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러진 화살'을 둘러싸고 한국 사회가 시끌벅적하다. '남부군', '하얀전쟁', '할리우드 키드의 생애'를 연출한 1990년대 사회파 감독 정지영이 13년 만에 내놓은 '부러진 화살'은 노장 감독의 성공적인 복귀작이며, 실화를 소재로 한 일련의 영화('도가니', '모비딕', '트루맛쇼', '하얀정글')와 같은 선상에 놓인 영화다.

대단한 흥행몰이를 하고 있긴 하지만 이 영화를 정지영의 최고작이라고 하기엔 전작들이 가진 영화사적 의미가 폄하되는 느낌이 없잖아 있다. 또 썩어빠진 현실을 고발하는 영화라고 보기엔 미심쩍고 헷갈리는 구석이 적잖은 소재였다. 영화를 보고나서 실제 사건의 전말을 알고 싶다는 욕구도 거기에서 비롯되었다.

이 영화를 둘러싼 담론과 실제 사건 간의 논의는 구별불가능한 방식으로 뒤섞여 어디에나 넘쳐났다. 사건 당사자인 김명호 교수가 모아놓은 재판 자료들, 공판기록, 당시 보도기사, 논평, 영화에 관한 리뷰와 인터뷰, 이 영화에 지지를 보내는 논객과 평론가의 글 및 그보다 소수이긴 하지만 비판적 견해를 담은 글, 그리고 네티즌 관객들이 남겨놓은 열정적 지지와 사법부를 향한 분노의 코멘트. 그 가운데 어느 네티즌이 남긴 댓글이 기억에 남는다. "진실을 알려면 영화관에 가라."

단언컨대 영화는 진실을 밝히는 데 적절한 매체가 아니다. 오히려 진실의 모호함을 드러내는 데에서 그 위대함을 찾아야 할 것이다. 심지어는 다큐멘터리조차 예외가 될 수 없다. 현실을 가감 없이 포착하는 기계 장치인 카메라는 그 자체로 객관성을 보증하지는 못한다. 그 카메라는 누가 드는가, 무엇을 어떤 각도로 포착하고 어떻게 편집하고 얼마의 시간 동안 재현하느냐에 따라 완벽하게 서로 다른 수많은 진실들을 도출해낸다. 객관적인 하나의 진실? 그런 것은 영화에서 불가능하다. 주관적인 관점과 해석(들)이 있을 뿐이다.

'90%가 진짜고 10%가 픽션'이라는 '부러진 화살' 또한 객관적 사실과 주관적 관점이라는 측면에서는 온전히 후자가 지배적인 영화다. 공판기록에서 그대로 따온 대사들은 재판의 후반부 재현에 초점을 둔 결과, 법을 지키지 않아 재판정에 선 피고인은 '법대로 하라'고 외치고 판사들은 '맥락 없이' 기각만을 반복한다. 게다가 부러진 화살과 피묻은 셔츠의 존재 여부가 그의 무죄를 확증하는 증거가 될 수 없다는 사실은 영화를 보는 동안 잊혀진다. 영화는 이 모순에 빠진 피고인에 대한 판단이 당신을 진보와 보수, 좌파와 우파 어느 대열에 서 있는가를 결정짓는 시험대가 될 것이라고 말하고 있었고, 급기야 나는 어찌할 바를 몰라 울상이 되고 만다.

전선을 구축하려는 강력한 의지! 정지영 감독의 그 주관적 의지는 석궁사건을 현재진행형의 현실 정치와 맞물려 격한 파열음을 내도록 배치한다. 영화에서 촌스러울 정도로 강조된 'BBK에 대통령직을 걸었다'는 신문 헤드라인과 피고인을 드레퓌스에 비유하는 최종 변론, 테러로 실행된 국민저항권은 현실 정치에서 곽노현, 정봉주, BBK, 나꼼수, '가카새끼 짬뽕'까지 아우르며 일종의 정치적 난장을 이룬다.

그리하여 '부러진 화살'에 명료하게 기입된 것은 진실이나 객관적 사실, 거기서 파생될 현실에 대한 비판 의식이라기 보다 이분법적 대립과 격앙된 감정 아닐까. 지금 '닥치고' 전선 투쟁 중인 우리 사회에는 파토스만이 가득하다.

영화평론가·부산대 영화연구소 전임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