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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의 요리사들 <14> 미소오뎅 양재원 대표

끝까지 파고드는 '먹물근성' 변함없는 국물맛의 이유

  • 국제신문
  • 디지털콘텐츠팀 inews@kookje.co.kr
  •  |  입력 : 2014-02-13 18:52:00
  •  |  본지 2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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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억대연봉 샐러리맨, 10평 가게주인 돼
- 부산 30개 어묵회사의 수백 종류 중
- 20여 개 골라내는 날카로운 눈
- 남해산 멸치, 소금을 기본으로
- 어묵, 스지 맛 녹여내 최고의 국물 탄생

최모 씨는 어묵을 굉장히 좋아한다. 언젠가 농담조로 그런 말을 했었다. "내가 아무리 민족의식이 투철했어도 독립운동은 절대로 못했을 거야. 독립운동하다 잡혀갔는데 고등계 형사가 어묵을 흔들면서 '불라고' 그러면 여지없이 무너졌을 거거든."

아닌 게 아니라 그는 어묵을 무척이나 좋아한다. 그저 좋아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어묵 전도활동에도 열성적이다. 부산 대연동의 '미소오뎅'을 알게 된 것도 그 덕분이었다. 오뎅 마니아인 최 씨가 부산 최고의 오뎅집이라 추천했기 때문이다.

우선 한 가지 명확히 하자. 이미 완성된 식품인 어묵을 국물에 익혔을 뿐인 오뎅을 두고 요리 운운하는 것은 억지스럽다는 지적이 있을 수 있다. 요리의 본질을 단순하게 정의하면 식재료의 특성을 파악하고 그 맛을 가장 잘 끌어내는 조합과 타이밍을 찾는 작업이다. 그런 점에서 본다면 오뎅 역시 여느 음식 못지 않은 지식과 경험이 요구되는 작업이다. 기실 요리란 그 과정이 단순할수록 요리사의 능력 차이가 확연하게 드러나는 법이다.

따라서 미소오뎅의 양재원(48) 대표는 요리사가 분명하며, 그것도 탁월한 능력을 가진 요리사다. 그는 우선 어묵을 선별하는 남다른 안목을 지녔다. 부산에서는 30여 개의 어묵회사가 수백 종의 어묵을 생산한다. 하지만 이들 중에서 양재원에 간택되는 어묵은 불과 20여 종. 노련한 1차 소비자인 그를 만족시킨 이 어묵들은 부산어묵의 대표선수라고 해도 손색없다.

저마다 개성이 다른 어묵을 조화롭게 해주는 것은 국물의 역할이다. 한국인에게 오뎅국물은 어묵만큼이나 중요한 포인트다. 남해산 멸치를 몇 시간 우려낸 다음 소금으로만 간을 한 미소오뎅의 국물은 처음엔 살짝 밋밋한 맛이다. 그런데 다종다양한 어묵이 얼마간 몸을 담그고 나면 신통방통할 정도로 완성된 맛을 낸다. 거기에 이틀 동안 끓이고 다듬기를 반복한 국내산 한우 스지(힘줄)의 맛 성분이 녹아들면 볼륨감까지 더한다.

다음은 타이밍이다. 국물에 담긴 어묵이라 해서 넙죽넙죽 건져 먹는 것은 미소오뎅에서는 용납되지 않는다. 원재료(연육)의 함량과 부재료의 종류가 다른 어묵은 익는 시간 역시 제각각이다. 양재원은 그 타이밍을 경험과 감각으로 알고 있다. 그래서 주인장의 지시를 따라야 한다. 행여 주인장이 놓치더라도 손님들이 가만있지 않는다. 단골의 비율이 70% 이상인 미소오뎅에서는 단골이 주인장보다 더 엄한 시어머니 노릇을 한다.

유명 광고회사를 다니던 양재원이 제2의 인생을 위해 미소오뎅을 시작한 것은 2008년의 일이다. 억대에 가까운 연봉을 받던 엘리트 샐러리맨이 10평도 안 되는 오뎅집의 주인장이 됐으니 누가 봐도 뜻밖의 선택이 분명했다.

하지만 양재원의 '먹물근성'은 가로 100㎝, 세로 50㎝ 정도 되는 오뎅통에서 진가를 발휘했다. 미소오뎅 개점 초기, 그는 홀로 오뎅통을 향해 끊임없이 '왜?'라는 질문을 던졌다. 해답을 얻지 못하면 수시로 문을 닫았다.

당장의 매출보다는 맛을 완성하는 것이 더 중요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도서관을 뒤졌고, 국물과 어묵의 접점을 찾기 위해 여러 차례 시행착오를 거듭했다. 한때 유행처럼 번졌던 오뎅집이 순식간에 사라졌음에도 미소오뎅만큼은 여전히 승승장구하는 이유다.

자타가 공인하는 부산의 오뎅집이고, 앉을 자리가 없어 헛걸음을 하는 고객이 부지기수다 보니 속 모르는 사람들은 그를 마냥 부러워한다. 하지만 양재원에게 미소오뎅은 창살 없는 감옥이나 마찬가지다. 국물을 뽑고, 스지를 다듬고, 어묵을 준비하자면 잠자는 시간을 제외하고 하루 종일을 10평 남짓한 공간에서 홀로 보내야 한다.

그런 그를 보면 윤오영의 수필 '방망이 깎던 노인'의 주인공이 떠오른다. 손님의 채근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묵묵히 방망이를 깎고 또 깎던 노인은 방망이 한 벌을 완성한 다음, 굽은 허리를 펴고는 무심히 동대문의 추녀를 바라본다.

양재원에게 그 추녀 역할을 하는 것은 한 잔의 맛있는 맥주다. 덕분에 미소오뎅의 손님들은 벨기에·독일·일본의 프리미엄 맥주와 오뎅을 즐기는 호사를 누린다.

   
오뎅은 뭉근히 끓는다. 그 과정에서 어묵은 자신의 가진 맛을 국물에 쏟아내고, 국물은 이를 조화롭게 수용하고, 어묵은 다시 그 국물을 제 몸에 채워 넣는다. 이런 개방성과 수용성은 부산과 닮은 구석이 많다. 그래서 오늘도 김이 모락모락 나는 오뎅통을 지키고 있는 양재원의 모습은 그 자체로 부산의 풍경이다.

박상현·맛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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