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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순기 양산부산대병원 신경외과 교수가 환자와 상담하고 있다. 양산부산대병원 제공 |
- 호르몬 ‘프로락틴’ 분비 과다
- 약물 치료 예후 매우 좋은 편
- 시력저하 땐 코로 내시경 수술
“임신한 것도 아닌데 가슴에서 젖이 나오고, 생리가 몇 달째 나오지 않아요.”
진료실을 찾는 20, 30대 여성 환자 중 상당수가 이런 당혹스러운 증상을 호소하곤 한다. 산부인과를 찾아가도 자궁이나 난소에는 특별한 이상이 없다며 신경외과 진료를 권유받아 당황스러운 마음으로 발걸음을 옮긴 경우다. 이처럼 비정상적인 유즙 분비와 무월경, 생리불순을 유발하는 상태를 의학 용어로 ‘고프로락틴혈증(Hyperprolactinemia)’으로 부른다.
프로락틴(Prolactin)은 본래 출산 후 모유 수유를 돕는 유즙분비 호르몬이다. 평소에는 뇌에서 분비되는 신경전달물질인 도파민에 의해 철저하게 억제되어 낮은 수치를 유지한다. 그런데 어떤 이유로든 뇌 안의 도파민 작용이 방해를 받으면 이 억제 고리가 풀리면서 프로락틴 분비가 비정상적으로 치솟게 된다.
고프로락틴혈증이 의심될 때 진료실에서 가장 먼저 확인하는 것은 환자의 ‘약물 복용력’이다. 우리가 일상에서 흔히 접하는 소화제, 위염약 등 위장관 운동 조절제나 우울증·수면장애 치료 등에 쓰이는 일부 정신건강의학과 약물이 도파민 수용체를 차단하는 기전을 지녔기 때문이다. 만약 이러한 약물 부작용 때문이라면, 주치의와 상의해 원인 약물을 조절하거나 중단하는 것만으로도 증상은 쉽게 호전된다.
하지만 최근 복용한 약물이 없는데도 프로락틴 수치가 정상치보다 수십 배 높다면 원인은 뇌 안에 있을 확률이 크다. 바로 ‘뇌하수체 선종(Pituitary Adenoma)’이다.
뇌하수체는 우리 뇌의 정중앙 깊숙한 곳에 있는 콩알만 한 크기의 기관으로, 우리 몸의 다양한 호르몬 분비를 조절하는 ‘내분비 관제탑’ 역할을 한다. 이곳에 비정상적인 세포가 증식해 혹이 생기는 것을 뇌하수체 선종이라 하는데, 그 중에서도 프로락틴을 과다 분비하는 ‘프로락틴 선종’이 20, 30대 가임기 여성에 비교적 흔하게 발견된다.
‘뇌종양’이라는 진단명을 듣는 순간, 젊은 환자들은 겁부터 내며 눈물을 쏟기 일쑤다. 하지만 이 종양은 우리가 흔히 아는 무서운 악성 뇌암과는 전혀 다르다. 치료 예후 역시 매우 좋은 ‘착한 양성 종양’이다. 다른 장기로 전이되지 않으며 성장 속도도 매우 느리다.
무엇보다 프로락틴 선종은 놀랍게도 ‘수술’이 아닌 ‘약물 치료’가 일차적인 표준 치료법이다. 억제되어 있던 도파민의 역할을 대신하는 ‘도파민 작용제’를 꾸준히 복용하기만 해도 호르몬 수치가 정상화되고 종양의 크기가 눈에 띄게 줄어든다.
물론 종양의 크기가 너무 커져서 뇌하수체 바로 위를 지나는 시신경을 압박해 시력 저하 또는 시야 결손(시야 양쪽 끝이 까맣게 안 보이는 현상)을 유발하거나, 약물 치료에 반응하지 않는 특수한 경우에는 수술적 치료가 필요하다. 그러나 이마저도 과거처럼 두개골을 여는 방식이 아니다. 콧구멍을 통해 내시경과 미세 수술 기구를 넣어 흉터 없이 종양만 정교하게 제거하는 ‘내시경적 경접형동 수술’이 보편화되어 있다.
몸이 보내는 신호는 때론 예상치 못한 곳에서 질환의 중요한 실마리를 제공한다. 설명할 수 없는 지속적인 무월경이나 유즙 분비가 있다면, 이는 뇌하수체가 보내는 간절한 구조 신호일 수 있다. ‘뇌종양’이라는 ‘무게’에 짓눌려 두려워하거나 피하지 않기를 바란다. 신경외과 전문의를 찾아 정확한 원인을 찾고 자신에게 맞는 치료를 시작한다면, 건강하고 평범한 일상을 되찾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