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조그마한 둘째 녀석이 자전거를 끌고 집을 나선다. 동네 안, 멀지 않은 곳에 있는 '꿈꾸는 작은 도서관'에 가는 중이다. 우리 아이들은 이곳을 '꿈도'라고 부른다. 집보다 시원하다며 여름 내내 '꿈도'로 피신한다. 가까운 거리에 학교 도서관도 있고, 동네 작은 도서관도 있어 참 다행이다. 우리 가족에게 이 공간은 소소한 재미를 주는 옹달샘 같다.
생각해보면 도서관에서 많은 일이 있었다. 시험공부, 자격증 준비, 영어공부, 과제준비 등과 같이 시시콜콜한 것들은 기억에 별로 남아있지 않다. 대신, 책 냄새, 방해하지 않으려는 분위기, 사각거리는 연필 소리, 저절로 낮아지는 목소리, 소곤대는 친구, 우울한 낙서, 맛없는 식사, 일회용 커피와 벤치, 낯익은 이름이 적힌 대출카드, 알 수 없는 미래의 표정, 낯선 이의 쪽지. 이런 것들이 더욱 진한 기억으로 남아 나를 만들었다. 그래서 아이들이 매일같이 도서관에 가는 것만으로도 좋다. 그곳에서 책을 보지 않아도, 학교공부를 하지 않아도 자기와 세계에 대해 궁금해하고 소소한 추억을 쌓아간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사회복지학을 공부하면서 생긴 작은 꿈이 있다. 마을마다 사회복지관과 보건소와 도서관을 하나로 묶은 공간이 있는 마을 풍경이다. 복지서비스와 건강서비스와 지식서비스가 하나의 공간에서 어우러져 주민들에게 줄 수 있다면, 어떤 동네가 될까? 크고 위압적인 건물이 아니어도 괜찮다. 1층에는 주민의 복지 욕구를 살펴보고 상담해주는 곳을 만들고, 그 옆으로 건강한 삶을 위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곳을 앉혀 보자. 로비에 주민들이 함께 마을박물관을 만드는 것도 좋겠다. 위에 통합프로그램실과 치료실을 짓고, 그 위에 작은 도서관을 올려보자. 옥상에는 텃밭과 옥탑사랑방을 만드는 상상을 해본다. 마을 주민을 중심으로 사회복지사와 의료인, 사서와 상담·치료사가 오밀조밀 모여 함께 생활하는 옹달샘 같은 공간, 불가능할까?
사람의 욕구와 문제는 대부분 복합적이어서 해결방안 역시 통합적이어야 한다. 그 해결방안 중 가장 기본적인 것은 복지서비스와 보건서비스와 지식서비스이다. 사람을 중심으로 한다면 이 기본서비스들은 따로 떨어질 수 없지만, 여러 이유로 분리돼 있다. 기관 간 연계와 소통을 강조하지만 한계는 뚜렷하다. 각종 전문 사회서비스를 제공한다는 각종 센터는 많지만 정작 체감도는 높지 않다. 틀을 재정비하는 것이 행정적으로나 재정적으로 불가능해 보이지 않는다. 사람을 중심으로 하지 않고, 정치적 이해관계와 행정의 칸막이 속에서 움찔거리기에 여념이 없어 여러 상상이 죽어버린다.
윤성호 동서대학교 사회복지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