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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정룡 부산체육지도자협의회 회장이 올해 부산시 문화상의 체육부문 수상 소감을 얘기하고 있다. 전민철 프리랜서 |
- 선수 이어 동아대 감독 역임
- 퇴직 후 24년간 지도자협회장
- "지역 선수층 빈약 안타까워"
- 몽골과 문화체육 교류도 앞장
레슬링의 양정모(한국 사상 첫 올림픽 금메달) 손갑도(1984LA올림픽 동메달) 김영구·이삼성(1986아시안게임 금메달).
(사)부산체육지도자협의회 오정룡(70) 회장이 길러낸 제자들이다. 그 또한 1967년 인도 뉴델리 세계선수권 52㎏급에서 동메달을 따냈다. 8년간 선수생활에 이어 동아대 레슬링 감독으로 33년간 봉직한 그는 선수들을 숱하게 배출했다. 부산 레슬링의 전설인 셈이다.
그는 감독 퇴직 후 1991년부터 24년간 지도자협의회장으로 부산 체육발전에 기여해 오고 있다. 협의회 형편이 열악한 가운데서도 그동안 우수 선수 177명에게 장학금을 지급했고, 연말마다 지도자상을 시행하고 있다. 지금까지 수상 인원은 146명, 지원금은 총 1억8300만 원에 이른다.
오 회장은 이런 공로를 인정받아 지난 19일 부산시 문화상 시상식에서 체육 부문 수상의 영예를 안았다. 그는 "수상 연락을 받고 아내(65)와 선수 시절 스승인 김충기(81) 사범님의 얼굴이 떠올랐다"고 말했다. 그는 선수·감독 때 국내외 대회 출전, 훈련 등으로 집을 비우는 일이 태반이었다. 이 때문에 아내가 자녀 세 명을 키우느라 고생이 많았다고 한다. 또 1963년 전국체전에 첫 출전할 때 체중 감량의 고통이 심했는데 김 사범님의 효과적인 지도로 잘 극복했다는 것이다. 오 회장은 1963~65년 전국체전에서 3회 연속 정상에 올랐다.
그와 불가분인 사람이 양정모다. 오 회장은 "1971년 정모를 동아대에 스카우트했는데, 그해 세계주니어대회 2위를 할 만큼 기량이 뛰어났다. 그런데 2학년 때 갑자기 운동을 그만두겠다며 6개월간 나오지 않아 애를 먹었다"고 회상했다. 그의 설득 끝에 복귀한 양정모는 4학년 때인 1974년 아시안게임(AG)과 1976년 몬트리올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당시 정모는 대전 조폐공사 소속이었는데, 그의 올림픽 금메달 환영식을 놓고 부산과 대전이 서로 먼저 하겠다며 다퉜다. 결국, 정모와 그의 부모님은 고향 부산을 택했다"고 오 회장은 술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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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 회장이 1967년 세계레슬링선수권(위)에서 경기하는 모습과 1964년 전국체전에서의 승리 장면. |
그는 1974년 AG와 1976년 올림픽 결승에서 양정모에게 졌던 몽골의 레슬링 영웅 오이도프(세계선수권 금메달 3개 획득)와도 인연을 이어가고 있다. 오 회장이 1990년 몽골 아시아선수권에 대표팀 감독으로 갔을 때 심판이었던 오이도프 일행과 우연히 만나던 중 양정모 얘기가 나오면서 금방 친해졌다고 한다. 오 회장은 이를 계기로 오이도프의 딸을 부산에 초청해 대학 공부를 시켰고, 2000년 이후 한국·몽골문화체육협의회 회장직을 겸하고 있다. 이 단체는 해마다 한국의 몽골 근로자와 다문화가족 등을 대상으로 친선행사를 가진다.
오 회장은 부산 레슬링에 대해 "중학교팀이 빈약하다 보니 고교팀도 약한 것 같다. 실업팀도 낮은 연봉 때문에 좋은 선수를 수급할 수 없는 게 안타깝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레슬링 같은 비인기 종목에도 관심을 가져줄 것을 거듭 당부했다.
◇ 오정룡 프로필
-1944년 2월 9일생. 부산 광성고, 동아대 줄업
-1963~1965년 전국체전 레슬링 52㎏급 3회 연속 우승
-1967년 인도 뉴델리 세계선수권 동메달
-1968년 대한민국 체육상, 대한체육회 최우수선수상
-1969년 전국체전 금메달
-1970~2003년 동아대 레슬링 감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