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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83년 6월 민주화를 요구하며 단식에 들어갔던 김영삼 전 대통령을 가족들이 걱정스럽게 바라보고 있다. |
단식은 경우에 따라 위력적인 투쟁수단이 되기도 한다. 최근 천성산을 지키기 위한 지율스님의 100일 단식투쟁이 사회에 미친 파장을 보면 그 위력이 실감난다. 이처럼 단식은 강자에 대한 약자의 저항수단으로 빈번하게 사용돼왔다.
인도의 민족지도자 간디는 단식을 거의 생활화하다시피 했다. 간디는 비폭력 독립투쟁으로 총 17회에 걸쳐 단식을 했는데, 한번에 평균 3주 동안 음식을 끊었다. 특히 간디가 단식에 들어가면 인도의 모든 도시가 야간에 전등을 끄는 것으로 그에게 동조했다고 한다.
우리 역사 속 사례로는 면암(勉庵) 최익현(崔益鉉)의 항일 단식투쟁을 빼놓을 수 없다. 1906년 면암은 74세의 고령에 의병을 일으켰다가 일제에 붙잡혀 대마도에 갇히자 "원수의 밥으로 연명하랴"며 곡기를 끊고 순국했다.
조국독립과 단식의 이야기는 또 있다. 1920년 아일랜드 독립군사령관이자 국회의원이었던 테렌스 맥스위니는 반란죄로 영국군에 체포되자 감옥에서 단식으로 저항했다. 그는 로마교황을 비롯, 전세계 지식인들의 석방탄원을 받으면서 74일간의 단식끝에 마침내 사망했다. 그의 죽음이 헛되지 않아 그 이듬해 아일랜드는 영국으로부터 독립을 쟁취했다.
국내 정치사에 있어선 김영삼 전 대통령의 단식이 강한 인상을 남겼다. 그는 전두환 정권하에 있던 1983년 5월 18일 상도동 자택 연금상태에서 정부의 언론통제 해제, 정치범의 석방 등 민주화 5개항을 요구하며 23일간 단식했다. 이 단식 투쟁은 국민의 저항의식을 일깨우면서 민주세력으로 하여금 군부정권에 대항하는 행동을 조직화하는 계기가 됐다.
김대중 전 대통령도 1990년 10월 당시 평민당사에서 정권의 내각제 개헌 의도와 지방선거 연기 계획에 반발, 지방자치제 실시와 내각제 음모 포기, 보안사·안기부 등 정치사찰 중지, 민생문제 해결 등 4가지 슬로건을 걸고 8일 동안 단식농성을 벌였다.
하지만 전두환 전 대통령은 김영삼 정부 시절 역사 바로세우기라는 명분으로 12·12군사 쿠데타와 광주 민주화 운동 유혈 진압 책임자 규명, 처벌 방침에 따라서 자신이 구속수감되자 강하게 반발하면서 교도소에서 단식 농성을 벌여 오히려 국민들의 빈축을 샀다.
이밖에 군사정권 시절 시국문제를 놓고 종교인과 지식인들은 저항의 마지막 수단으로 종종 단식에 돌입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