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식은 결국 사람에서 나온다. 사람의 손을 거쳐 사람의 입으로 전해지는 게 바로 음식이다. 그래서 음식을 만드는, 요리사의 이야기를 시작한다. 수십 년을 하루처럼 매일 똑같은 일을 하며 살아온 이들의 평범하지만, 전혀 가볍지 않은 이야기를'.
- 가까운 바다서 잡힌 생선 선호
- 기본인 밥짓기부터 깐깐하게 살펴
요리사의 아내는 잠든 남편의 손가락을 꼼꼼히 살폈다. 어느 방송에서 지문의 중심부가 둥글게 소용돌이치는 '와상문'이 많을수록 요리에 재능이 있다는 소리를 들었던 터였다. 놀랍게도 남편은 손가락 열 개 모두 와상문이었다. 다음 날 아내는 남편에게 "당신 음식이 왜 맛있는지 이제야 알겠다"며 자초지종을 털어놓았다. 아내의 새삼스런 격려가 그렇게 기분 좋을 수 없더라며 요리사는 겸연쩍게 웃었다.
부산에서 스시깨나 먹어 본 사람에게 "스시 하나만 놓고 봤을 때 최고가 어디냐?"라고 물으면 이구동성으로 부산 해운대구 좌동 '젠스시'를 꼽는다. 입맛 까다로운 미식가들이 이처럼 의견일치를 보는 예도 흔치 않다. 지문 10개가 전부 와상문인 백선필 요리사가 운영하는 곳이다.
사람마다 다른 지문은 평생 변하지 않는다. 설령 지문이 닳았다 한들 새로운 세포가 자라면서 이전과 같은 지문이 다시 생겨난다. 숙명처럼 타고나는 저마다의 흔적이다. 하지만 백선필의 스시는 타고 난 재능 덕이 아니다. 28년을 오로지 스시 하나만 생각하며 노력해 온 수행의 결과물이다.
장인의 반열에 오른 일본의 요리사들은 한결같이 '마이니치마이니치(每日每日)'를 강조한다. 매일매일 같은 일을 반복하고 이렇게 수십 년이 흘렀을 때, 나무의 나이테가 늘어나듯 조금씩 요리의 깊이가 생긴다는 의미다. 특히 스시처럼 단순한 음식일수록 이는 진리로 통한다.
스시는 생선과 밥이 만나 완성되는 음식이다. 에도 시대부터 스시가 일본의 대중음식으로 정착한 것은 밥을 맛있게 먹으려는 방편이었다. 밥이 6할이고 생선이 4할이다.
백선필의 스시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밥이고, 가장 맛있는 것 또한 밥이다. 9년 동안 거래하던 쌀 도매상에서 까다롭게 고르고, 밥 짓는 과정 역시 여간 깐깐하지 않다. 밥을 간하는 소금의 성질과 식초의 종류도 꼼꼼히 살핀다. 밥의 온도는 사람의 체온과 가깝게 유지하고 밥알과 밥알은 팽팽한 긴장을 유지할 정도로만 뭉친다. 그래야 혀에 닿았을 때 기분 좋게 흩어지고 생선회의 질감과 조화를 이룬다.
백선필의 스시는 화려하지 않은 대신 웅숭깊다. 값비싼 재료보다는 계절을 먼저 헤아리고 근해에서 잡히는 생선을 선호한다. 대신 재료가 가진 맛의 최대치를 끌어낼 줄 안다. 이러자면 요리사는 단 하루도 장보기를 게을리해서는 안 되며, 각각의 재료가 가진 특성을 속속들이 꿰고 있어야 한다. 요리사가 편안하면 고객이 그만큼 손해를 본다는 것이 백선필의 확고한 신념이다.
기본에 충실하고 재료의 때를 살핀 스시의 맛은 고객이 저절로 안다. 맛의 차이가 무엇으로부터 비롯되는지는 구체적으로 몰라도 아무튼 안다. '왜?'라는 의문은 고객이 아닌 요리사의 몫이다. 지난 28년 동안 백선필은 매일매일 스스로 질문하고 답해왔다.
그의 나이 45세. 지나온 시간만큼 혹은 그 이상의 세월을 여전히 스시를 쥐어야 할지도 모른다. 그래도 이 정도 한길을 걸어온 백선필에게 '스시 장인'이라 경의를 표하는 것은 그리 과한 찬사는 아닐 듯싶다.
1969년 서울 태생인 백선필은 16세 때 일식요리에 입문했고, 1991년 파라다이스호텔 부산에 입사했다. 1997년 전국일본요리경연대회 스시 부문 금상을 받았다. 2004년부터 '젠스시' 대표 겸 요리사를 맡고 있다.
박상현·맛칼럼니스트
※ 맛칼럼니스트 박상현은 1971년 경남 창원에서 태어나 1982년부터 부산에 살고 있다. 2003년부터 자료정리를 목적으로 블로그를 시작했는데, 2008년부터 5년 연속 네이버 파워블로그로 선정됐다. 2011년에는 '대한민국 100대 블로그'에 뽑혔다. 2011년부터 맛칼럼니스트로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했다. 신문·잡지 등에 다수 칼럼을 연재 중이며, 'JTBC 미각스캔들'에 고정 출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