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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줌마칼럼] 천재 소녀, 그리고 부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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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입력 : 2015-06-24 18:43:32
  •  |  본지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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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3학년 때였는지 4학년 때였는지 기억은 정확지 않다. 다달이 치르는 월례고사에서 도덕시험지를 받아들고 나는 고민에 휩싸였다. 주관식 시험문제의 정답은 '슈바이처'. 꼭 100점을 받고 싶었던 열 살배기 여자아이는 '슈바이처'인지 슈바이차'인지 마지막 글자가 헷갈리기 시작했다. 만점에 대한 강박관념으로 고민을 거듭하던 중 나름의 꼼수를 떠올렸다. '처'와 '차'가 헷갈리도록 모음 'l'를 적은 뒤 그 중간에 '-'를 좀 길게 적었더니 어떻게 보면 '슈바이처'로도 보이고 어찌 보면 '슈바이차'로도 보였다. 발칙했던 꼼수는 별 탈없이 넘어갔고 마음 불편한 100점을 받았다. 더럭 100점을 받고 나니 내내 불안에 시달렸다. 맞춤법이 틀렸다거나 글자가 부정확해 보인다는 담임 선생님의 호출이 금방이라도 있을 것 같아서 하루하루가 바늘방석이었다. 그 후로도 오랫동안 '슈바이처'는 나를 괴롭혔다. 100점에 대한 강박관념은 비양심의 꼼수를 기억에 묻은 채 그렇게 까마득하게 사라졌었는데 얼마 전 벌어진 천재 소녀의 해프닝 기사 앞에 문득 그 기억이 고개를 들었다.

하버드와 스탠퍼드를 넘나들며 마크 쥬커버그에게서 개인적인 전화까지 받았다는 한국인 천재 소녀의 이야기가 온통 인터넷을 달구고 있었다. 미국에서도 수재들만 다닌다는 한 과학고등학교에 재학중인 여학생은 하버드와 스탠퍼드에서 동시에 러브콜을 받았다고 했다. 모두가 찬사를 보내며 부러움을 금치못할 때 나는 천재 소녀보다 천재 소녀를 키운 부모의 이야기가 더 궁금했었다.

그런데 그로부터 며칠 뒤. 메르스의 공포가 온 사회를 혼란에 빠뜨린 어수선한 틈을 비집고 천재 소녀의 기사가 거짓이었다는 이야기가 뜨겁게 부상했다.

세상은 여러 가지 진실을 쏟아냈다. 합격증이 위조라고 밝힌 대학의 발표에서부터 사건 이전부터 이상한 거짓말로 간혹 진실을 조작해 왔다는 지인들의 고발까지 언론은 소녀의 허위극에 동시에 휘둘리고 있었다. 누구는 브로커가 조작한 희대의 입시사기극이라 했고 누구는 부모의 과잉기대가 빚어낸 강박관념에 대한 희생이라고 했다.

뭇사람들의 입방아에 사건이 오르내리면서 황급히 사태의 진실을 파악하던 소녀의 아버지는 사회적 물의를 일으킨 것에 공개사과를 표시하고 자신의 잘못에서 출발한 일이라고 책임을 통감했다. 앞으로 아이를 잘 치료하고 돌보는데 마음을 쏟으며 조용히 살겠다고 속마음을 내놓았다. 소녀의 아버지는 10대인 딸아이의 앞날을 위해 더 이상 이야기가 보도되지 않기를 바란다는 절절한 부정도 잊지 않았다. 사과로 마무리된 해프닝 앞에서 부모는 딸의 병든 마음을 받아들이며 아픈 피눈물을 쏟았을 것이다.

현실을 부정하고 가짜 세상을 진실이라 믿으며 거짓된 말과 행동을 반복한다는 '리플리 증후군'. 세상은 소녀를 두고 '오죽했으면…'하고 이해했다가도 '그렇더라도…'하며 고개를 내젓고 있다.

불안했던 100점을 얻은 열 살배기 소녀는 이제 부모가 되었고 그 강박관념을 잊고 살아왔다. 부모와 자식이라는 굴레 앞에 맘 편한 기대란 결코 쉽지 않다.

유정임· FM90.5 부산영어방송 편성제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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