭔가 재미난 듯 자신의 창을 보여주다 이내 자신의 창문으로 빠져든다. 같이 있지만 함께 하지 않는다.
사람과 사람 사이가 이렇게 촘촘히 연결된 사회는 일찍이 없었다. 정보통신기술의 발전 덕택에 하루 24시간 관계 속에 꽁꽁 묶여 있다. 수많은 정보는 우리 곁을 떠돌아다니고 음미하기도 전에 휘발되어 사라져버린다. 텅 비어 있는 마음을 달래려 소소한 자극을 찾아 헤매고 자신의 이미지를 끊임없이 세상 밖으로 보내어 관심을 호출한다. 모두가 연예인이 된 듯 타자의 관심을 먹고 산다.
살아가면서 자신에게 가장 중요한 사람은 몇 명이며 그 이유가 되는 사건은 무엇이냐고 학생들에게 묻곤 한다. 가장 중요한 사람과 그 수는 곧잘 말하는 편이지만 사건에 대한 기억을 풍부하게 말하는 이는 드물다. 그런 기억을 풍부하게 말하는 사람일수록 자신의 삶에 대한 만족감이 크다. 즉 자신에게 중요한 의미를 던져준 타자, 살아 있는 그와의 추억이 사람을 살아 버티게 하고, 또 다른 이에게 의미와 의지를 북돋을 수 있다. 이런 타자를 '의미있는 타자'라고 한다. 의미있는 타자의 수나 추억의 양은 중요하지 않다. 그 의미의 깊이와 활력이 중요하다.
의미있는 타자를 만나거나 되는 것은 개별화로부터 시작한다. 개별화란 상대를 비교하거나 싸잡지 않고 각자 고유한 존재로 받아들인다는 의미다. 일곱 살 아이의 고민과 일흔 살 어른의 고통을 비교해 경중을 따지지 않는다는 의미다.
바야흐로 지금은 시기와 갈등의 시대다. 정쟁에 휩싸인 정치는 끊임없이 남북갈등과 남남갈등을 유도하고 파국에 이르기까지 치킨게임을 하고 있다. 부유한 아파트촌에 사는 사람들은 대문을 걸어 잠그고 옆 동네 아이들의 통학로를 막아버린다. 장애인에 대한 복지를 확충하라고 하지만, 정작 자신의 아이와는 함께 학교를 다니게 하지 않는다. 아무런 희망 없이 길에서 노숙하는 이들의 착함과 착하지 않음을 맹렬히 분석하여 옥석을 가르면서 천 원 한 장 꺼내는 것은 인색하다.
아마도 '의미있는 타자'를 만나보지 못한 사람들이 타자의 의미를 깡그리 무시하고, 그것을 당연한 것처럼 여기게 만드는 사회 탓일 터이다. 입춘이 지나고 곧 대동강이 풀린다는 우수다. 눈 속에서 피는 매화에 경탄하듯, '의미있는 타자'를 피워내는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
윤성호 동서대학교 사회복지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