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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현의 중국인 이야기 <30> 영토의 실제적 지배를 확장하는 서주

제후국 교류 늘며 등장한 전문 상인집단, 왕조 유지 버팀목 되다

  • 디지털콘텐츠팀 inews@kookje.co.kr
  •  |   입력 : 2019-09-15 19:23:43
  •  |   본지 1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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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큰 위협세력인 동쪽부터 분봉

- 비옥한 평원 무대로 무기 발달
- 가장 믿을수 있는 자 대리 통치
- 서융·동이 정벌 등서 큰 공 세워

# 이민족에 유연·개방성 보인 晉

- 융적 활동 강성했던 북방지역
- 피지배 민족 핍박 않고 존중
- 다른 민족들과도 우호적 교류

# 교통망 확장, 상업 발달로 이어져

- 도읍·제후국 간 마차 등 일상화
- 물자 유통 증가로 화폐 활성화
- 국가 통제·보호 아래 자본 형성

상나라가 광범위한 정복전쟁을 펼쳤다고는 하지만 후대의 영토전쟁과는 그 성격이 달랐다. 정벌했다고 하여 온전히 지배하는 것이 아니라 주도세력으로서의 위력을 과시해 복종을 억압한 것이며, 그로서 연맹 혹은 연합의 확대를 꾀한 것에 불과했다. 여전히 부족적 성격이 강한 방국(邦國)체제에서 지속적으로 지배할 압도적 무력 역량도 부족했고, 무엇보다 완전한 지배를 위한 제도나 체제를 마련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제는 달랐다.

청동기술의 지속적 발전으로 전차를 비롯한 각종 병기의 개선과 대량 확보가 가능했으니 이전과는 군사의 규모가 달랐다. 강태공 여상은 문왕, 무왕과의 문답 형식으로 중국 7대 병서 ‘무경칠서(武經七書)’의 하나인 ‘육도(六韜)’를 전한 것으로 알려진 탁월한 전략가였다. 즉 강한 힘만으로 대적하는 전투가 아니라 전술적인 전쟁의 시대가 열린 것이다. 무엇보다 핏줄이나 신뢰할 수 있는 사람을 제후로 내세워 대리 통치하는 분봉제는 실질적 영토의 확장을 가능하게 했다. 바야흐로 영토의 국가시대가 시작된 것이다.
   
서주 시대는 영토의 확장과 더불어 도읍과 제후국이 정해지면서 각 지역간 교류를 위한 교통망이 확충됐다. 이는 특히 상업의 발달이라는 예기치 않은 성과로 이어졌다. 사진은 중국 고대 시장을 재현한 상상도.
■동쪽 영토의 안정화를 위한 분봉

먼저는 동쪽이었다. 지금의 산동성 지역인 황하 하류 유역은 비옥한 토지의 대평원이다. 터전으로 삼은 사람들은 자연스레 농경에 익숙해졌고 인구는 비약적으로 늘어났다. 특히 일찍부터 중원의 부족들과 대립하던 동이라 불린 세력의 무대였다.

동이의 활동 영역은 북으로는 하북성 요령성과 내몽고 일부까지, 남으로는 강소성과 안휘성 일부에까지 미쳤던 것으로 보인다. 더구나 그들은 활을 잘 쏘았고 일찍부터 금속을 다루는 데 익숙해 무기도 발달했다. 하남성과 섬서성 등을 주 무대로 한 중원 세력에게는 한시도 마음 놓을 수 없는 위협 세력이고 불안 지역이었다. 그래서 상을 정벌한 주 왕조는 먼저 가장 믿을 수 있는 자들로 동쪽 지역에 분봉한 것이다.

강태공을 제나라에 봉한 영구(營丘) 지역은 산동성 동북쪽의 요충지로 지금의 치박(淄博)시 임치(臨淄) 인근이다. 이들 강씨 제후들은 식읍의 군사로 줄곧 동쪽 변경을 수비하였으며, 왕실에서 파견한 장수를 따라 동남쪽 회이(淮夷) 지역 정벌에 나서기도 했다. 지금의 곡부(曲阜) 땅을 식읍으로 노나라에 봉해진 주공 단은 아들 백금을 대신 부임시켰는데, 그는 북쪽 서융의 반란을 평정했고 강왕 말기에는 동이 정벌에서도 크게 공을 세웠다.

이처럼 산동성 지역의 비옥한 평원을 무대로 활약한 제후국들은 훗날 춘추시대에 이르러 역사의 주역으로 활약하며, 중국 사상문화의 터전이 된다.

■북방과 남쪽 지역의 형세

   
연나라의 투구
서주까지만 해도 오늘날 우리가 말하는 북방민족, 즉 홍산 문화권 세력과는 별다른 마찰이 없었다. 그러나 산서성과 하북성을 남북으로 지나며 서쪽의 황토 고원과 동쪽 평원을 가르는 태행산맥(太行山脈) 서북쪽에는 융적의 활동이 강성했다. 이에 서주 왕실은 상을 정벌한 뒤 무왕의 동생 소공을 연에 봉해 북방 세력을 경계하게 했으니, 지금의 북경시 서남쪽 주구점(周口店)에서 멀지 않은 유리하촌(琉璃河村)에 도읍 유적이 있다. 또 주공의 서자 정숙(井叔)을 형(邢)으로 봉해 융적을 방어하게 했으니, 지금의 하북성 남쪽 형태(邢台)시 인근이었다. 형의 제후는 여러 차례 융적의 남하를 막아 주의 북쪽 변경을 지키는 데 큰 역할을 했다.

북방 지배를 위해 분봉된 제후국 중에서 가장 주목할 세력은 진(晉)이다. 진은 성왕 시절, 산서성 경내에서 하 왕조 유민 세력의 일부인 당인(唐人)이 난을 일으키자 주공이 이를 정벌한 뒤 성왕의 동생 숙우(叔虞)를 당(唐)으로 봉해 분봉한 제후국으로 도읍은 지금의 산서성 곡옥(曲沃)현 북조촌(北趙村)이다. 그런데 숙우는 일종의 피지배 민족인 하의 유민을 핍박하지 않고 그들의 풍속을 존중해 유지하게 했으며 심지어 적대 세력인 융적의 토지 제도를 채용하기도 했다. 그런 덕분에 자연스레 인근의 다른 민족과 우호적으로 교류하게 되었고 이민족과 이렇다 할 분쟁을 겪지도 않았다.

   
서주 시대에 본격적인 화폐 역할을   하게 되는 청동패
‘융적’의 ‘적(狄)’은 동이의 ‘이(夷)’와 마찬가지로 오랑캐라는 의미이다. 즉 중원의 주류세력은 자신들에게 고분고분하지 않은 외방 민족은 모두 오랑캐라 멸시하고 적대시한 것이다. 하지만 진의 숙우는 다른 행태를 보였다. 그런 유연성과 그로 인한 문화적 다양성의 힘 덕분인지, 진은 훗날 춘추시대에 강력한 중원 세력으로 자리매김해 패자(覇者)로 등극하기도 한다.

진의 위업이 반드시 문화적 다양성의 힘 덕분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 그렇지만 세계 역사에서 패자, 혹은 제국이 된 세력은 모두 개방된 자세를 보였다는 사실은 증명된 바이다. 이는 중국 역사에서도 익히 엿볼 수 있다. 소위 ‘한당성세(漢唐盛世)’로 일컬어지는 한나라와 당나라 성세기(盛世期)의 개방된 모습을 살펴보면 고개를 끄덕이게 될 것이다.

그밖에 남쪽과의 관계는 이미 보았듯 소왕의 형초 정벌전 같은 분쟁이 있었다. 그러나 경제 문화적 교류는 늘어났어도 이전과 같은 군사적 마찰은 더 이상 일어나지 않았다. 동쪽이나 특히 북방 세력과의 잦은 마찰이 가장 큰 원인이겠지만, 남방의 이질적 자연환경도 크게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그로 인해 남방에서는 초, 월(越) 같은 나라들이 힘을 길러 춘추시대를 준비할 수 있었다.

■사통팔달 교통망과 상업 활성화

   
유리하 연 유지에서 발견된 하수관
영토가 확장되자 도읍과 제후국 간의 긴밀한 소통이 필요한데다 마차와 같은 운송도구가 일상화되었다. 교통망의 정비와 확장은 필수적이었고 제후국의 군주는 식읍의 평민과 노예를 동원해 도로를 내고 넓히는 일에 적극 나서야 했다. 한편 물이 흔한 남방 지역과의 교류가 잦아지며 수로의 이용도 활성화되었다.

사통팔달하는 교통망의 등장은 또 다른 성과를 낳았다. 바로 상업의 발달이다. 농업생산의 증가로 잉여물이 늘어난 데다 지역 환경에 따른 특산물에 대한 수요가 증가해 각종 물자의 유통이 활성화된 것이다. 그에는 각 제후국에서 도읍으로 보내는 공물의 다양함도 한 몫 했다.

상업의 시초인 물물교환은 이미 오래전부터 있었지만 이제 편리해진 교통망과 운송수단의 발달로 전문적인 상인 집단까지 등장하게 되었다. 거래 수단으로는 이미 상나라 대에서도 패(貝)를 활용한 바 있지만, 서주에 이르러 패는 재부의 상징을 넘어 실제 거래 수단으로 더욱 활성화되었다. 특히 청동기술이 발전하며 조개를 가리키는 해패(海貝)와 함께 동패(銅貝), 옥패(玉貝) 등이 차례로 통용수단으로 등장했다. 명실상부한 화폐의 시대가 열린 것이다.

서주 왕실은 조밀한 종법제를 만들어낼 만큼 예리한 눈으로 시장의 흐름을 놓치지 않았다. 그들은 관방(官方) 시장을 만들어 상인은 그곳에서 거래하고 관리의 통제를 받게 했다. 얼마 뒤부터는 ‘관시(官市)에서 거래를 하지 않는 외방은 정벌하고, 제후와 백성은 처벌한다’는 규정까지 만들었다. 물산의 흐름을 파악하고, 물가를 통제하며, 상인의 이익에서 세금을 거두기 위함이었다.

상업의 발달과 세금의 징수는 어느 일방의 이익이 아니라 쌍방에게 이익이었다. 관시는 국가의 통제만이 아니라 보호도 받았으니 안전하게 규모가 커졌고 거래는 더욱 활성화되었다. 국가의 재정만 확충되는 것이 아니라 거래의 이익으로 부의 규모도 커지면서 자본이 형성되어 또 다른 생산의 비약적 발전으로 이어졌다. 오래지 않아 관리와 상인의 결탁이라는 부조리도 생겼지만 중국 역대 왕조는 상업을 억누르지 않았고 민간은 업신여기지 않았다. 오늘날과 같은 정보통신 수단이 없었음에도 그 넓은 대륙을 아우를 수 있었던 바탕은 바로 그에 따른 원활한 교류였고, 제국의 왕조를 유지할 수 있었던 힘은 농업생산만이 아닌 상업에서 파생되는 재정이었다.


◆국가로부터 보장된 시장의 자유, 이민족·서역 상인들마저 동화

중국은 왕조의 교체가 빈번했다. 땅이 넓어 곳곳에 군웅이 할거하기도 했지만, 북쪽 국경 너머의 전투력 강한 이민족이 상존한 까닭이다. 그로인해 중화라는 이름으로 아우른 주류세력과 오랑캐라 멸시한 이민족이 번갈아 왕조의 주역이 되었다. 그런데 아주 특별한 점이 있다. 적대적 감정이 깊은 데다 거칠기까지 한 이민족 세력은 왕조의 주인이 되고나면 이내 피지배 민족에 동화되어 자신들의 정체성을 잃고 정권을 빼앗겼다. 그뿐 아니라 어느새 다수는 흐물흐물 중화족에 합류되어 재기의 기반마저 허물어져있는 것이었다. 여러 이민족 왕조가 있었지만 그들이 다시 정권을 되찾는 경우는 단 한 번도 없었다는 것이 그 생생한 증거이다.
   
서주 시대 화폐의 일종인 천연패(사진 위)와 유리하 연 유지의 화려한 칠기 유물들.
사가(史家)들은 말한다. 중국의 공고한 지배구조는 거대한 영토 지배에 반드시 필요하고 그 운용을 위해서는 익숙한 관료에 의지해야 했기 때문이다. 문자를 비롯한 탁월한 문화는 오랑캐 이민족이 스스로 감화될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이민족은 대부분 소수였다. 전쟁에서는 탁월한 전투력의 소수가 승리할 수 있지만 그 무력만으로 전체를 지속적으로 통치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등등.

‘장독문화’라는 말이 있다. 중국이라는 거대한 장독은 콩이 장(醬)으로 변하듯 무엇이든 담기면 배척하지 않고 더불어 숙성해 새로운 문화로 탄생한다는 뜻이다. 인도의 불교가 중국이라는 장독에서 대승불교를 꽃피운 것도 같은 맥락일 것이다.

배척하지 않는 포용의 가장 큰 마당은 시장이다. 문화는 특정 지배세력에 의해서만 발전하는 것이 아니다. 때로는 그들이 씨앗을 뿌리기도 하지만 싹을 틔우고 열매를 맺게 하는 것은 언제나 다수의 민중이고, 확산되어야 문화라는 꽃으로 피게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중국은 일찍부터 상업이 발달했고 국가의 간섭으로부터 비교적 자유로웠다. 염업(鹽業)과 같이 국가재정 확보를 위한 일부 독점이 있기는 했지만 대부분 상업은 통제받지 않아 무엇이든 쓸어 담고 내놓을 수 있었다. 지배세력이 된 이민족을 동화시키고 서역의 상인들까지 줄을 이어 찾게 만든 원천이었다.

   
한반도에도 그런 왕조가 수백 년 영화의 역사를 누린 적이 있었다. 그러나 ‘사농공상(士農工商)’의 해괴한 논리로 무장한 왕조는 기어이 나라를 결단내지 않았던가. 오늘도 여전히 국유든 무엇이든 시장의 자유는 활성화된 중국은 다시 위세를 휘두른다. 제국의 부활인가, 걱정되고 부럽다.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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