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와 스페인에서 암각화를 공부하고 돌아와 이화여대에서 강의중인 박영희 교수는 “유럽의 암각화 유적지 어느 곳에서도 차를 타고 볼 수 있는 곳이 없다”며 “보통 3~4시간을 걸어서 보도록 하고 있다”고 말했다.
박 교수는 “선진외국에서는 암각화 자체는 물론 그 주변을 함께 보존하는 것이 상식으로 통하고 있다”며 “울산시가 반구대 암각화 1㎞앞까지 왕복 2차선의 진입도로를 내려는 것은 한마디로 암각화 유적에 대한 무지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며 즉각 철회를 요구했다.
박 교수는 또 “이미 반구대 암각화 보존대책을 유네스코에 요구한 상태”라며 “암각화 분야의 세계적인 권위자들이 참가한 가운데 과연 반구대 관광자원화 사업이 타당한지에 대한 현장조사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프랑스 몽벨리에 제 3대학(MontpellierⅢ) 인류학 대학원 석사를 마치고 니스(Nice)대학에서 박사과정(DEA)을 밟고 있는 이상목씨는 지난 13일 프랑스로 출국하면서 “세계 최대 규모인 프랑스의 몽베고(Mont-Bego) 암각화 유적은 여름철에만 극히 제한적으로 접근이 허용되고 있다”고 말했다.그는 프랑스 남부의 국제 휴양도시인 니스에서 북쪽으로 80㎞에 있는 몽베고 암각화 유적은 현재 유네스코(UNESCO)의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돼 있는데 3~4시간을 걸어가야만 볼 수 있다고 말했다.여름철에만 외부인에게 개방되며 반드시 현지 안내인과 동행을 해야하는데 대부분의 지역이 ‘일반인 통제구역(Zon Archeologique)’이어서 유적을 직접 볼 수 있는 기회는 극히 제한돼 있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만약 탐방 도중에 일반인이 통제구역으로 들어가거나 돌·풀 등을 만지게 되면 안내인이 즉시 이를 제지하고 돌려보낼 정도로 엄격히 보존되고 있다.그는 이 곳에 관광객이 몰리자 땅드(Tend)시가 유적보존을 위해 지난 92년 유적으로 부터 30㎞이상 떨어진 시내에 박물관을 지어 모형물을 전시하고, 시민들이 유적안내와 박물관 행정업무 숙박시설 등을 맡도록 하고 있는 사실을 울산시가 알아야 한다고 충고했다.
몽고와 러시아 등 동북아 지역의 암각화를 연구한 송화섭(원광대) 교수는 “이들지역의 암각화는 현지인들이 아직도 신성시하는 신앙의 대상이기 때문에 거의 완벽하게 보존되고 있다”며 “70년대식 개발논리로 반구대 암각화 관광자원화 사업을 추진하는 것은 선진외국은 물론 후진국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일”이라고 비난했다.
러시아 남부의 애니세이강과 아무르강 유역의 암각화들은 원래의 자연환경과 더불어 원주민들의 보호아래 가장 완벽하게 보존되고 있다고 말했다.
미국의 암각화를 연구한 임세권(안동대) 교수는 “캘리포니아 동북부 사막지대에 있는 대표적 암각화 유적지인 ‘리틀 피에트로글리프 캐년’, 캘리포니아 북부의 ‘비숍 피에트로글리프 루프’ 등은 아예 진입도로라는 것이 없다”고 밝혔다.
이는 암각화 유적과 관광지를 격리하는 것으로 미국은 물론 프랑스 이태리 등 선진외국의 공통적인 암각화 유적 관리방식이라는 설명이다.
미국의 경우 국토관리국(Bureau of Land Management)이 암각화를 관리하는데 암각화는 물론 암각화 주변의 돌과 야생동식물 원주민들까지 보존의 대상에 포함시키고 있으며 이를 어길때는 엄한 처벌을 받는다고 임 교수는 밝혔다.리틀 피에르글리프 캐년의 경우 암각화 유적에서 150㎞ 떨어진 마츄랭고 박물관에서 관람허가를 받아야 하는데 봄과 가을에 한해 토·일요일만 허용된다.
뿐만아니라 하루 관람객도 50명(차량은 20대)으로 제한되고 비포장길을 1시간 반정도 달린 뒤 다시 걸어서 1시간 정도를 가야 암각화를 볼 수 있도록 돼있다.
임 교수는 “유명한 관광도시인 비숍에 있는 피에트로글리프 루프 암각화는 정부가 암각화는 물론 암각화에 붙은 이끼, 미생물까지도 보호의 가치가 있다는 이유로 아예 진입도로를 내지 않았다”며 “울산시의 반구대 암각화 관광자원화 사업은 즉시 중단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 울산 / 손균근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