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는 곶감을 먹으면 일시적으로 변비가 생겨 고생하는 일이 종종 있다. 이번에도 명절 선물로 받은 곶감을 먹고 사흘째 변을 보지 못해 속이 갑갑하고 식욕마저 떨어졌던 경험이 있다. 위·대장을 전문으로 하는 소화기내과를 전공한 사람이 본인의 변비도 쉽게 해결하지 못하는 약간은 우스운 상황 속에서, 유산균 요구르트도 먹어보고 달리기도 해보고 쾌변을 위해 노력했다.
그러던 중 오전 외래를 본 후 내시경실에 출근했더니, 응급실을 통해 내원한 37세의 여성 환자를 만나게 되었다. 환자는 5년 전 둘째를 출산한 뒤부터 간혹 변비 및 소화불량이 있었다. 변비가 발생하면 약을 먹거나 근처 병원을 방문하여 관장을 하면 변비가 호전됐다고 한다.
그런데 이번에는 병원에 오기 2주 전부터 배꼽 주변으로 통증을 느끼고 변을 보지 못해 응급실까지 왔다. 변을 2주간 보지 못하였으니, 2주간 식사도 거의 제대로 하지 못한 상태였다. 복부 CT상엔 엄청난 크기의 변이 배 한쪽을 메우고 있었다.
의사로 일한 지 10년, 이제껏 보았던 CT 중 가장 충격적이었다. 내시경을 받기 전 환자의 배를 촉진해보니, CT와 거의 동일하게 딱딱한 변이 배위로 만져졌다. 식은땀이 흘렀다. 비단 당시 필자가 변비로 배가 아프고 속이 갑갑해서 그런 것은 아니었다. 자칫 장벽이 견디지 못하고 터진다면 응급 수술을 해야 할 상황이었다. “오늘 반드시 내가 이 변을 해결하고야 말리라!”
앞선 2번의 내시경 시도에도 변이 해결되지 않았다는 말을 듣고, 심기일전하여 내시경 기계를 환자의 직장으로 삽입했다. 들어간 지 얼마 되지 않아 S상 결장에서 관강을 가득 채운 돌덩어리 같은 변이 보였다.
물을 쏘고 포셉(집게 같이 생긴 내시경 기구)으로 뜯어내고 스네어(올가미 같이 생긴 내시경 기구)로 잘라내어도 꿈적하지 않았다. 하지만 포기하지 않고 반복적인 작업을 하니 2시간 여만에 변이 조금씩 파괴되기 시작했다. 이후 3시간이 경과하였고, 환자도 나도 기진맥진한 상태였다.
그러다 2시간이 넘는 검사 중에 음식물 덩어리가 뭉쳐진 위석을 내시경을 통해 탄산음료를 넣어 해결했던 경우가 떠올랐다. 변도 결국 음식물 덩어리가 아니겠는가! 탄산음료를 내시경을 통해 대장에 1ℓ 정도 주입했다. 남은 변들은 여전히 많았지만, 탄산음료를 뿌렸으니 나올 수도 있겠다 싶어 내시경을 제거했다. 환자는 여전히 배가 아프다고 했지만 내시경이 끝나자마자 화장실로 달려갔다. 긴장이 풀리며 필자도 화장실로 달려갔다. 다음 날 아침, 복부 X-레이를 확인하니 놀랍게도 그 많던 변이 모두 빠져나오고 없었다. 위대한 탄산의 힘이여. 2시간이 넘도록 포기하지 않았던 내시경 시술과 탄산음료는 환자가 설날 전에 쾌변과 함께 퇴원할 수 있게 만들었다. 물론 필자도 탄산 덕분으로 일시적인 변비를 해결했다.
내시경을 하다 보면 기계적으로 검사를 하는 것이 일상다반사지만 참으로 신기한 경우도 있고, 환자의 어려움을 해결하는 뿌듯한 경우도 가끔 있다. 이런 소소한 사건들이 힘들고 어려운 길에도 우리를 환자 앞에 다시 서게 하는 진정한 원동력이 아니겠는가.
권혜정·고신대병원 소화기내과 임상조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