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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의 요리사들 <11> 파라다이스호텔 중식당 '남풍' 전석수 요리사

홍콩영화에 반해 주방장이 된 남자, 품격있는 중국요리 외길 23년

  • 디지털콘텐츠팀 inews@kookje.co.kr
  •  |   입력 : 2013-12-05 18:55:33
  •  |   본지 2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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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올해 3월 호텔 중식당 주방장에 올라
- 화교들의 영역이었던 닫힌 문 열어
- 국내 특1급 호텔에서도 드문 일
- 화학조미료 최소화한 짜장면 개발
- '우리밀 된장짜장면' 남풍의 명물로

파라다이스호텔 '남풍'과 롯데호텔 '도림'은 부산의 호텔 중식당의 양대 산맥이다. 특히 33년 역사를 가진 '남풍'은 호텔 중식당의 터줏대감 같은 곳이다. 이 유서 깊은 레스토랑에 올해 3월 전석수(43) 주방장이 새로 취임했는데, 놀라운 것은 그가 한국인이라는 사실이다. 비록 중식당이라 해도 한국에 있는 레스토랑에 한국인이 주방장으로 취임한 것이 왜 새삼스러운 일일까? 중식 요리사 전석수의 삶의 궤적을 살펴보면 이는 자연스럽게 이해된다.

경북 경산에서 태어난 전석수는 홍콩영화에서 본 요리 장면에 매료되어 무작정 중식 요리사가 되기로 결심했다. 고교를 졸업하고 대구의 호텔 중식당에 취직한 이후 23년간 오로지 호텔의 중식 요리사로 살아왔다.

1995년에는 서울 리츠칼튼호텔의 오픈 멤버로 참여했다. 경력과 능력을 인정받았지만 그는 '칼판장' 이상 될 수 없다는 현실을 깨달았다. 호텔을 비롯해 규모가 큰 중식 레스토랑의 주방은 면과 전채요리 등을 담당하는 면부, 인력과 식재료 관리 등을 담당하는 도부, 주요리를 만드는 화부로 나뉘고 각각의 책임자를 면판장, 칼판장, 불판장이라 부른다.

한국 중국음식점의 역사가 화교로부터 시작되었듯 호텔 중식당 역시 마찬가지였다. 이 땅에서 백년 넘게 살아온 화교의 역사는 수난사와 다름없었고, 그들은 여전히 이방인이다. 자연스레 동포끼리 유대감이 강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호텔 중식당은 화교의 영역이었다. 이곳에서는 오히려 한국인이 이방인 취급을 받는다. 그렇다고 그들을 비난할 수는 없다. 화교를 적극적으로 포용하지 못한 자업자득이다.

아무리 노력해도 주방장격인 불판장이 될 수 없다고 판단한 전석수는 1997년 새로운 기회를 찾아 부산 파라다이스호텔로 왔다. 하지만 이곳에서도 그는 늘 2인자에 머물러야 했다. 묵묵히 때를 기다렸다. 끊임없이 요리 연구에 매진했고, 전문대학을 시작으로 조리학 석사까지 취득했으며 2012년에는 '호텔 중국요리'라는 책까지 공동 집필했다. 그리고 마침내 올해 3월 '남풍'의 주방장이 되었다. 파라다이스호텔 33년 역사에서 처음 있는 일이고, 국내 특1급 호텔을 통틀어서도 매우 드문 경우다.

주방장으로 취임한 전석수는 '남풍'의 체질을 바꾸기 시작했다. 소스에서부터 주요리에 이르기까지 모든 메뉴의 레시피를 체계화하고 업무 분장을 세분화함으로써 일관성 있는 맛을 유지했다. 이어서 냉동 식재료와 캔에 든 식재료를 신선 식재료로 바꾸고 올리브유를 사용함으로써 부담 없고 건강한 중국요리를 지향했다. 아울러 고객의 요구는 물론이고 호텔 내 모든 구성원의 의견 역시 적극 수렴하고 요리에 반영했다.

어느 날 미식가로 소문난 파라다이스호텔의 이인배 총지배인이 그에게 화학조미료를 최소화한 짜장면을 요구했다. 공장에서 생산된 춘장에는 이미 충분한 양의 화학조미료가 첨가돼 있기에 이를 대체할 그 무엇이 필요했다. 몇 개월의 시행착오 끝에 우리밀로 만든 된장과 간장으로 맛을 낸 '우리밀 된장짜장면'을 개발했다. 짜장면 특유의 맛이 살아있으면서도 담백하고 부담이 적은 우리밀 된장짜장면은 '남풍'의 명물이 됐다.

중국요리는 불과 기름과 향신료의 연금술로 탄생한다. 자칫 이것이 과하면 기름지고 주객이 전도된 음식이 될 수 있다. 하지만 전석수가 만드는 음식에서는 언제나 주재료가 선명하다. 불과 기름과 향신료는 주재료를 돋보이게 하는 조연의 역할을 벗어나지 않는다. 여기에 홍콩 등지에서 유행하는 최신 트랜드와 그만의 창작이 곁들여 진다. 플레이팅에는 현대적 감각이 살아있다. 이 때문에 그의 중국요리에서는 프랑스요리 못지않은 품격이 느껴진다.

호텔 레스토랑은 새로운 총주방장 취임 후 8개월 정도가 지나면 성공 여부가 결정된다. 딱 그만큼의 시간이 흘렀다. '남풍'의 매출은 증가했으며 고객들의 만족도는 그 어느 때보다 높다고 한다. 중식당 최초로 한국인 주방장을 맞은 파라다이스호텔의 선택은 적중했고, 중식 요리사 전석수의 23년 외길 인생은 이렇게 결실을 맺었다.

무릇 인생의 목표를 성취한 이들은 다음 꿈을 꾸기 마련이다. 부산이 제2의 고향이 되었다는 전석수는 언제까지나 지금처럼 현역으로 활동하고 싶다고 했다. 그 과정을 수시로 확인하고 싶은데, 특급호텔 레스토랑 음식값은 내게 너무 부담스럽다. 어쩌겠는가. 그가 더 훌륭한 요리사로 거듭나는 동안 나는 더 열심히 벌어볼 수밖에….

박상현·맛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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