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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산 장전동 '한마음단식원' 이희일 관장이 단식할 때 필요한 장마사지를 해주고 있다. |
지난해는 몸과 마음이 무척 바빴다. 원고 청탁은 끊임없이 밀려들었고 마감 날짜에 쫓기는 마음은 늘 빚쟁이 같았다. 늦게 시작한 공부는 가장 어렵고 빡빡한 시기였으며 가을에 아들의 결혼식까지 있었으니 마치 경사가 심한 오르막을 오르는 것처럼 숨이 가빴다.
현실적인 일들이 거의 끝난 한해의 끄트머리에서 나는 체력이 소진되어 가고 있음을 느끼며 푹 쉬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새해에 들어서면서 우연찮게 '대구녹색소비자연대'에서 단식 캠프를 연다는 소문을 들었다. 단식! 시한부지만 먹는 것을 끊는다는 것은 삶을 중단하겠다는 것과 같다. 문득 그런 상태야말로 완벽한 휴식이 아닐까, 마음이 꿈틀거렸다. 지난달 5일 정오에 나는 출가하는 심정으로 집을 나섰다. 전날 저녁부터 굶은 상태라 머릿속은 음식들의 전시장과 같았다.
세상이 온통 먹자판인데 한겨울에 돈 내면서 굶겠다고 모여든 사람이 열세 명이나 되었다. 거기에 진행자와 녹색소비자 연대 간부 세 명이 동참했으니 열일곱 명이 산골 오두막에서 4박5일 동안 한솥밥이 아닌 한 솥물을 마시게 된 것이었다. 해질녘이 되어도 저녁밥 걱정하는 이가 없다는 것이 신기하고 한편 심심했다.
그러나 다음날부터는 일정이 치밀하게 짜여져 있어서 음식에 마음을 둘 겨를이 없을 정도였다. 누가 풍욕을 일러 '홀로 바람을 맞이하는 운동'이라 했던가? 새벽 어스름 속에서 맨몸으로 바람 목욕을 하고 있으면 칼날 같은 찬바람에 잠이 덜 깬 세포들이 놀라서 비명을 지르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영혼과 몸의 균형감각을 일깨우는 명상 시간에는 인간의 횡포에 몸살을 앓고 있는 지구를 바라보며 사랑의 마음을 보내는 연습을 했다.
몸 비우기 작업은 그야말로 자신과의 싸움이었다. 2ℓ의 정제된 소금물을 한꺼번에 마시고 삼십 분쯤 지나면 조금 전까지 내 몸 속에 머물러 있던 찌꺼기들이 악취를 뿜으며 쏟아져 나왔다. 물밖에 마시는 것이 없는데도 계속해서 나오는 것을 보면 이미 내 몸의 일부분으로 자리잡고 있던 것들이 분명했다.
따지고 보면 삶이란 결국 끊임없이 무언가를 섭취하고 배설하는 행위이며, 다만 먹는 것에는 온갖 욕심을 부리지만, 자신이 내놓은 유형 무형의 배설물에 대해서는 철저하게 외면하며 좀더 좋은 먹이를 획득하기 위해 저마다 치르는 과정이 다를 뿐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이틀째 되는 날부터 견디기 힘들어하는 사람이 하나 둘 생기기 시작했다. 나도 구토증과 함께 진땀이 나면서 몸이 벌벌 떨리더니 사흘 째 되는 날은 방바닥이 자석처럼 끌어당겨 자리에서 일어날 수가 없었다. 이틀 째 계속 하던 냉욕을 도저히 못하겠다고 했더니 중단하면 더 힘들어진다면서 억지로 목욕탕으로 끌고 가는 것이었다. 일행들에게 떠밀려 얼음같이 찬물 속에 들어가면서 이제 죽었구나! 했는데 거짓말처럼 기운이 돌면서 몸이 편안해졌다. 아마 그날이 고비였던 모양이었다.
그날부터 정신이 명료해지면서 보고 싶지 않은 내 모습들이 불쑥불쑥 눈앞에 나타나기 시작했다. 주먹을 불끈 쥐고 있는, 남에게 잘 보이려고 애쓰면서 정작 자신에게는 폭력적이고 무관심한 모습. 나는 저항하거나 부끄러워하지 않고 가만히 바라보았다. 저것은 진짜 내가 아니다. 본래의 내 모습이 아니다 하면서.
나흘이 지나면서부터는 굶는 것에 익숙해진 사람들의 표정이 한결 편안하고 말이 줄어들었다. 닷새째 되는 날, 정말 단식은 지금부터라며 보식 기간의 중요함을 일깨우는 강의를 마지막으로 묽게 끓인 미음을 한 그릇씩 선물로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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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금란씨 |
집으로 돌아온 지 한 달이 지난 지금, 식탐에서 어느 정도 벗어난 탓인지 체중이 3㎏ 줄었고 마음은 그 몇 배쯤 가벼워졌다. 쉬고 싶다는 열망 하나로 계산 없이 감행한 단식이지만 내 삶에 여러 가지 변화가 왔다. 몸이 함께 하지 않는 공부는 관념에 머물기 쉽고 힘겨운 과정을 통과한 뒤에는 반드시 그에 상응하는 보상과 기쁨이 주어진다는 사실을 안 것도 단식 끝에 얻은 선물이다.
글 = 박창희기자 chpark@kookje.co.kr
사진 = 김성효기자 kimsh@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