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왜 혈액종양내과에 왔나요? 저는 혈액암이 아니라 OO암인데….” 환자분들로부터 이런 얘기를 간혹 듣는다. ‘혈액종양내과’는 백혈병·림프종 같은 악성혈액질환부터 빈혈 같은 양성혈액질환까지 혈액 관련 질환을 다루는 혈액내과와 일반 ‘암‘인 고형암에 대해 치료하는 종양내과를 합친 것이다.
의사에 따라 두 분야를 다 맡거나 하나만 담당하기도 한다. 필자는 주로 고형암 환자를 진료하고 있다.
종양내과에서는 수술 후 재발방지를 위해 보조적 항암치료를 받는 환자도 있지만, ‘전이’나 재발로 인해 고식적 항암치료를 받는 사람이 더 많다. 이 치료는 대부분 완치가 어렵고 오랫동안 받아야 한다. 그 때문에 치료를 회의적으로 생각하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럴 때마다 속상하고 안타깝다.
얼마전 ‘드라마’ 기사에서 전이 암을 진단받은 주인공이 “남은 시간을 병실에만 있다가 죽고 싶지 않다”며 항암치료를 포기하는 내용을 봤다. 많은 드라마나 영화에서는 항암치료 포기를 용기있는 것으로 표현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포기하지 않고 암과 싸우고 있는 환자들이 얼마나 용감하고 멋진지에 대해서는 별로 다루지 않는 것 같다. 항암치료를 받는다고 해서 병실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병실에서도 삶이 있고 그 삶도 의미가 있고 아름답다.
많은 환자 중에서 첫째 아이를 낳은 젊은 여성이 있었다. 대장암이었던 그는 첫 진료 때 “아이 돌잔치까지는 살고 싶다”며 한참 울었다. 치료를 받다가 몇 년 후 돌아가셨지만, 한복을 곱게 입고 아들과 활짝 웃고 있는 돌잔치 사진을 잊을 수가 없다. 투병과정이 힘들었지만 아이와 함께 지낸 몇 년은 그 분에게 소중한 시간이었을 것이다.
따님의 한 번뿐인 결혼식에서 따님과 함께 꼭 입장하고 싶다던 어느 환자분과는 머리를 맞대고 ‘아이디어’를 짰다. 결혼식 날과 항암치료 일정을 조율하는 것 외에도 환자가 힘낼 수 있도록 영양제를 드리고 피곤하지 않게 동선도 정했다. 그 과정에서 환자분의 딸·사위 자랑을 참 많이 들었다.
전이성 위암인 어느 환자분은 항암치료 초기에 효과가 좋았지만 1년 후 내성이 생겨 다른 약제로 바꿨는데, 다시 내성이 발생해 약제 변경을 반복했다. 암이 커지고 악화하면서 토혈이 생기고 복통도 일어났다. 더는 효과적인 약제가 없어 치료를 중단해야 될 상황이었다. 그때 마침 신약이 출시됐다. 그 약제로 치료받은 후로는 많이 좋아져 5년째 만나고 있다. 몇 년 전 회사를 퇴직한 그는 농부로 새 인생을 살고 있다.
의학은 계속 진화 중이다. 특히 암 치료는 하루가 다르게 발전하고 있다. 드물지만 필자의 환자분처럼 새로운 기회가 오는 경우도 있다.
암과의 전쟁에서 암과 싸우는 사람은 환자이다. 종양내과 의사는 조력자이자 전술가와도 같다. 지도를 펴서 위치를 확인하고 적의 약점을 분석해서 어떤 무기로 어떻게 싸우는 것이 유리한지 세밀한 전략을 짜서 알려준다. 또한 목이 마를 때에는 물병을 건네고, 마음이 힘들 때에는 손을 맞잡아준다. 나는 오늘도 나의 ‘전사’들을 만나러 간다. 위대한 전사들과 함께할 수 있어 더없이 영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