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60년대 남포동서 개업 전통 지켜와
- 54년, 60년 경력 어르신들께 수업받아
- 풍부한 요리적 자산에 노력 더하는 중
부산의 근대 음식에서 빠질 수 없는 것이 일본음식이다. 1876년 부산항의 개항과 더불어 많은 일본인이 부산에 정착했다. 그들에게 부산은 대륙침략의 거점이자 기회의 땅이었다.
부산은 빠른 속도로 근대화 되었으며 일본문화가 여과 없이 확산되었다. 식민지 수도였던 경성(서울) 역시 비슷한 상황이었지만, 서울은 한국전쟁으로 그 흔적이 많이 사라졌다.
하지만 전쟁의 직접적인 피해를 입지 않은 부산은 달랐다. 개항 이후 뿌리내린 일본음식은 100년이 넘는 세월 동안 부산의 식문화에 직간접인 영향을 미쳤다. 해산물이 풍부하고 일본으로부터 식재료의 수입이 용이한 지역적 특징 또한 한몫 거들었다. 부산에는 일식집이 유난히 많았고 개중에는 전국적으로 소문난 곳 또한 적지 않았다.
70~80년대 부산서 이름 꽤나 날리던 대부분의 일식집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지만 삼송초밥 만큼은 예외다. 1960년대 초에 남포동에서 시작한 삼송초밥은 반세기에 걸쳐 여전히 과거의 명성과 전통을 지켜오고 있다. 때로 음식은 역사의 흔적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는 화석 같은 역할을 한다.
일본식 김밥인 '후토마키', 밥위에 덴푸라를 올린 '덴동', 따뜻하게 데운 청주에 참복의 지느러미를 넣은 '히레사케', 복어 살만 발라내 간장에 조려 자연건조 시킨 '복어포' 등은 삼송초밥을 대표 메뉴들이다. 식재료가 풍부해지고 효율성이 강조되면서 그 대부분이 변형되었지만 삼송초밥은 50년 세월동안 고집스레 원형을 고수하고 있다.
예를 들어 후토마키를 한번 보자. 김과 밥 외에 4가지 재료가 들어가는데 그 각각을 준비하는 과정이 여간 까다롭지 않다. '오보로'는 광어살을 쪄서 빻아 채로 거른 뒤 설탕과 소금으로 간을 하고 건조시킨다. '간뾰'는 박고지를 말려 간장에 조린다. 달걀말이는 인위적으로 부풀리지 않고 100~120겹으로 부피를 늘인다. 푸른 채소는 계절에 따라 그 선택을 달리한다. 이 모든 과정을 거쳐야 비로소 한 줄의 김밥이 완성된다. 이처럼 원칙에 충실한 후토마키는 일본에서 조차 만나기 쉽지 않다.
삼송초밥이 이렇듯 전통을 지킬 수 있는 것은 사람의 힘이다. 54년 째 현역인 조승길(74) 주방장은 부산 일식 요리사들 가운데 최연장자이며, 지금은 은퇴하고 가끔 일손을 돕는 조환영(76) 씨는 무려 60년이 넘는 경력을 가진 일식 요리사다. 요령을 모르고 오로지 한 길을 걸어 온 그들의 장인정신 덕분에 부산 식문화의 귀중한 자산이 면면히 이어지고 있다.
주강재(34)는 이 쟁쟁한 어르신들 밑에서 주방의 막내로 요리사 수업을 받고 있다. 삼송초밥의 2대째로 앞으로 음식점을 물려받을 처지이긴 하지만 그는 이제 겨우 경력 8년 밖에 되지 않은 햇병아리 요리사다. 하지만 그의 존재는 그 자체로 적잖은 의미가 있다. 남포동에서 태어나고 자란 주강재는 전형적인 '남포동키드'다. 삼송초밥을 운영하는 부모님 덕분에 원도심의 중심인 남포동의 쇠퇴와 부활을 누구보다 근거리에서 체득했다. 그의 할아버지는 자갈치시장의 중도매인으로 해방 이후 자갈치시장 부흥을 견인했다. 그의 고모는 여전히 자갈치시장에서 가업을 잇고 있다. 덕분에 바다 생선에 대해서는 어지간한 경력자 못지않은 지식과 경험을 갖고 있다.
가업을 잇는 후계자들의 사례를 보면 처음부터 그것만이 유일한 선택인 경우는 드물다. 나름 자신의 길을 개척하고자 다른 선택을 한다. 하지만 자신의 운명을 완전히 비켜가지는 못 하고 결국엔 그 운명을 받아들이게 된다. 대학 졸업 후 미국에서 어학연수를 하고 돌아 온 주강재는 영어학원에서 토익강사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얼핏 요리와 전혀 상관없는 길을 걸은 듯 보이지만 그 역시 운명을 완전히 거스르지는 못했다. 미국 연수기간 동안 현지 일식당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학비를 벌었고, 귀국 후에도 부산의 유명 일식당을 전전하며 경험을 쌓았다. 그리고 2010년부터 가업을 잇기 위해 삼송초밥으로 돌아왔다.
주강재는 완성된 요리사라기보다는 이제 겨우 첫발을 내 디딘 초보에 불과하다. 하지만 그의 어깨에는 삼송초밥의 50년 전통이 걸쳐있고, 그의 가슴에는 남포동과 자갈치시장의 날 것 그대로의 감성이 펄떡이고 있다. 부산의 요리사들 중에서 이처럼 풍부한 자산을 가진 이도 드물다. 주강재가 그 자산을 어떻게 활용할지 궁금하다. 허나 결과야 어찌되건 그 덕분에 부산의 근대음식이 앞으로도 꽤 오랫동안 계승될 것만큼은 분명한 사실이다.
박상현 맛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