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수술 중 폭발로 천장 붕괴” 증언
- 팔, 이스라엘에 책임 화살 돌려
- 이, 지하드 소행 감청 녹취 공개
- 바이든도 “다른 쪽 소행” 밝혀
- 美·팔·이집트 등 4자 회담 취소

17일(현지시간) 팔레스타인 하마스가 통치 중인 가자지구의 알아흘리 아랍병원에서 폭발이 발생, 최소 500명이 숨지는 대형 참사가 나면서 이스라엘-하마스 간 전쟁이 극단으로 치닫는다. 전쟁에 가장 취약한 민간인과 환자가 보호받던 의료시설에서 참극이 났다는 점에서 국제사회가 더욱 경악을 금치 못하는 가운데 특히 이슬람권의 분노가 하늘을 찔러 확전으로 번지지 않을지 우려가 커진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오른쪽)이 18일(현지시간) 이스라엘 텔아비브 공항에 내려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의 영접을 받고 있다. AFP 연합뉴스

■폭격당한 병원 아수라장

AP AFP 로이터통신 스카이뉴스 BBC방송 등 외신 보도를 종합하면 폭발 참사가 일어난 가자지구 알아흘리 병원은 아비규환 상태다. 폭발 당시 이곳 병원에서 근무하던 국경없는의사회 소속 가산 아부 시타 박사는 “우리는 수술 중이었다. 강한 폭발이 일어나더니 수술실 천장이 무너졌다”며 “이건 학살”이라고 표현했다. 인근 알시파 병원의 아부 셀미아 국장은 “(알아흘리 병원의) 사상자 약 350명이 알시파 병원으로 급히 이송됐다. 장비 약 침대 마취제 등 모든 게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곳에서 의사들은 팔다리가 절단되거나 복부가 훼손되는 등 중상을 입은 이들을 마취 없이 맨바닥이나 복도에서 수술하고 있다.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은 폭발 원인을 두고 ‘네 탓’ 공방을 벌였다. 하마스는 물론 가자지구 통치권을 잃은 뒤 세력이 요르단강 서안에 그치는 팔레스타인 자치정부(PA)도 이스라엘에 화살을 돌렸다. 마무드 아바스 PA 수반은 “이스라엘군의 공습으로 병원 대학살이 일어났다. 이스라엘이 모든 레드라인을 넘었다”고 비난했다. 반면 이스라엘은 또 다른 팔레스타인 무장정파인 이슬라믹 지하드의 로켓 실패 탓이라고 밝혔다. 이스라엘군 수석대변인인 다니엘 하가리 소장은 이날 브리핑에서 폭발 전후 가자시티 알아흘리 병원 상공에서 촬영한 영상과 사진을 공개하며 “이스라엘군의 공습 때문이라면 현장에 공습에 의한 큰 구멍이나 건물에 구조적인 손상이 있었을 것이나 그런 흔적을 발견할 수 없다. 병원 벽도 그대로 있다. 손상된 곳은 병원 밖 주차장뿐”이라고 말했다. 이스라엘군은 이슬라믹 지하드 대원들이 로켓 발사 실패를 두고 대화하는 감청 정보도 공개했다. 이날 이스라엘을 찾은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도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를 만나 “병원 폭발은 다른 쪽 소행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슬라믹 지하드 측은 발끈하며 이스라엘 측 주장을 부인했다.

■국제사회 규탄 쇄도

공격 배후와 경위가 아직 확인되지 않지만 누구에 책임이 있든 간에 희생자 대부분이 어린이 여성 등 민간인이라는 점에서 국제사회는 ‘전쟁범죄’에 분노하며 일제히 규탄했다.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은 X계정을 통해 “팔레스타인 민간인 수백 명의 죽음이 경악스럽다. 이를 강력히 규탄한다. 병원과 의료진은 국제 인도주의법에 따라 보호 대상”이라고 강조했다. 샤를 미셸 유럽연합(EU) 정상회의 상임의장도 가자지구의 민간인 시설을 공격 표적으로 삼는 것은 국제법 위반이라고 지적했다.

중동 이슬람권은 이스라엘에 대한 분노를 분출했다. 요르단 외무부는 “이스라엘이 이 심각한 사건에 책임이 있다”고 했고, 카타르 외무부도 “(이번 공격은) 잔인한 학살이자 무방비 상태 민간인에 대한 극악무도한 범죄”라고 비판했다. 이란의 에브라힘 라이시 대통령은 “가자지구 병원에서 팔레스타인 부상자들 위로 떨어진 미국·이스라엘 폭탄의 화염이 곧 시오니스트(유대 민족주의자)들을 집어삼킬 것”이라고 말했다. 하마스를 돕고자 이스라엘 북부를 공격 중인 레바논 무장정파 헤즈볼라는 “18일을 적에 대한 분노의 날로 삼자. 거리와 광장으로 즉시 가서 격렬한 분노를 표출하라”고 촉구했다. 레바논 베이루트 미국 대사관 앞에서는 시위대가 팔레스타인 국기를 들고 “이스라엘에 죽음을” “레바논에서 복수하자” 등 구호를 외쳤다. PA가 통치하는 요르단강 서안 곳곳에서는 시위대와 팔레스타인 보안군 간의 충돌이 빚어졌고, 요르단 암만에서는 분노한 시위대가 이스라엘 대사관 급습을 시도했다.

■바이든 중재 출발부터 삐걱

알아흘리 병원 폭발은 바이든 대통령이 이-팔 전쟁을 중재하려 이스라엘로 향하던 날 터진 대형 참사여서, 그의 중동행이 ‘반쪽행보’에 그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애초 바이든 대통령은 이스라엘을 방문하는 한편 PA 수반, 요르단 국왕, 이집트 대통령과도 4자 회담을 해 이스라엘을 지원하고, 팔레스타인 민간인이 직면한 인도주의 위기를 완화하며, 하마스를 고립시켜 분쟁 해결의 실마리를 마련하려고 했다. 하지만 병원 폭발로 500여 명의 사망자가 나오면서 그의 ‘큰 그림’은 출발부터 삐걱댔다. 17일 바이든 대통령이 이스라엘로 출발하기 직전 요르단은 미국 이집트 PA와 4자 정상회담을 취소한다고 통보했다. 정상회담이 이례적으로 목전에서 취소된 가운데 바이든 대통령은 이스라엘만 방문하게 됐다. BBC방송은 “바이든 대통령이 ‘중동의 선량한 중재자’처럼 보이려 했다가 망신에 직면했다”고 평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