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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적지 따라 이야기 따라 <15> 양산 '가야진용신제'

삼국시대부터 2000년 세월 명맥 이어온 국내 최장수 제례

  • 이민용 기자 mylee@kookje.co.kr
  •  |   입력 : 2013-07-18 18:55:41
  •  |   본지 3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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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야진용신제보존회 회원들이 지난 5월 경남 양산시 원동면 용당리 가야진사 천제단에서 제례를 거행하고 있다. 가야진용신제보존회 제공
- 매년 음력 3월 초정일날
- 뱃길 안전·가뭄 해소 기원

- 주민들 자발적 보호 힘입어
- 작년에는 천제단도 발굴돼
- 1997년 道무형문화재 지정
- 전승회원만 120명에 달해

경남 양산지역에 수많은 문화유적이 있지만, 그중에서도 2000년의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는 '가야진용신제(경남 무형문화재 제19호)'는 독보적이다. 해마다 음력 3월 초정일(初丁日) 낙동강에서 행해지는 가야진용신제는 삼국시대부터 조선조 말기까지 낙동강에 사는 용에게 뱃길의 안전을 빌고, 가뭄에 비를 기원하는 국가 제례였다.

조선시대 말까지 행해진 국가 제례는 대사(大祀) 중사(中祀) 소사(小祀)로 나눠 전국 50여 곳에 이른다. 이 가운데 현재까지 이어지는 제례는 대사(大祀)인 사직, 종묘, 영령전 세 곳의 제사와 가야진용신제가 유일하다. 특히 대사(大祀)는 조선시대 국가 제례인 점을 고려하면 가야진용신제는 삼국시대부터 이어져 온 국내 유일의 최장수 제례이자 민속놀이인 셈이다.

■낙동강과 가야진용신제

   
낙동강 자전거길 인증센터가 있는 경남 양산시 원동면 원동문화생태공원에는 전설과 역사를 고스란히 담은 작은 사당이 있다. 이곳이 가야진용신제를 지내는 사당인 가야진사(伽倻津祠·경남민속자료 7호)다. 조선 태종 6년(1406)에 세운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가야진이라는 지명이 말해주듯 이곳은 신라와 가야의 교역로이자 신라가 가야를 정복할 때 건넜던 나루터다. 이는 사당 맞은 편 경남 김해시 상동면 여차리 용산(龍山)까지 강폭이 가장 짧기 때문이다. 실제 낙동강 하구 쪽은 강폭이 최고 1.7㎞에 달하지만 이곳은 불과 200여m에 불과하다. 강폭이 갑자기 좁아지다 보니 유속이 빠른데다 소용돌이까지 일면서 강을 건너던 주민이 목숨을 잃자 용왕을 위한 제를 올린 것이다.

무려 2000년 이라는 세월을 버티면서 명맥 유지를 위한 고초도 많았다. 가장 큰 고비는 일제 강점기였다. 전국의 국가 제례가 일제의 민족말살정책으로 금지되면서 가야진사도 헐리고 용신제를 금지당했다. 하지만 마을 주민들은 인근 천태산 비석골에 사당을 모시고, 밤중에 제사를 지내며 명맥을 유지했다. 지난 2001년에는 대구~부산 간 고속도로가 개설되면서 용신제의 핵심인 김해시 상동면 용산(龍山)이 사라질 위기에 처했다. 낙동강으로 뛰어드는 용의 형상을 한 용산은 주민들이 나룻배를 타고 제물을 바치는 신성한 장소다. 주민들은 용산보존대책위를 구성, 용산을 지켜냈다. 최근에는 가야진사와 전수관이 낙동강 정비사업 대상지역에 포함되면서 또 한번 위기를 맞았다. 다행히 가야진사 인근 부지에서 옛 가야진사로 추정되는 유적지와 각종 제기가 발견된 이후 주민들의 노력이 더해져 지금은 낙동강 원동문화생태공원의 주요 시설물로 남게 됐다.

■국가제례와 민속놀이의 접목

가야용신제는 주민을 제외하고 공식 제례에 참가자 80여 명이 펼치는 다섯 마당으로 이뤄진다. 첫째 마당은 부정가시기다. 제례일 3일 전부터 제관들은 목욕재계하고 제향준비를 한다. 그리고 당일 제를 올리기 전에 제당 안과 출입문에서 부정을 쫓아내는 의식을 치른다. 둘째 마당은 칙사영접이다. 칙사가 당도하기 전에 농기구를 들고 소리에 맞추어 땅을 고르고 비질을 한다. 칙사가 길목에 당도하면 지신밟기를 하면서 영접 길에 오른다. 조선시대에는 정2품인 관찰사가 칙사로 참여했다는 기록이 있다.

셋째 마당은 본격적인 제사인 시제(기우제)다. 시제의 절차만도 50여 항목에 이른다. 넷째 마당 용소풀이에는 강변에서 용의 승천을 기원하는 풍물과 함께 나룻배에 돼지를 실은 뒤 낙동강 용왕에게 바친다. 다섯째 마당 사신(辭神)은 용소풀이가 끝나면 제사에 참여한 사람들은 춤을 추면서 제단으로 돌아오고 제관을 비롯한 모든 참제원과 주민이 어울려 가무를 즐기며 끝을 맺는다.

■만년 이어갈 전통문화유산

유구한 역사에도 가야용신제는 종묘제례와는 달리 주목을 받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지난 1997년 경상남도 무형문화재 제19호로 지정된 이후 주민을 중심으로 한 보존회가 결성되는 등 용신제를 후대에 물려주기 위한 노력이 활기를 띠고 있다. 가야진용신제보존회는 가야진사를 새롭게 복원하고 2006년에는 가야진용신제 전수관을 신축하는 등 후계자 양성에 나섰다. 지난해에는 낙동강 정비사업 도중에 가야진사의 천제단이 발굴됨에 따라 단과 나루터까지 복원했다. 가야진용신제 예능보유자도 초대 이장백(1914~1998), 2대 김진규(82·가야진용신제보존회장)씨를 거쳐 3대 박홍기(50·〃사무국장)씨로 맥을 이어가고 있다. 현재 전수관에서 전통의 맥을 이어받기 위해 비지땀을 흘리는 전승 회원만도 120명에 이른다.

보존회 박홍기 사무국장은 "가야진용신제는 여느 국가중요무형문화재에 뒤질 것이 없다"며 "국가적인 제례로서의 정통성을 인정받기 위해 더욱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 실수로 남편 용 죽인 인간에 한 품은 이무기 달래는 제사

■ 가야진용신제 탄생 설화

가야진용신제를 지내는 사당인 가야진사에는 세 마리의 용 그림이 있다. 낙동강에 사는 용을 그린 삼룡도다. 한 마리도 아니고 세 마리의 용을 모시게 된 연원이 전설로 남아있다.

옛날 양산군수의 명을 받은 조 사령(使令)이 경상감사가 있는 대구로 길을 떠났다. 원동면 용당리(현재의 가야진사 부근) 주막에서 하루를 묵게 된 조 사령이 한밤중에 여인의 흐느끼는 소리에 잠을 깨보니 커다란 이무기가 황산강(낙동강) 용소에 사는 황룡의 본처라며, 청을 들어달라는 것이었다.

구렁이의 말인즉슨 낙동강에 자신과 남편 황룡, 첩룡인 청룡 세 마리의 용이 살고 있는데, 황룡이 첩룡의 꾐에 빠져 자신에게 주어야 할 여의주를 첩룡에게 주고 함께 승천하려 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니 내일 남편 황룡과 첩룡이 용소에서 싸움을 벌이도록 할 터이니 첩룡을 죽여 달라는 것이었다.

다음 날 이무기의 말대로 황룡과 청룡이 강물 위로 솟구치며 싸움을 하기 시작했다. 조 사령은 싸우는 용들을 향해 준비해 간 장검을 힘껏 내리쳤다. 커다란 비명을 울리며 용 한 마리가 강물로 떨어졌고, 그 때 어제 만난 이무기가 청룡이 되어 모습을 드러냈다. 본처 용은 울부짖으며 조 사령이 죽인 것은 첩룡이 아니라 남편인 황룡이라는 것이었다. 화가 난 본처 용은 조 사령을 끌고 강물 속으로 사라졌다. 그 후 마을에는 원인을 알 수 없는 재앙이 뒤따랐고, 마을 사람들은 노한 용을 달래기 위해 해마다 세 마리 용을 위로하는 제를 올렸다.


# "홀대 안타까워…역사적 재조명 필요"

■ 김진규 보존회장

   
"자나 깨나 가야진용신제가 국가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받는 일이 소원이지요".

가야진용신제보존회 수장을 맡고 있는 김진규(82·사진) 회장은 가야진용신제에 대한 자긍심과 함께 중앙정부의 홀대에 적잖이 서운해했다.

같은 국가 제례였지만 600년 역사의 종묘제례는 일찌감치 국가중요무형문화재는 물론 유네스코 인류무형유산으로까지 등재됐지만 가야진용신제는 그저 한가한 촌락의 민속놀이쯤으로 밀려나 있기 때문이다.

"가야진용신제가 주목받아야 할 이유는 2000년을 이어 온 횟수만큼 일일이 열거할 수 없을 정도"라고 강조한 그는 "뒤늦은 감은 있지만 근년 들어 보존회를 새롭게 정비하고 전수관을 중심으로 행사내용은 물론 학술연구에도 박차를 가하는 등 가야진용신제에 대한 역사적 재조명에 치중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 같은 의지를 반영하듯 가야진용신제는 지난해부터 역사문헌을 근거로 천제단을 복원해 원형에 가까운 용신제를 지내고 있다.

"일제잔재 청산을 외치지만 일제가 말살한 민족정신과 문화를 되찾는 일도 중요하다"고 강조하는 김 회장은 전국 50곳에 달했던 국가 제례 가운데 유일하게 원형을 보존하고 있는 가야진용신제에 대한 학계와 중앙정부의 관심을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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