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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중수교 30주년…중국을 다시 보다 <2> 전통과 사회주의의 묘한 혼합

전통 계승 사회주의 외치는 中, 패권행보에 국제민심 싸늘

  • 조광수 전 영산대 중국학과 교수
  •  |   입력 : 2022-09-13 18:55:34
  •  |   본지 1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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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中 우회적 특성의 고맥락 문화
- 역사와 정치 등 끈끈하게 연결
- 마오쩌둥 등 이를 적절히 활용

- 중국식 사회주의 역사적 결정
- 공산당은 전통 계승 조직 강조

- 그들이 내세운 전통 실상 모호
- “대국굴기 통해 왕도정치 실현”
- 중국천하 목표로 주변국 위협

중국을 제대로 이해하기 어려운 이유는 세 가지다. 깊고 오랜 전통이 첫째 이유이고, 전통과 묘하게 얽힌 중국식 사회주의가 두 번째 이유이며, 짧은 주기로 분열과 통합을 반복해 온 역사에서 비롯된 묘기백출의 생존전략이 세 번째 이유다. 전통과 체제 그리고 문화 요인이란 뜻이다.

■중국식 사회주의, 전통과 얽혀 난해

중국은 전통의 두께가 참으로 두껍다. 전통은 대대로 이어져 내려오는 지혜의 축적이다. 당장의 떡과 밥으로만 계량할 수 없는 향기와 윤기가 있다. 그걸 공유하는 구성원에겐 엄청난 긍지가 되고 은근한 자신감을 느끼게 하는 든든한 뒷배가 된다. 그리고 전통은 그저 오래되었다는 게 전부는 아니다. 단절되지 않고 전승되어 왔다는 게 더 중요하다.

중국이란 공동체가 공유하는 기억은 우선 엄청난 분량의 문헌 자료로 축적되었고 또 전승되어 왔다. 기원전 8세기부터 거의 250년 동안 월별로 중요한 사건을 기록한 사서가 현재 그대로 읽히고 있다. ‘춘추’가 바로 그 책이다. 2000여 년 전의 ‘사기’ 또한 대대로 독자를 발분케 하고 있다. 거기에 수록된 숱한 에피소드와 고사성어는 지금도 일상에서 익숙하다. 곡학아세, 관포지교, 토사구팽, 다다익선, 구상유취 등 무궁무진하다. 역사책뿐만 아니라 경(經)과 자(子) 그리고 문집 등 전적(典籍)의 분량은 비교할 문명이 없다. 청 건륭제 때의 ‘사고전서’에 수록된 종류만 3500여 종, 약 8만 권이다. 비슷한 시기 프랑스의 디드로가 주편한 ‘백과전서’의 44배 분량이다.

그 내용이 지금도 생생하게 이해되고 활용되고 있다. 중국의 지도자는 그냥 사회주의자가 아니라 전통의 훈도로 인문적 소양을 갖춘 문인이다. 고전에서 적절한 대목을 인용해 자신의 심경을 표현하거나 상대를 공격한다. 고시(古詩)의 한 구절을 인용하기도 한다. 과거의 사례를 현재 상황에 비견하는 비유(analogy) 구사가 아주 발달되어 있다. 못 알아들으면 등신이 되는 것이고, 어리둥절하며 무슨 뜻이냐 되물으면 두 번 죽는 것이다.

문화인류학자 에드워드 홀은 맥락이란 개념으로 문화 현상을 해설한다. 의사소통 방식의 차이로 저맥락 문화와 고맥락 문화를 구분하는데, 저맥락 문화는 직설적이고 명시적이며 고맥락 문화는 암시적이고 함축적이다. 저맥락 문화는 직선형으로, 말하는 쪽이 분명하게 결론부터 내리는 식이다. 고맥락 문화는 나선형으로, 듣는 쪽이 결론을 내리게 우회적이고 은근하게 접근하는 식이다. 그렇게 구분하면 중국은 대표적인 고맥락 문화다. 다만 이 구분은 문화적 차이일 뿐 높고 낮은 우열의 문제는 아니다.

■사례1 : 마오쩌둥의 인도 전쟁

중국의 고맥락 문화를 보여주는 사례를 두 가지만 언급한다. 먼저 마오쩌둥의 경우다.

마오쩌둥이 목전의 전략적 긴급 사안을 고색창연한 전통과 연관해 해결책을 제시하고 지휘관이 완벽하게 이해해 실행한 예가 인도와의 전쟁이다. 그는 절제와 기강을 주문하며 역대 두 번의 전쟁을 이야기했다. 첫 번째는 당나라 때로 인도를 쥐어박아 협상 테이블로 데려오기 위해 치열한 전투를 치렀지만 전쟁 후엔 종교와 경제 분야에서 활발하게 왕래하고 교역해 오랜 평화를 누렸다. 두 번째는 원나라 때인데 포로 10만 명을 학살한 적이 있다. 마오쩌둥의 뜻을 충분히 이해한 군 지휘관은 인도를 기습해 엄청난 타격을 가한 다음 통제 라인으로 물러났고 인도군에 중화기를 되돌려주는 등 절제와 기강을 실천했다.

그 상황을 헨리 키신저는 ‘중국 이야기’ 프롤로그에서 이렇게 평가한다. “오늘날의 리더가 천 년 묵은 사건에서 전략적 원칙을 이끌어내 국가적인 중대한 위업에 착수한다는 것, 혹은 그런 지도자가 자신의 암시가 지니는 중요성을 동료가 모두 이해해 줄 것으로 기대할 만큼 자신감에 넘친다는 것. 아마도 다른 국가에서라면 상상할 수 없는 노릇이다.…중국만큼 고대의 역사라든가 전략과 정치의 고전적 원칙에 끈끈하게 연결되어 있음을 자랑할 수 있는 나라는 많지 않다.” 중국 정치의 핵심을 찌르는 과연 대가다운 통찰이다.

키신저는 50년 전 미중 수교의 기초를 닦고 데탕트라는 국제 질서를 만든 외교가의 전설이다. 올해 아흔아홉으로 여전히 현안에 대해 발언하고 조언하는 노익장이다. 다만 미국 조야의 대중국 인식이 극적으로 변하면서 키신저식 접근은 지나치게 친중적이고 ‘나이브’하다는 평가도 있다.

■사례2 : 저우언라이의 중일 수교

다음 사례는 저우언라이의 경우다. 저우 총리는 중국과 수교를 위해 베이징에 온 일본의 다나카 수상에게 “언필신행필과(言必信行必果)”란 편액을 선물한다. 그 문장의 출전은 ‘논어’다. 자공이 군자다움을 묻자 공자는 단계별로 대답하는데, 저우언라이가 다나카에게 준 편액의 글은 그 단계 세 번째를 이르는 대목이다. 말이 미덥고 행동이 분명하면 군자와 소인의 경계이긴 하나 그래도 삼류 선비는 된다는 뜻이다.

일본은 전후 처리 과정에서 당시 대만으로 패퇴해 있던 장제스 총통에게 큰 빚을 졌다. 수십만 명 관동군을 포로로 대우해 고스란히 귀국케 했다. 그 귀환 병력의 장정들이 곧 일본 부흥의 역군이 된다. 뿐만 아니라 자칫 분할될 뻔한 신세도 장제스 덕으로 면하게 된다. 그런 연유로 일본의 원로 정치인과 군인들이 오랫동안 대만을 단체로 방문해 사례했다. 그런 사정을 훤히 알고 있는 저우언라이는 다나카가 현실적 필요 때문에 대만을 배신하고 중국과 수교하지만 깊이 신뢰하진 않는다는 뜻을 편액의 글로 표현한 것이다.

■시 주석도 중국 전통문화 강조

전통주의와 사회주의가 묘하게 혼합된 건 1세대 지도자만이 아니다. 5세대 지도자인 시진핑도 위대한 부흥을 외며 ‘차이나 드림’의 핵심을 전통에서 구하고 있다. 시진핑은 중국식 사회주의를 시작한 것은 우연이 아니라 역사적 유산으로 결정된 것이라고 했다. “중국 공산당은 훌륭한 중국 전통문화를 계승한 조직”이라고 선언하며 민족적 자신감을 고취하는 공자를 비롯한 위대한 사상가의 통찰을 배우라고 관리에게 명령하기도 했다. 중국 몽의 가치로 화이부동의 화(和)를 중시하기도 한다.

문제는 시진핑이 귀하게 여기는 전통의 실상이 과연 무엇이냐는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의 중국 자문역으로 대중 강경책을 주장했던 마이클 필즈베리는 “중국인들은 21세기를 살고 있지만 그들의 전략적 사고는 2500년 전 전국시대의 약육강식 프레임에 머물러 있다”고 했다. 저명한 동양사학자 UCLA의 존 던컨 교수는 “현재의 중국이 개방적이었던 당나라나 원나라 모델보다 훨씬 폐쇄적이었던 명나라나 청나라 모델을 따르려는 움직임을 보여 동북아 상황이 좋지 않다”고 진단한 바 있다. 지금 ‘중국 위협론’의 근거는 차고 넘친다.

시진핑의 외교 브레인 옌세통 칭화대 교수는 “대국 굴기는 중국의 소명이고 국력을 기초로 한 패도는 불가피하다”고 말한다. 과도기적으로 힘의 다스림인 패도의 시기를 거치지만 최종 목표는 도덕의 다스림인 왕도라는 주장이다. 다만 왕도정치의 핵심은 규범을 만드는 것이고 규범은 제정자가 솔선수범해야 한다. 왕도정치이든 천하관념이든 그 에센스는 민심을 얻는 것이다. 민심을 얻어야 천하를 얻고 왕도정치를 시행할 수 있다.

지금 중국은 글로벌 민심을 얻고 있나? 미국이 잃고 있는 민심을 중국이 얻어서 양극체제를 만들겠다는 구상이라면, 아니 장차 미국의 헤게모니를 대체해 글로벌 유일 리더가 될 뜻이라면 지금처럼 해도 되는 것일까. 과연 중국의 천하가 더 우아하고 매력적일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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