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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져 가는 야생동물을 찾아서 <23> 지리산 반달가슴곰

흔적 쫓아 지리산 뒤지길 11개월…녀석이 나타났다

반달가슴곰 복원 위한 추격조, 한반도 제2의 '곰 신화' 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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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2일 지리산에 방사된 반달가슴곰 한 마리가 진숲을 지나 벽송 능선 등산 샛길로 어슬렁어슬렁 걸어가는 모습이 무인센서 카메라에 포착됐다. 취재팀이 11개월간의 추적 끝에 야생에 적응한 반달가슴곰을 확인한 순간이다.
- "진숲서 출몰" 목격담 토대로 추적
- 길목 무인카메라 달고 잠복했지만
- 봄여름 다 가도록 촬영 헛탕만

- 찬바람 불 무렵 찾은 배설물·발자국
- 포위망 좁히자 드디어 모습 드러내
- 왼쪽 귀 GPS…방사한 무리 중 하나

- 국립공원 멸종위기종센터 연구원들
- 안테나 메고 방사한 38마리 추적
- 서식지 파악하고 건강상태 체크
- 1년에 한 번 GPS 배터리 교체 임무도

- 현재 야생 개체수는 4, 5마리 추정
- 짝짓기로 자연 번식시키는 게 목표


   
지난달 취재팀이 지리산 길목에 무인센서 카메라를 부착하고 있다.
지난 2월 경남 함양군 마천면 벽송사 뒷길에 반달가슴곰이 출몰했다는 지인의 전화를 받았다. 3월 초, 벽송사에서 출발해 벽송 능선을 타고 지리산에 올랐다. 등산로를 벗어나 4시간을 더 올라가니 아름드리 원시림이 끝없이 펼쳐진 곳이 나왔다. '반달가슴곰이 나온다'는 바로 그 숲인 것을 단번에 느낄 수 있었다.

취재팀은 반달가슴곰 서식증거를 찾기 위해 본격적으로 추적에 나섰다. 인근 지역주민들의 증언도 있었지만 조금씩 달랐다. 그러다가 우연히 약초꾼을 만났다.

"지난해 딱 한 번 봤어요."

지리산 둘레길 송대마을의 정현주(58) 씨가 지리산에서 반달가슴곰과 조우한 것은 지난해 5월 모내기할 무렵이었다. 그날도 정 씨는 배낭을 메고 산에 올라갔는데 갑자기 숲에서 튀어나온 반달가슴곰과 딱 마주쳤다.

"순간, 가족 얼굴이 파노라마처럼 스쳐 갔어요. 곰은 예민해서 상당히 보기 어려운데, 나도 놀랐고 반달가슴곰도 놀랐어요. 곰은 앞발을 들고 일어서서 울음소리를 내며 위압감을 주더군요. 나는 곰과 눈싸움을 하면서 천천히 뒷걸음으로 도망쳤지요."

   
반달가슴곰을 촬영하기 위해 지리산 진숲에 설치한 무인센서 카메라에 잡힌 멧돼지 무리. 취재를 시작한 2월부터 가을까지 반달가슴곰은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정 씨는 지리산은 워낙 높고 짐승이 있어 위험한 곳이라고 했다. 그는 사림재를 지나 더 올라가면 8만 평 정도의 진숲이 나온다고 했다. 이곳은 산벚나무, 물푸레나무, 떡갈나무, 피나무, 신갈나무 등이 원시림을 이루고 있어 일반인들은 찾기 힘들다고 했다. 숲이 얼마나 길게 이어져 있는지 약초꾼들은 '진숲'이라고 불렀다. 바로 이곳에 반달가슴곰이 서식한다고 했다.

깊고 울울창창한 지리산 어디쯤 반달가슴곰이 산다는 증언에 힘을 얻어 본격적으로 산을 누비기 시작했다. 반달가슴곰을 추적하는 일은 만만치 않았다. 사람의 길이 아닌 동물의 길로 가야 하니 거칠고 험했다.

우선 반달가슴곰이 다닐 만한 길목을 몇 군데 정해 움직임이 포착되면 자동으로 찍히는 방식의 무인센서 카메라를 설치했다. 다른 장소에는 위장막을 설치하고 직접 촬영을 시도했다.

그러나 아무런 소득 없이 봄이 지나 여름이 흘러갔다. 단풍이 들기 시작했다. 가을은 야생동물을 추적하기에 제격이다. 먹이가 풍부하면 배설이 잦아지므로 그 흔적이 남는다. 예상대로 반달가슴곰의 배설물을 발견했다. 첫 흔적이었지만 희망이 보이기 시작했다. 배설물은 가파른 계곡지대를 따라 이어졌다.

이곳에서 가까운 숲길에 설치해 둔 무인센서 카메라를 확인하러 갈 때마다 늘 두근댔다.

   
지난달 진숲 눈 위에서 발견한 반달가슴곰 발자국.
과연 반달가슴곰이 찍혔을까? 먼저 카메라에 찍힌 건 멧돼지 무리였다. 담비의 집단서식과 함께 수많은 야생동물이 이곳 일대에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의외의 수확이었다. 하지만 반달가슴곰은 없었다.

낙엽이 쌓이기 시작했지만 포기할 수 없었다. 반달가슴곰의 먹이활동이 활발해지는 시기였는데 깊은 계곡에서 한 무더기 배설물이 발견됐다. 반달가슴곰에게 한 발짝 다가선 느낌이었다. 인근에서 또 다른 흔적도 발견됐다. 지리산에 반달가슴곰이 살고 있을 텐데. 기대와 실망이 엇갈린 지 10개월이 지나고 있었다.

매일매일 무인센서 카메라를 확인하는 것이 일상이 됐다. 모니터에는 산책하는 벽송사 스님, 약초꾼, 등산객도 보였지만 반달가슴곰은 없었다. '촬영은 실패한 것일까?'

상실감이 밀려오던 지난달 22일이었다. 행운이었다. 오전 11시21분 촬영된 것을 발견했다. 11개월간 추적 끝에 반달가슴곰을 확인한 순간이었다.

왼쪽 귀에 무선 추적장치(GPS)를 달고 있는 것으로 보아 방사된 놈이었다. 그렇게 반달가슴곰이 첫 모습을 드러냈다.

   
취재팀이 반달가슴곰을 가까이에서 촬영하기 위해 위험을 무릅쓰고 위장막으로 가린 잠복 텐트(오른쪽) 안에서 곰이 오기만을 기다리고 있다.

■반달가슴곰 이동경로 추적현장

취재팀은 지리산 반달가슴곰을 연구하는 추적 팀을 만났다. '국립공원 멸종 위기종 복원센터' 연구원들인데 무선 발신기를 가지고 있었다.

지난 10월 전남 구례군 복원센터에서 오전 9시경 출발했다. 일행은 차량으로 30분간 이동하여 경남 하동군 지리산 형제봉(1,117m)에 도착했다. 연구원들은 탐방로를 벗어나 길 없는 원시림을 헤쳐나갔다.

10㎏의 배낭을 멘 연구원들은 안테나와 무전기까지 들고 있었다. 배낭에는 각종 추적 장비와 함께 김밥과 물이 있었다. 숨이 차고 힘들었지만, 반달가슴곰 이동 경로 현장을 보기 위해 끝까지 따라갔다. 계곡을 건너고 다리를 지나 끝없는 숲을 걸었다.

탐방로를 벗어나 3시간쯤 올랐을 때였다. 갑자기 임종현(39) 연구원이 큰 바위 위로 올라섰다. 한 손에 안테나를 높이 들고 무선 위치추적기에 귀를 바짝 대더니 위성위치확인시스템(GPS)을 이용해 지도위에 점을 찍었다. 발신기에서 소리가 들렸다. '삑 삑 삑'. 노련한 연구원이 안테나를 돌려서 위치를 찾아냈다.

깊은 계곡에서는 전파가 서로 부딪치기 때문에 발신 장소를 찾는 데 경험이 중요했다. 48번 반달가슴곰이 '빗점골'로 위치가 확인되자 연구원들은 바빠졌다. 20분 동안 이동 경로를 추적하고 계속 기록을 했다.

같은 시각 또 다른 곳에서 손대삼(39) 연구원 발신음 추적기에도 '삑 삑 삑' 희미한 신호음이 잡히기 시작했다. 점차 소리가 커지면서 신호음 크기를 표시하는 막대 수가 늘어났다. 52번 반달가슴곰 위치는 '대성골'로 확인됐다.

복원기술부 이승훈(42) 팀장은 빗점골의 2살짜리 48번 새끼반달가슴곰의 몸무게는 50kg 정도라고 했다. 4살짜리 52번 반달가슴곰의 몸무게는 125kg에 달한다고 했다.

   
지난달 16일 국립공원 멸종 위기종 복원센터 임종현 연구원이 형제봉 부근 능선에서 무선 위치추적기를 이용해 반달가슴곰의 위치를 확인하고 있다.
연구원들은 매일 2인 1조로 지리산 일대 반달가슴곰 38마리를 추적한다. 반달가슴곰의 개체관리와 생태를 파악하기 위해 귀에 붙여놓은 발신기는 배터리의 지속시간이 1년 정도여서 적기에 갈아줘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곰의 위치를 확인해야 한다. 지리산이 넓어 한순간 놓치면 반달가슴곰이 어디 있는지 쉽게 찾을 수 없기 때문에 매일 이동 경로를 파악하는 것이 그들의 임무다. 올가미에 걸렸는지, 건강한지, 민가 쪽으로 내려오는지 등 위치를 확인해 개체의 주요 동선을 파악해 정보를 수집하고 있다.

연구원들은 야생동물에게 GPS를 부착해 서식지와 이동 경로를 파악하고 있다. 수신음을 따라 험한 산을 이동하는 일은 고통스러운 작업이다. 발신기 교체나 유전자 감식을 위해 반달가슴곰을 생포하는 일은 더욱 위험천만한 일이다. 등산로가 아닌 능선과 계곡을 따라 이동하며 굴속에서 잠을 자는 일도 그들의 일상이라고 했다.

자연적응훈련과 방사를 통한 연구사례들은 중요한 자료가 된다. 연구원들의 노력과 시행착오는 한 단계씩 발전하는 종 복원의 뿌리가 되는 작업들이다. 종 복원은 자연 생태계를 복원하고 먹이사슬을 부유하게 할 뿐 아니라 다음 세대에 큰 선물로 남을 것이다.


■한반도의 마지막 반달가슴곰

   
경남 함양군 마천면 음정마을 뒤 지리산 자락 삼정산에서 반달가슴곰 한 마리가 나무에 올라가 있다. 반달가슴곰은 나무에 오르는 것을 좋아하며, 날카로운 발톱 덕분에 안정적으로 오를 수 있다.
한반도에 야생 반달가슴곰 사진이나 흔적이 아닌 실물로 마지막 모습을 드러낸 것은 1983년이었다. 설악산 마등령에서 밀렵꾼의 총을 맞고 신음하던 반달가슴곰이 있었다. 밀렵꾼은 납이 든 사제총탄을 사용했고, 부검과정에서 어른 주먹 크기의 웅담이 나왔는데 공개입찰로 판매했다. 죽은 반달가슴곰은 10년생 암컷이었는데 수태한 흔적은 없었다. 설악산 밀렵꾼에 의해 희생된 뒤로 지금까지 아무런 흔적이 발견되지 않고 있다.

2000년 11월 생태전문가 김창수 씨가 최초로 야생 반달가슴곰 흔적을 발견하고 진주 MBC 방송국에 제보를 했다. 그때 지리산에서 반달가슴곰 촬영에 성공하면서 야생 곰의 실체가 확인됐다. 현재 지리산에는 야생 반달가슴곰이 4, 5마리 사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2004년부터 시작한 지리산 반달가슴곰 복원사업으로 지금까지 38마리를 방사했다. 이후 새로 태어나기도 하고 죽기도 해서 현재 38마리 정도 남은 것으로 추정된다. 야생 반달가슴곰과 방사 반달가슴곰이 대충 43마리 정도가 지리산에 서식하고 있다. 반달가슴곰처럼 한 번 멸종위기종이 되면 복원하기가 매우 힘들다.

종 복원센터 연구원들은 이런 악조건 속에서도 반달가슴곰을 방사, 자연에 적응시켜 서로 짝짓기를 하거나 혹은 야생 반달가슴곰과 짝짓기 해 복원시킨다는 프로젝트를 시도하고 있다.

단군신화에 등장하는 곰, 그 반달가슴곰이 지리산에서 지금 복원되고 있다. 또 다른 신화가 창조되고 있는 것이다.

취재팀은 지리산에서 반달가슴곰을 추적하면서 고생도 많았지만, 반달가슴곰의 특성을 알게 된 것이 큰 수확이었다. 근 1년을 취재하는 동안 물심양면 도움을 주신 벽송사 원돈 주지 스님과 다양한 정보를 전해 준 지리산 사람들께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다. 기획시리즈를 끝내게 되어 홀가분하면서도 섭섭한 마음은 지리산 바람이 불어오는 방향을 향해 서성대고 있다.


# 1950년 사냥꾼이던 김종현 씨

- "그 시절 지리산 먹이 많아…반달가슴곰 100마리쯤 됐지"

   
지리산에는 65년 전에도 반달가슴곰이 살고 있었다. 1950년 함양군 마천면 벽송사 아랫마을에 사는 김종현(87) 할아버지는 당시 22살의 젊은 사냥꾼이었다.

"1950년 초까지 지리산에는 먹이가 풍부해 반달가슴곰이 자주 주민들에게 발견됐지. 약 100마리쯤 된다고 들었어. 특히 도토리가 떨어지는 늦가을이 오면 마을 사람들이 반달가슴곰을 보았다는 얘기가 자주 들렸지."

어느 날 할아버지는 곰을 잡으러 가는 포수를 따라 산에 갔다. 그 당시 곰은 특정인만 잡았다. 포수를 따라간 김 할아버지는 올가미에 걸린 곰을 보았다. 늦은 봄, 두릅밭에서 두릅을 먹던 반달가슴곰이 올가미에 걸린 것이다. 총살만 하면 되었다. 엽총을 들고 겨냥하자 반달가슴곰은 목에 줄이 감겨 있었는데도 빠져나가려고 발버둥을 쳤다. 반달가슴곰은 가죽이 얼마나 튼튼한지 가까이 다가가서 총탄을 쏴야 했다. 정면을 향해 조준하자 반달가슴곰이 눈에 불을 켜고 곧 덮칠 것처럼 사나워졌다. 연거푸 총탄을 발사했다. 총탄이 가슴에 박히는 순간 '우우우 악' 하며 큰 소리를 내더니 와이어를 뜯고 도망쳐 달아났다.

핏자국을 따라가 보니 두릅밭에 곰이 쓰러져 있었다. 그 당시 반달가슴곰은 부산의 모 한의원에 15만 원에 팔렸다. 지리산은 반달가슴곰이 살기 좋은 곳임이 틀림없다. 65년 전에도 반달가슴곰이 살았고 지금도 반달가슴곰이 살고 있는 걸 확인했으니 말이다.


※취재 협조=원돈 벽송사 주지스님·국립공원관리공단 종복원기술원·지리산국립공원사무소·환주 금대암 주지스님·성후 안국사 주지스님·현조 영원사 주지스님·김용만 함양군청 기획감사실·박용수 조류전문가

※이 취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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