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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용우 기자 ywlee@kookje.co.kr |
잔인한 현실을 앞에 둔 운명적인 사랑은 늦가을 마른가지에 달린 잎새만큼이나 보잘 것 없다. 감옥으로 돌아가야 하는 여자와 낯선 이에게 쫓기는 남자가 벌이는 풋사랑은 성근만큼 간곡하고 짧은만큼 애절하다. 고요하면서도 슬픈 사랑이야기, 거장 이만희 감독의 1966년작 '만추'가 김태용 감독의 손을 거쳐 현대적인 감각으로 리메이크돼 17일 개봉했다.
새로 만들어진 '만추'는 배경을 미국 시애틀로 옮기고, 여자주인공을 중국계 미국여성으로 설정하는 등 몇가지 큰 변화를 줬다. 그러나 사랑이야기의 애절함은 옅어지지 않았다. 닫힌 마음을 여는 열쇠는 사랑뿐임을, 불안한 인생을 다잡을 지지대는 믿음뿐임을 호소력있게 그려낸다.
'만추'는 애나(탕웨이 분)의 이야기다. 탕웨이(32)가 들려주는 슬픈 사랑이야기다. 3년 전 영화 '색. 계'로 뇌쇄적인 매력을 선보인 탕웨이는 이번 영화를 통해 아시아의 스타로 발돋움할 예정이다. '색. 계'가 중국 혁명 운동을 폄훼했다는 중국 정부의 지적에 따라 탕웨이의 영화는 한시적으로 중국에 상영되지 못했다. 이후 탕웨이는 홍콩으로 이주, 해외진출을 모색해왔다. 이 때문에 '만추'는 탕웨이가 아시아권으로 자신의 영역을 넓히는 교두보라 할 수 있다.
한국영화에 참여하면서 문화적 이질감이 있지 않을까 하는 우려에 대해 탕웨이는 "감정에는 나라의 경계가 없는 것 같다. 언어나 문화를 넘어 다가갈 수 있는 것이 감정이라서 한국영화에 출연하는데 국적이 장애가 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또 "좋은 시나리오와 감독, 상대배우(현빈)가 있었고, 촬영현장의 유일한 중국인이었지만 모두가 가족처럼 맞이해줘 편안했다"며 한국 영화를 접한 소감을 밝혔다.
영화를 촬영하는 내내 남자주인공 '훈'(현빈 분)에 빠져지냈다는 탕웨이는 "훈은 굉장히 밝은 햇빛같은 존재다. 7년동안 감옥에서 얼음처럼 지낸 애나가 훈 때문에 다시 살아나게 됐다. 그런 훈을 누가 싫어할 수 있을까"라며 "훈을 너무 사랑하니까, 천사니까, 언제나 데리고 다녔으면 좋겠다"며 밝은 웃음을 지었다.
'만추'는 인물들 외에 또 하나의 주연이 있다. 바로 시애틀이다. 차가운 색상의 거친 파스텔톤처럼 그려진 아기자기한 도시에 축축하고 은은한 안개가 낀 도시다. 사람을 한정없이 우울하게 만드는 이 그림같은 도시에 마음을 열지 못하는 애나와 훈은 또 하나의 그림처럼 자연스럽게 녹아든다. 그리고 그 음울한 도시는 두 남녀의 작은 사랑을 부각시켜주는 좋은 배경이 된다.
탕웨이는 "촬영 중에 음울한 시애틀의 시장거리를 훈과 함께 밤새 달렸던 것이 가장 좋았다. 도망치기도하고 뿌리치기도 하면서 마음 속에 있는 모든 것을 떨쳐내는 장면이다. 시애틀이었기 때문에 함께 뛰는 훈의 마음이 더욱 밝은 햇살처럼 느껴졌다"고 회상했다.
'만추'에 이어 한국영화계에서 탕웨이를 부르는 러브콜이 이어지고 있다. 이에 대해 탕웨이는 "다시 한국영화를 찍게 된다면 너무 좋겠다. 각국 영화들은 국적에 따라 박제화돼서 이제 다른 나라 문화에서 다른 나라 사람들과 일하는 게 재미있고 호기심이 든다"고 말했다.
그는 "한국에 와서 한국어를 배우고 싶다"고 소망했다. 맑은 눈을 가진 탕웨이는 통역 없이 눈을 보며 이야기하길 즐겼다. 한국사람들과 한국어로 속마음을 나누고 싶어했다. 언제 진심어린 한국어로 연기하는 탕웨이를 은막에서 볼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