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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현의 중국인 이야기 <17> 최초의 정복 군주, 무정

즉위 3년간 기득권 민낯 관찰 … 국정 쇄신 후 정복전쟁 착수

  • 국제신문
  • 디지털콘텐츠팀 inews@kookje.co.kr
  •  |  입력 : 2019-06-16 18:58:05
  •  |  본지 1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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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형제·부자 뒤엉킨 왕위상속

- 상대 18대 이후 4대간 형제 세습
- 소싯적 평민과 놀고 일했던 무정
- 21대 아버지 소을 이어 제위올라

# ‘삼년불언’… 은 부흥 꿈꾸다

- 꿈에서 본 현자의 모습 찾아서
- 노예를 재상으로 전격 발탁
- 귀족세력 억누르고 안정시켜

# 우임금 구주개척 오버랩

- 북방 유목부족 정벌 후 강족 억압
- 남방 부족들도 차례차례 허물고
- 동부까지 토벌 ‘구주형세’ 그려

상이 은으로 천도하고, 22대 임금으로 무정(武丁)이 즉위했다. 사마천은 ‘사기’에 반경 이후는 무정과 마지막 30대 주(紂)를 제외하고는 특별한 내용을 기록하지 않았다. 무정에 대해서도 그가 꿈속에서 만난 성인 부열(傅說)을 얻는 이야기와 정사를 바로잡고 은덕을 베풀어 흥했다는 정도이다. 전해지는 다른 기록이나 구전되는 이야기가 적지 않았을텐데 간략하게 정리한 까닭이 무엇일까?

아마 사마천은 ‘사기’를 집필하는 내내 그의 시대, 한대(漢代)의 사관에서 자유롭지 못했을 것이다. 또한 생식기가 잘리는 궁형의 치욕을 당하게 만든 정치 현실과 그가 꿈꾸는 이상의 정치 사이에서도 자유롭지 못했기에 자료의 취사선택에서 무의식적으로나마 ‘역사 만들기’ 부분이 적지 않았던 듯싶다. 그러나 뒷날 금석학의 발달과 갑골문의 발견 등으로 고대 역사의 편린이나마 제대로 들여다볼 수 있게 된 것은 참으로 다행한 일이다.

■무정, 현신 부열을 얻다

   
상대 신의 이름으로 절대권력을 거머쥔 왕들은 자신의 사후 세계를 설계하기 시작했는데 은허의 원하(洹河) 북쪽 기슭에서 발견된 후가장(候家莊) 대묘가 대표적인 곳으로 묘실의 깊이가 엄청나다. 이 묘들은 반경의 은 천도이후부터 조성돼 왕조가 끝날 때까지 지속됐다.
무정은 왕가의 자손으로 태어났음에도 어려서부터 평민의 아이들과 어울려 놀았다. 더 자라서는 그들과 함께 노동하며 질박한 생활을 몸에 익혔다. 무정은 소을(小乙)의 아들인데, 소을은 반경의 뒤를 이은 소신(所辛)과 형제였다. 상은 여전히 형제와 자식이 뒤엉켜 왕위를 세습하는 혼란이 계속되고 있었고, 무정이 제위에 오른 것은 그 덕분인 셈이었다.

제위에 오른 무정은 3년 동안 아무런 말이 없었다. 소신 이후 다시 쇠락해진 은의 부흥을 꿈꿨기에 자신을 보좌해줄 현신을 찾으며 나라의 기풍을 유심히 살피고 있었던 것이다. 마침내 제위 3년이 지난 어느 날, 꿈속에서 현신이 될 성인을 만났는데 그의 이름이 열(說)이었다. 무정은 대신과 관리는 물론 재야에까지 나아가 닮은 사람을 찾았지만 허사였다. 어느 날, 부험(傅險)이라는 곳에서 길을 닦는 노예 중에서 열을 발견하고 이야기를 나누어보니 과연 성인이었다. 이에 무정은 부열이라는 이름을 내리고 재상으로 기용했다. 지극히 파격적이고 작위적이기까지 한 이야기이지만 그 속에는 몇 가지 숨은 뜻이 있을 듯싶다.

당시는 노예제 사회로 귀족들은 제각기 노예를 소유하고 있었다. 이 노예는 언제라도 주인의 명에 따라 무력이 될 수 있는, 이를 테면 사병(私兵)인 셈이었다. 그러니 귀족들은 왕이라 해도 함부로 무시할 수 없는 세력이었다. 특히 왕위 세습과 관련한 혼란도 그런 귀족 세력과의 이해관계에서 비롯되었을 수 있고, 기득권층인 그들은 각종 개혁과 쇄신에 무시로 반발했을 것이다. 대신과 관리가 그런 귀족들과 연계되어 있었던 것 또한 당연한 노릇일 테고.

왕권 강화와 국정 쇄신을 꾀하려는 무정에게는 기득권 세력과 연계되지 않은 현신이 필요했다. 무정이 부열을 발탁한 것은 배후세력 없는 신분 때문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노예를 재상에 발탁하는 파격에는 반발이 있을 것이니 그것을 억누를 명분으로 신정사회에서의 신, 즉 꿈에서의 현몽을 내세운 것이다. 어린 시절부터 평민사회를 가까이하면서 기득권층의 사욕과 횡포를 꿰뚫은 명찰(明察)도 한몫 했을 것이고, 그래서 3년이라는 시간이 필요했던 것인지 모른다.

■북방 유목부족을 정벌하고 강족을 억압하다

   
상의 22대 왕인 은고종(殷高宗) 무정의 초상(왼쪽)과 무정의 정복전쟁을 기록한 ‘죽서기년’.
국정을 장악하여 체제를 안정시킨 무정은 정복전쟁에 나선다. 귀족을 억누를 위엄과 국력 증강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한꺼번에 잡을 수 있는 길이었다.

첫 번째 대상은 북방 초원지역의 유목세력으로 은의 지역을 무시로 소란스럽게 만드는 귀방(鬼方)이었다. 무정은 군사를 이끌고 친히 정벌에 나서 3년 만에 그들을 평정한다. 또 다른 북방 유목부락 ‘공방’도 정벌 대상이었다. 그들은 은의 속국들을 괴롭히는 것은 물론 수차례 도읍 근처까지 내려와 약탈을 감행한 제법 강대한 세력이었다. 무정은 금(禽)과 감반(甘盤)에게 군사를 주어 정벌을 명하니 10여 년만에 평정되었다. 은의 도읍과 비교적 가까운 북방 유목부족 토방(土方) 역시 침략과 약탈을 일삼았기에 공방의 토벌 과정에서 2, 3년의 시간을 들여 정벌했다. ‘죽서기년’에 기록된 이야기다.

내부를 다지고, 침략과 약탈을 자행하던 목전의 적을 정벌해 나라를 안정시켰으니 그 다음 할 일은 영화를 누리거나 국력을 더욱 넓혀나가는 일이다. 무정은 국력을 넓혀나가는 정복군주의 길을 선택한다.

서북쪽 강족은 여전히 골치 아픈 위협세력이었다. 거칠고 전투력 강한데다 그들의 터전인 해발 3000m가 넘는 서북 고원은 당시 은의 군사 역시 제대로 전투력을 발휘하기 어려웠다. 토벌에 나서봐야 불리하면 말을 타고 고원으로 도망치는 그들을 멀거니 지켜볼 수밖에 없었을 테고, 돌아서면 다시 쳐들어오니 가혹한 토벌이 불가피했다. 무정은 친히 정벌에 나선다. 단순히 버르장머리를 고쳐놓는 정도가 아니었던 듯하다. 갑골복사에 나오는 강족에 대한 기록은 거의 씨를 말릴 기세이지 않던가. 강족은 이후 주 나라가 은을 정벌할 때 주력 군사로 참전한다.
■사방을 평정하니 우 임금의 구주도가 비로소 그려지다

   
은허의 대묘에서 출토된 구리 술잔인 청동작(爵)과 청동접시, 청동기 문양을 새기기 위한 주조 틀(거푸집) 파편(위에서부터).
정벌은 남방 지역으로도 이어진다. 남방 지역은 북방과는 다른 자연환경 속에서 그들 나름의 문화를 일구며 진보해 나가고 있었다. 그중에서 장강 중류 유역의 형초(荊楚)는 가장 강대한 세력이었다. 친정에 나선 무정은 아주 위험한 지역까지 쳐들어가 그들을 정벌하고 수많은 포로를 잡아 노예로 삼았다. 아주 위험한 지역이라는 것은 북방과는 다른 자연환경을 말하는 것이다. 그밖에도 대팽(大彭), 시위(豕韋) 같은 부족도 고분고분하지 않자 정벌했다.

상의 중기까지만 해도 창강 유역 일부 세력과 협력하여 원자재를 확보하고, 산싱투이문명에서 보듯 쓰촨 지역 세력들과도 접점이 있었던 그들이다. 그런데 은으로의 천도 이후에는 오직 가혹한 정벌뿐이다. 그렇다고 힘으로 억눌러 원자재를 확보하려던 것도 아닌 듯싶다.

사실 황허유역 사람들에게 창강 유역의 자연환경은 적응하기 어려운 조건이다. 높은 기온과 습도, 수많은 수택(水澤), 우거진 밀림 등등. 게다가 창강 이남을 향한 교두보였던 반룡성이나 신감국을 무너트린 것은 오성 세력으로 보이니 남방의 그들 역시 풍요로운 자연환경 속에서 만만찮은 세력으로 커가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서북지역을 평정하자 그곳에서 동광을 비롯한 여러 금속 광산을 발견할 수 있었다. 무정의 서북 정벌의 진짜 속내는 그것이었는지 모른다. 그렇다면 남방과의 우호적 관계 단절이나 가혹한 정벌에 대한 의문도 풀린다. 원자재 문제가 달리 해결된 이상 굳이 적응하기 어려운 환경조건의 남방과 골치 아픈 관계유지에 애쓸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결국 무정의 남방 정벌은 위협 세력에 대해서는 미리 싹을 자르고 여타에는 위엄을 과시하여, 감히 은의 주력 지역에 얼씬하지 못하도록 하려는 의도였을 것이다.

그밖에도 무정은 동쪽지역으로도 정벌에 나섰다. 산둥성 중북부, 지금의 웨이팡(濰坊)시 인근의 소부둔(蘇埠屯) 유적에서 월을 비롯한 은대의 청동기 유물이 다수 발견되었다. 일부 무덤은 은대 왕 묘와 유사한 형태로 조성되었고, 짐승과 사람을 순장하는 등의 장례예법도 닮아 있었다. 그곳은 융(融)과 추(醜)라는 부족의 터전이었다. 반발 세력에 대한 정벌도 있었겠지만 재보의 상징이었던 조개(貝)를 구하려는 목적도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우(禹) 임금이 개척했다는 구주(九州)와 비슷한 형세가 비로소 이루어졌다. 고대의 사가(史家)와 사마천은 이를 근거로 구주도를 그리고 썼을 것이다.


# 현실 영화 집착한 상대 왕…신하·노예 무더기 순장

- 신권 장악한 왕 사후세계 설계
- 제물로 사람 바치기 주저 않아
- 묘 곳곳엔 인골 묻은 제사갱도

상의 형벌은 가혹했다. 법은 모두에게 적용되는 것이지만 특히 노예를 대상으로 엄격히 집행됐다. 단순히 도망치거나 반항하는 노예에 대한 징벌만이 아니라 신하와 백성에 대한 경고의 뜻도 있었을 것이다.
   
후가장 대묘 묘실 입구에서 발견된 순장유골. 문을 지키는 역할을 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오른쪽은 후가장 대묘 묘실 옆의 제사갱들인데, 각각 순장 유골과 예기가 출토됐다.
목을 베는 대벽지형(大辟之刑), 궁형(宮刑), 코를 베는 의형(劓刑), 문신을 새기는 묵형(墨刑), 다리를 자르는 비형(剕刑)의 5형은 순(舜) 임금 때부터 시행되었다지만 그 방법이 참으로 잔혹했다. 궁형은 남자만이 아니라 여자도 질을 꿰매거나 불로 지져 유폐(幽閉)했고, 비형은 다리 복사뼈 위를 톱으로 잘랐다. 그밖에 생매장이나 사람을 얇게 저며 육젓을 담는 잔혹한 형벌도 있었다. 은허에서는 양손을 앞으로 해 수갑을 찬 여자와 뒤로 찬 남자 토용(土俑)이 각각 발견되어 당시의 형벌 집행 모습을 생생하게 보여주기도 한다.  

기왕에 전해져온 형벌에, 하늘을 비롯한 자연의 신과 조상의 영혼에 제사를 지내며 사람을 제물로 바치기를 주저하지 않은 그들이었다. 갑골을 이용한 신점을 믿고 따르며 영혼의 세계에 빠지자, 신의 이름으로 절대 권력을 장악한 왕은 이제 자신의 사후 세계를 설계하기 시작한다. 은허의 원하(洹河) 북쪽 기슭에 있는 후가장(候家莊) 대묘가 대표적이다. 이름조차 그들의 장원이라는 뜻의 그곳은 반경의 천도 이후부터 조성되기 시작해 상 왕조가 끝날 때까지 지속됐다.

‘중(中)’자 형으로 조성된 각각의 묘들은 모두 왕의 묘로 추정되는데, 그중 1기는 후대 무정 왕의 묘로 확인되었다. 묘에는 갖가지 진귀한 기물이 부장품으로 묻혀있는 것은 물론, 순장된 신하와 비빈·노예의 인골이 무더기로 발견되어 현실에서의 화려한 영화를 명계(冥界)로까지 가져가려던 집착을 엿볼 수 있게 한다.

   
또 그들의 묘 곁에는 수많은 제사갱이 있는데, 각 갱에는 10여 명 안팎의 노예 인골이 묻혀있다. 그것은 제사를 지낼 때마다 제물로 매장한 것으로, 신권을 장악한 왕권의 위세를 생생하게 보여주는 역사의 증거이다. 지난 연재에서 보았던 사모무정(思母戊鼎)의 경우도 ‘사’는 제사를 지낸다는 뜻이고, ‘모무’는 묘호(廟號)로서 모무에게 제사를 지내기 위해 주조했다는 것을 명문으로 새겨 넣은 것이었다.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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