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로운 사람은 없다. 다만 '기는' 악당 위에 '나는' 악당이 있을 뿐이다. 하지만 영화의 끝은 희한하게도 해피엔딩이다. 영화 '뱅크잡'(감독 로저 도널드슨)은 '주인공은 정의롭다'는 명제를 과감히 내다버린 스릴러물. '뱅크잡'은 1971년 400만 파운드를 훔친 영국 최고 은행털이범들을 소재로 하고 있다. 이 영화의 재미는 단순한 은행털이가 아닌 어마어마한 비밀의 실체가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며 전개된다는 점.
영화는 런던의 한 클럽에서부터 이야기를 시작한다. 에디(마이클 집슨)의 결혼식을 하루 앞두고 고향 친구들이 한자리에 모인다. 중고차 매매상인이자 전과자인 테리(제이슨 스테이덤), 한때 모델로 활동하던 매력적인 여자 마틴(샤프론 버로우즈), 포르노 배우 데이브(대니얼 메이즈), 사진작가 케빈(스티븐 켐벨 무어) 등이 그 친구들이다. 마틴이 1주일간 영국 한 은행의 자동경보기가 멈춘다는 소식을 테리에게 알려주면서 이들의 강도짓은 시작된다. 이들의 계획은 은행 옆 가게를 빌려 지하에 구멍을 뚫고 금고에 침입하는 것. 터널 파기 전문가와 가게주인인 양복점 재단사가 일행에 합류하자 테리 일당은 계획을 실행에 옮긴다.
터널은 무사히 뚫리고 이들의 계획은 성공한 듯 보인다. 하지만 영화의 재미는 이곳에서부터 시작된다. 이들이 턴 은행금고에서 예상치 못한 물건들이 발견된다. 금고에는 정·관계 유명인사들의 성추문을 담은 사진이 있고 그중에는 영국 왕실 공주의 음란한 사진도 포함돼 있다. 또 경찰에 상납한 내역을 담은 매춘조직의 장부까지 발견된다. 이렇다 보니 테리 일당은 영국경찰에도 쫓기고 영국정보기관인 MI5에도 쫓기는 신세가 된다. 지루하던 영화 전반부는 중반부를 지나면서 긴장감이 높아진다.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는 이야기 구조 역시 흡입력이 강하다. 배우들의 사실감 있는 연기는 영화의 재미를 더한다.
이 영화의 배경이 된 1971년 실제 사건에서도 수백명의 부자들이 자신이 맡겼던 물건이 외부에 알려지는 것을 꺼려 분실품 확인절차조차 밟지 않았다. 영국 정부는 이 사건을 기밀로 분류해 2045년까지 공개를 금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