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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굿바이 평양 |
북녘의 이야기는 슬프다. 노역과 기아를 피해 목숨을 걸고 국경을 넘는 자들, 국경지역에서 구걸을 하고 다니는 꽃제비들, 가축보다 저렴한 가격으로 중국 노인에게 팔려가는 처녀들. 마치 작가의 상상력만으로 만들어진 잔인한 드라마같다. 우리 방송에 비쳐지는 북녘의 모습이다. 남녘의 시각에서 북녘을 바라보는 시선이다. 북을 바라보는 시각은 남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가깝게는 일본과 중국이 있다. 어떤 사물이든 카메라 앵글이 달라지면 다른 면모가 촬영되듯, 일본과 중국에서 바라보는 북은 남녘에서 바라보는 북과는 다를 수밖에 없다. 북녘을 바라보는 해외동포들의 시선이 우리 영화관에 들어오고 있다. 지난 3일 개봉한 다큐멘터리 '굿바이, 평양'과 17일 극장가에 걸리는 극영화 '두만강'을 통해서다.
'굿바이, 평양'은 재일교포 양영희 감독이 촬영한 개인의 가족사다. 1971년 조총련은 만경봉호를 통해 재일교포들을 북송, 북조선 정착사업을 벌였다. 열렬 조총련 간부였던 양 감독의 아버지는 이 때 양 감독의 세 오빠를 만경봉호에 태웠다. 오사카에 남은 부모와 양 감독은 정기적으로 평양을 방문, 가족들을 만나 즐거운 한 때를 보내왔다. 영화는 이 때 촬영한 가족들의 홈비디오다. 다큐멘터리는 평양에 사는 양 감독의 조카 선화의 아양으로 시작된다. 영화가 진행되면서 선화는 조금씩 자라지만 그와 함께 북녘의 경제 상황은 점점 더 어려워진다. 북조선 소녀 선화는 지금쯤 어떻게 돼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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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만강 |
양 감독은 2006년 '디어 평양'을 통해 평양에 살고 있는 가족들의 이야기를 한 차례 대중에게 공개한 바 있다. 1995년부터 비디오 카메라를 들고 평양을 방문해 가족들의 모습을 담아온 것이다. 그러나 영화가 남쪽 영화관에서 개봉되자 북은 양 감독의 평양 방문을 불허했다. 양 감독은 이후 현재까지 평양의 가족들을 만나지 못하고 있다. 그는 "많은 이들이 이 영화를 봐줘서 평양에 살고 있는 선화와 우리 가족을 지켜주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의도와 달리 자신의 영화로 북녘의 가족들이 사회적 불이익을 받지 않을까 걱정해서다.
눈이 내린 겨울 연변, 조선족 자치주의 평범한 시골마을. 궁핍한 생활이지만 별 걱정없이 사는 마을에 우환이 생기고 있다. 바로 얼어버린 두만강을 통해 중국으로 넘어오는 조선사람들 때문이다. 장률 감독의 '두만강'은 이들 조선족 마을에 사는 한 아이의 시선을 따라간다.
북조선에 있는 동생을 먹이기 위해 정진은 두만강을 넘나든다. 배고픔에 떨고 있던 정진을 발견한 조선족 소년 창호는 동생에게 갖다주라며 먹을 거리를 구해다 준다. 창호가 대신 내건 조건은 "볼(축구) 한 번 차자"는 것뿐. 축구를 함께하며 두 소년은 격없이 친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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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굿바이 평양 |
도강이 잦아지면서 중국 공안의 감시는 강화되고 탈북자들이 식량을 훔치면서 마을인심은 흉흉해진다. 어느날 창호는 자신의 집에 숨겨준 탈북청년이 자신의 누나를 겁탈해 임신시킨 사실을 알게되고, 탈북자를 증오하다 정진마저도 매몰차게 내친다. 정진은 모욕을 받았지만 창호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걸고 또 다시 도강, 결국 공안에게 체포된다. 창호는 건물 지붕으로 올라가 공안에게 정진을 풀어달라고 요구한다.
두만강 인근에서 자란 장률 감독은 "나는 두만강 저쪽(조선)을 모른다. 그래서 내가 아는 이쪽의 이야기만 진실이 왜곡되지 않도록 찍자고 생각했다"고 말한다. 장 감독은 창호의 시선을 통해 탈북자의 현실과 이를 바라보는 조선족의 생활을 차갑고 담백하게 그려낸다. 그러나 영화를 보고 있자면 같은 조선사람들 속에서 꿈틀대는 동족의식을 확인할 수 있다. 동포들의 조국으로서 남한이 해야할 역할을 주문하고 있다.
일본인이 바라보는 것과 재일교포가 바라보는 시선, 중국 한족이 바라보는 것과 조선족이 바라보는 시선은 다르다. 한 민족을 바라보는 동포의 시야는 눈물로 어른거리기 때문이다. 두 편의 영화는 남녘 우리의 시선마저 젖게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