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유선미 해운대백병원 가정의학과 교수가 환자를 진료하고 있다. 해운대백병원 제공 |
- 비만 치료제 등으로 체중 줄여도
- 잠시 긴장 풀면 원래대로 돌아가
- 지방세포 ‘비만’ 유전자 기억 탓
- 꾸준한 운동·규칙적 식사 중요
“더는 내 의지를 못 믿겠어요.” 스스로를 ‘프로 다이어터’로 부르는 환자가 말했다. 20여 년간 해보지 않은 다이어트가 없고, 좋다는 비만 치료제는 다 써보았다고 했다. 그때마다 체중을 10㎏ 안팎 줄일 수 있었다. 하지만 문제는 늘 그 다음이었다. 잠시 긴장을 풀면 체중은 풍선처럼 다시 늘어나곤 했다.
우리 몸은 왜 이토록 집요하게 지방을 되찾으려 할까. 5년이 지나면 줄어든 체중이 다시 증가한다. 요즘 많이 쓰는 GLP-1계열 주사제도 마찬가지다. 약을 끊으면 1년 뒤 줄었던 체중의 60%가 다시 증가하고, 감량 후 좋아졌던 혈압, 콜레스테롤, 지방간 같은 합병증도 처음 수준으로 돌아간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이유는 우리 몸에 있다.
첫 번째는 몸이 체중감량을 ‘위기’로 받아들인 결과다. 체중을 감량하는 동안 우리 몸에는 복잡한 호르몬 시스템의 변화가 일어나 에너지를 아껴 쓰는 쪽으로 바뀐다. 적은 에너지로 숨 쉬고, 움직이고, 운동을 한다. 문제는 이 변화가 생각보다 크고 오래 지속한다는 점이다. 그러함에도 이는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정상적인 생존 반응이다.
다른 이유도 있다. 우리는 먹고 마시는 즐거움 때문에 먹기도 한다. 맛있는 음식은 뇌의 쾌락중추를 자극해 기분을 좋게 만드는 도파민을 분비한다. 그러니 이 즐거움을 억누르기는 쉽지 않다. 이에 더해 지방세포가 과거를 기억한다는 연구도 있다. 동물실험에 의하면 한 번 비대해졌던 지방세포는 비만이던 시절 유전자 수준의 흔적을 기억처럼 간직하다가, 식사량이 늘면 빠르게 다시 비대해진다. 이렇게 우리 몸은 호르몬과 마음, 그리고 세포에 걸쳐 여러 겹의 방어선을 친다. 잃어버린 지방을 되찾으려는 끈질기고 필사적인 반응이다.
방어선이 여러 겹이니, 대책도 여러 겹이어야 한다. 체중을 잘 줄이는 것이 예선이라면, 이제부터 본선이다. 감량할 때처럼 가장 중요한 것은 식사다. 단순히 적게 먹는 것이 아니라, 충분한 단백질과 영양 균형이 잡힌 양질의 식사를 하는 것이 핵심이다. 이런 식사를 하면 포만감이 오래 가고 근육을 유지하여 기초대사량을 방어할 뿐만 아니라 비만에 관련된 체내 염증도 줄여 준다. 아침을 챙겨 먹고, 야식은 피하고, 튀긴 음식이나 정제된 탄수화물, 음료수 섭취를 줄이자. 미국 체중조절등록연구(NWCR)에서 많이 감량하고 오래 유지한 사람들에게는 공통점이 있었다. 정기적으로 체중을 재고, 매일 한 시간 이상 꾸준히 운동하고, 늘 비슷한 식사를 했다는 점이다.
약의 도움으로 체중을 줄였다고 끝이 아니다. 원하는 만큼 뺐다고 약을 갑자기 끊으면 그동안의 노력이 물거품이 될 수 있다. 기대만큼 효과가 없다고 약을 중단해도 마찬가지다. 고혈압 약을 먹어 혈압이 잘 조절되던 사람이 약을 중단하면 다시 혈압이 올라가는 것처럼, 비만 치료제를 중단한 사람도 체중이 다시 증가한다. 특히 예전에 체중 재증가를 경험한 적이 있거나, 비만 관련 질병이 있거나, 생활습관 조절이 잘 되지 않은 사람들은 그 위험도가 더 크다.
우리 몸은 잃어버린 체중을 기억하고 회복하려고 한다. 하지만 그 기억을 이겨내는 방법도 우리는 조금씩 배워가고 있다. 효과 좋은 약들이 계속 나오고, 수술이라는 선택지도 있다. 조기 진단과 좋은 항암제 덕분에 암 생존율이 크게 높아졌듯이 비만 치료법은 앞으로 계속 발전할 것이다. 그러니 너무 자책하지 않아도 된다. 이것은 의지의 싸움이 아니라 이해하고 함께 관리하는 과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