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 경기의 백미는 바람을 가르는 시원한 골이다. 번개 같은 속도로 상대의 골문으로 향하는 중거리 슛이나 수비 서너 명을 한 번에 제친 뒤 골키퍼가 손을 쓸 수 없게끔 골대 한 편으로 찔러 넣는 절묘한 슛은 관중들을 흥분의 도가니로 몰아 넣는다. 태극전사들이 7차례 참가한 월드컵에서 기록한 골은 모두 22개. 지금까지 본선에서 24경기를 치른 점을 감안하면 1경기당 1골 가까이 넣었다는 계산이 나온다. 하나 같이 가치를 매길 수 없는 귀중한 것들이었다. 선수들이 그동안 피땀으로 만들어냈던 골을 되짚어 본다.
■한국 축구사를 새로 쓴 박창선
 |
| 박지성 |
한국의 월드컵 사상 첫 골은 1986년 멕시코 대회에서 나왔다. 6월 2일 아르헨티나를 만난 한국은 전반에만 3골을 먹으며 0-3으로 끌려갔다. 승리는 고사하고 영패를 면하기 어려웠던 상황이던 후반 28분, 마침내 한 선수의 발끝에서 감격스러운 골이 터졌다. 당시 32살의 노장 미드필더 박창선이 최순호의 패스를 받아 기습적인 25m짜리 중거리 슛으로 철벽 같던 아르헨티나의 골문을 활짝 열었다. 1954년 스위스 대회에서 헝가리에 0-9, 터키에 0-7로 패한 이후 32년 만에 출전한 월드컵에서 이룬 기념비적인 쾌거였다.
2호 골은 1982년 멕시코 청소년 월드컵 4강 신화의 주역이던 김종부가 기록했다. 김종부는 2차전 상대인 불가리아와의 경기에서 0-1로 뒤지던 후반 26분 터닝슛으로 동점골을 터뜨렸다. 한국은 이어 벌어진 이탈리아전에서 후반 17분 최순호, 후반 44분 허정무가 각각 득점에 성공했다.
1990년 이탈리아 월드컵은 3전 전패라는 성적에 걸맞게 골에서도 흉작이었다. 한국은 단 한 골만을 넣었다. 조별리그 두 번째 경기였던 스페인전, 0-1로 뒤지던 전반 42분 한국에게 프리킥 기회가 왔다. 골대와의 거리는 25m. 황보관이 엄청나게 빠른 프리킥을 날렸고 공은 그림 같이 스페인 골문으로 빨려 들어갔다. 시속 114㎞의 속도였다. 황보관의 이 골은 각종 축구기관이 선정하는 베스트골에 항상 포함될 정도로 인상적이었다.
■리베로 홍명보의 등장
 |
| 이청용 |
1994년 미국 월드컵 당시 홍명보는 20대 초반의 대학생. 경험을 쌓아줄 요량으로 기용한 백업선수의 성격이 강했다. 하지만 주전 수비수 조민국 등의 부상으로 출전기회를 잡은 홍명보는 수비수임에도 전문 골잡이 못지 않은 기량을 과시했다. 스페인과의 1차전, 한국은 경기 종료 5분전까지 0-2로 뒤져 승산이 없어 보였다. 그 때 기적이 일어났다. 후반 40분 홍명보가 날린 프리킥이 수비수의 몸을 스치며 골로 연결됐다. 이어 후반 46분 서정원이 한국의 통산 7호골을 꽂아넣으며 2-2 무승부를 만들었다. 태극전사들의 저력을 세계에 알린 골들이었다.
조별리그 3차전인 독일전에서도 한국은 0-3으로 끌려갔다. 하지만 후반 7분 황선홍이 골키퍼 키를 넘기는 감각적인 슛으로 추격골을 만들었고, 후반 18분 홍명보가 다시 30m 거리에서 통렬한 중거리슛을 독일 골문으로 꽂아넣었다. 이 골로 홍명보는 한국 선수로서는 처음으로 월드컵에서 2골을 득점한 선수가 됐다.
1998년 프랑스에서는 10호 골이 터졌다. 하석주가 멕시코와의 1차전 때 전반 28분 프리킥을 직접 골로 연결했다. 이 골은 한국의 월드컵 역사상 처음으로 나온 선제골이었다. 그러나 하석주는 득점의 감격이 채 가시기도 전인 3분 뒤 퇴장을 당하며 '가린샤 클럽(득점 뒤 퇴장당하는 선수를 일컫는 말)' 회원이 되는 불명예를 얻었다. 2차전에서 네덜란드에 0-5로 대패한 우리나라는 벨기에와의 최종전에서 후반 26분 유상철이 슬라이딩 슛을 넣으며 1-1로 비겨 간신히 승점 1점을 챙겼다.
■한국을 8강으로 이끈 안정환
 |
| 안정환 |
한국 축구의 중흥이 이뤄진 때는 2002년 한·일 월드컵. 우리나라는 3, 4위전까지 7경기를 치르며 8골을 기록했다. 부산에서 열린 폴란드와의 1차전 때 황선홍(전반 26분)과 유상철(후반 8분)이 득점했고, 미국과의 2차전에서는 후반 32분 안정환이 헤딩골로 1-1을 만들며 패배에서 벗어났다.
포르투갈과의 3차전에서는 박지성의 활약이 빛났다. 박지성은 후반 30분 이영표의 크로스를 가슴 트래핑으로 처리한 뒤 수비수 한 명을 제치고 기막힌 왼발슛을 터뜨렸다. 단조로운 중거리 슛에 의존하던 우리나라 대표팀의 득점 방식을 바꾼 획기적인 골이었다.
이탈리아와의 16강전에서는 지금도 기억에 생생한 골 두 개가 나왔다. 0-1로 뒤지던 후반 43분 설기현이 16호골을 작렬시켜 경기를 연장전으로 끌고 갔고 연장 후반 13분 안정환이 헤딩슛으로 골든골을 기록하며 8강 진출이라는 역사를 새로 썼다. 한국은 터키와의 3, 4위전 때 이을용(전반 9분)과 송종국(후반 48분)이 각각 한 골씩을 합작했다.
한국의 통산 20호골은 2006년 독일 월드컵 1차전 토고전에서 작성됐다. 0-1으로 끌려가던 후반 9분 박지성이 얻은 프리킥을 이천수가 절묘하게 감아 차 만회골을 성공시켰다. 이어 한국은 후반 27분에 터진 안정환의 시원한 역전 결승골로 원정 첫 승을 달성했다. 이 골로 안정환은 아시아 선수 월드컵 최다골(3골)의 주인공이 됐다.
우리나라의 월드컵 마지막 득점인 22호골은 박지성이 만들어냈다. 프랑스와의 2차전 후반 35분 설기현의 크로스를 받은 조재진이 머리로 패스를 해주자 박지성이 가볍게 밀어 넣으며 1-1 동점으로 경기를 끝냈다.
■23호골은 누가
2010 남아프리카공화국 월드컵에서는 누가 한국의 첫 골 및 통산 23호골을 터뜨릴까. 많은 팬들과 전문가들은 공격의 최일선에 포진한 박주영이 주인공이 될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 한편에서는 박지성을 거론하기도 한다. 박지성은 소속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서는 웨인 루니 등의 득점을 도와주는 역할을 하지만 월드컵에서는 한국 대표팀의 특성상 공격 일선에 나설 수밖에 없다는 현실적인 이유에서다. 축구계에서도 이에 동의한다. 축구매체인 골닷컴은 박지성을 유력한 득점왕 후보 15인에 올려놓기도 했다.
그렇지만 예상은 어디까지나 예상일 뿐이다. 염기훈와 이청용, 기성용 등도 언제든지 골을 뽑아낼 수 있는 잠재력을 갖춘 선수들이다. 팬들은 태극전사들이 23호골을 시작으로 폭죽 같은 골을 터뜨려 사상 첫 원정 16강 진출의 염원을 이루기를 기대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