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마스가 지나고 새해를 맞았다. 약간은 들떠있고, 약간은 분주한 기운이 흐른다. 그렇지만 사람들이 정해놓은 절기에 따라 기분과 생활을 바꾸는 것에 익숙하지 않다. 매일이 첫 날이니 새해가 그리 대수롭지 않다. 흐름을 좇지는 않더라도 부대끼며 살아야겠기에 명절을 유념하고 있을 뿐이다. 다만, 배운 것이 도둑질이라고, 사회복지를 가르치는 업을 하는 사람으로 명절이 오고 지나면 한 쪽 가슴이 답답해진다.
많은 사람들이 연인에게 줄 선물을 고민하고, 여행을 즐길 계획을 세우고, 미처 챙기지 못한 가족의 만남을 고대할 때, 평소보다 더욱 마음을 단단히 먹고 지내야 하는 사람들이 있다. 가난한 사람들, 혹은 가난의 목전에 놓인 사람들이다.
며칠 전 한 복지관의 운영위원회에 참석했다가 들었던 이야기가 있다. 운영위원 중 한 분이 영구임대아파트의 관리소장이셨는데, 요즘이 초비상이라고 한다. 아파트 단지 내에서 자살하거나 독거사하는 분들이 가장 많은 시기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연구 때문에 매년 가난한 분들과 인터뷰를 하다보면, 곧잘 듣게 되는 이야기가 명절이 없었으면 좋겠다는 하소연이다. 명절 전후에는 자존심도 많이 상하고, 게다가 소외감 혹은 고립감 때문에 그나마 남은 마음을 다잡기 힘들다는 것이다. 명절 때 가족과 지인을 만나는 것도 부끄럽지만, 명절 때 집중되는 관심이 반짝하고 사라지면 더할 수 없는 외로움이 잦아든다는 것이었다. 꽉 차오른 관심의 파도가 한꺼번에 사라지고 남은 빈 공간은 결국 혼자라는 사실을 더욱 선명하게 만든다는 것이었다.
모든 밝음에는 어두움이 함께 한다. 밝은 것을 멀리하자는 것이 아니라 밝음으로 어두운 곳을 사라지게 해야 한다. 예를 들어, 예수가 태어난 날을 기념하여 만든 성탄절의 이면에 있는 끔찍한 영아학살사건을 알아야 한다. 예수는 태어나자마자 피난하여 난민생활을 하였고, 예수가 태어난 지역의 두 살 이하의 아기들은 모조리 죽임을 당했다는 기록이 있다. 기실 성탄절은 고통받는 사람들을 위한 애도일이어야 한다.
우리 사회가 해결하지 못하거나 해결하지 않은 일로 인해 고통받는 사람들이 아직도 길에 넘친다. 세월호 사건만 생각해보더라도 지난한 고통의 시간 속에 지내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성탄절 뿐 아니라 1년 이라는 시간 속에 심어놓은 명절이라는 시간은 이름 없는 숱한 가난한 사람들과 이유모를 고통을 받는 사람들, 압제와 폭력에 희생된 사람들과 함께 숨쉬어야 하는 시간들이다. 잊지 않는다는 말로는 부족하다.
연말연시 불우이웃을 돕는다는 목소리가 여기저기서 쏟아진다. 그것이 시절에 따라 차오르고 꺼지는 파도가 아니라 묵묵한 저수지로 만들어 목마른 사람이 언제나 목을 축일 수 있는 사회로 재구성해야 한다.
윤성호 동서대 사회복지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