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하는 부산 4*** 확진자 접촉(4월 13일 금정구 부산대학교)으로, 4월 27일 낮 12시까지 자가격리 대상자입니다. 자가격리 공무원은 관할 구에서 지정될 예정입니다.” 지난달 중순께 나는 연제구 보건소로부터 이런 문자를 받았다. 곧장 이틀간의 행적을 되짚었다. 경찰서 2곳과 구청 3곳, 부산지법에서 만난 사람들 얼굴을 떠올리며 가슴이 철렁했다. “연락을 해줘야 하나? 아직 확진을 받은 건 아닌데.” 임신한 아내와 4살 난 아들이 있는 집에서 자가격리하는 게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데도 생각이 미쳤다.

　보건소 직원과 통화하면서 자가격리를 시작할 장소를 결정할 수 있다는 걸 알게 됐다. 꼭 거주하는 자택일 필요는 없다는 거였다. 생각나는 사람, 비빌 언덕으로 떠오르는 건 부모님뿐이었다. 확진 여부를 알 수 없는 시점이어서 망설여졌다. 만약 내가 감염됐다면 부모님 집으로 가는 건 새로운 접촉자를 늘리는 짓이다. 확진이라는 결과가 나오면 부모님도 자가격리돼야 했다. 그래도 전화를 걸었다. 엄마는 크게 놀라면서도 단호하게 말했다. “꼭 필요한 것만 챙겨서 당장 집으로 와. 다른 건 다 엄마가 해결해줄게.”

　본가의 맨 구석 화장실이 딸린 방에서의 자가격리는 그렇게 시작됐다. 결혼한 지 5년 만에 부모님 집에 그렇게 오래 머무르긴 처음인데, 얼굴을 마주하지 못하는 기묘한 동거였다. 설거지도 못해주는 삼식이 새끼를 거두게 된 엄마는 매 끼니 밥상을 방문 앞에 놔주는 것으로 오랜만에 ‘육아 활동’을 재개했다.

　방역 지침상 접촉자의 접촉자는 일상에 아무런 제약을 받지 않는다. 그런데 엄마는 음성 결과가 확인된 뒤에도 외출을 극도로 자제했다. 내가 기울이는 것 이상의 주의를 엄마가 기울였다. 그렇게 2주를 보살펴준 엄마와 제대로 이야기를 나눈 건 격리가 해제된 뒤 30분 정도였다. 미안하고 고마운 마음을 서툴게 주워삼기는 서른 다섯 살짜리 아들에게 엄마는 “고마운 시간이었다”고 말했다. 구석방에 갇혀있으나마 내가 집에 있고, 보살펴 줄 수 있는 게 좋았다고 했다.

　엄마는 내가 격리에서 놓여난 지 얼마 안 돼 입원했다. 본래 다리가 편치 않아 몇 차례 수술을 받았다. 이번에는 연골이 상했다고 한다. 격리된 나를 챙기느라 무리가 간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지금도 떨치기 어렵다. 내가 중1이던 여름방학에도 엄마는 부산 성분도 병원에서 수술을 받고 입원했다. 그때 나는 병원에 상주했다. 걸을 수 없는 엄마가 요의를 느끼면 업어다 화장실에 앉혀주고, 다시 침대로 데려오는 게 가장 큰 임무였다. 고작 일주일 정도로 기억하는데, 엄마는 두고두고 그때 내게 미안하고 고마웠다고 말한다.

　그런데 나는 그때 행복했다. 100원을 넣으면 고작 4분간 시청할 수 있는 낡은 로터리식 TV를 아껴가며 만화를 봤고, 커튼을 뚫은 햇살에 반투명한 초록색으로 뒤덮이던 병실 바닥을 가만히 내려보다 낮잠에 들기도 했다. 무엇보다, 엄마는 그 수술을 받은 뒤 다리가 튼튼해져 일상에 아무런 불편을 겪지 않았다.

　엄마의 입원은 그때로부터 21년 만이다. 직장에서 가까운데도 나는 고작 사흘에 한 번 정도나 병실을 찾는다. 팥죽과 녹두죽을 둘 다 먹고 싶은데 양이 너무 많다고 걱정하기에, 두 그릇을 사서 나눠 먹자고 했더니 손뼉을 치며 좋아했다. 그래놓고도 막상 죽을 뜨면서는 “나 때문에 괜히 네가 점심에 죽을 먹는다”고 걱정했다.

　오늘 엄마가 퇴원한다. 수술보다는 입원을 통한 집중관리와 생활치료가 더 나은 방법이라는 게 의사 처방이다. 21년 전 엄마 다리를 수술해줬던 것과 같은 의사다. 그 판단이 이번에도 유효하길 기도한다. 아직 엄마랑 못 걸어본 곳이 너무 많다. 김민주 기자 min87@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