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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현의 중국인 이야기 <16> 자원 확보의 교두보, 반룡성

무기 필요했던 상족, 청동기 구하러 남으로 남으로

  • 디지털콘텐츠팀 inews@kookje.co.kr
  •  |   입력 : 2019-06-09 18:51:40
  •  |   본지 1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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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나라 왜 남하했는가

- 당시 도읍 은허 자리였던 허난성
- 구리·아연 있었지만 매장량 적어
- 장강 남쪽에 금속 광산 찾아내

# 반룡호 기슭 성곽 건립

- 장강 터전 잡은 치우 후손과 거래
- 반룡성 세워 외세 칩입 막아주고
- 무기 원자재 안정 공급 약속받아

# 가장 오래된 구리광산 발견

- 장강 인근 대야호반 위치 동록산
- 은 천도 전 조을왕부터 구리 채굴

- 인근 마을선 상 중기 유물 나와
- 장강 북쪽 상과 교류한 흔적 확인

고대에 금은 황금만을 지칭한 것이 아니었다. 한나라 때인 서기 90년 경 저술된 ‘한서(漢書)’는 ‘금은 다섯 가지 쇠붙이를 일컫는다. 누런 색은 금, 흰색은 은, 적색은 구리, 푸른 색은 아연, 검은 것은 철이라 한다’고 기록한다. 각각으로서는 강도가 약한 금속이지만 구리에 아연이나 주석을 혼합해 청동을 만들며 문명을 한 단계 진화시켰다.
   
상대 중기인 기원전 1500년께부터 구리 원자재를 채굴한 것으로 밝혀져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구리광산으로 인정받는 중국 허베이(湖北)성 대야(大冶)시 인근의 동록산 광산.
중국에서 청동기 개화기는 상나라 시기다. 은허에서 출토된 도가니와 주형(鑄型)으로 추정하면 100㎏이 넘는 청동기 제작도 흔했고 발굴된 유물의 양도 엄청나다. 심지어 정(鼎) 안에 ‘사모무(司母戊)’라는 글자가 있어 ‘사모무정’으로 불리는 네 발 솥은 그 무게가 875㎏에 달해 놀라운 주조기술을 보여준다. 어떻게 기술 발전을 이룬 것이며, 무엇보다 원자재는 어디서 확보한 것일까?

■세계 최고(最古) 구리광산 동록산

   
1954년, 장강과 면한 후베이(湖北)성 성도(省都) 우한(武漢)시 북쪽 황피구(黃陂區)의 작은 호수 반룡호(盤龍湖) 기슭에서 옛 성지(城址)가 발견됐다. 이른바 반룡성(盤龍城)이다.

사방 모두 성벽을 쌓은 성 안에는 북쪽에서 남쪽 방향으로 배열된 두 곳의 대형 건물 터가 있고, 성 밖에는 일반주거지역과 묘지, 수공업구역 등이 있었다. 조사 결과 기원전 1500년 무렵, 상이 은으로 천도하기 전에 구축된 것으로 밝혀졌다.

상이 비교적 안정적 체제를 구축해 그 흔적을 또렷하게 남긴 것은 은으로의 천도 이후이고, 그전에는 잦은 천도 등에서 알 수 있듯 기복이 심했다. 그런데 주된 세력이 허난성 일원에서 불안정한 체제로 권력을 유지하고 있었음에도 수백 ㎞나 떨어진 장강 변에 성을 쌓고 장기적으로 머물렀다는 것은 자못 의미심장하다. 특히 반룡성에서는 상 왕조 최대 크기의 청동도끼 월(鉞)이 출토되었다. 월은 단순한 병기가 아니라 왕으로부터 일정한 권력을 위임받았음을 상징하는 예기이다. 왕의 명을 받은 신하나 제후가 그 지역을 왕권으로 다스렸다는 의미인 것이다. 그들은 왜 그처럼 먼 곳까지 나아가 주된 세력보다 더 견고한 성을 쌓고, 과하게 말하자면 이동에 익숙한 족의 성향과 달리 장기적 주둔을 꾀한 것일까? 아무래도 장강 너머와 관련이 있을 듯하다.

반룡성에서 장강을 건너면 남동쪽에 동록산(銅綠山)이 나온다. 허베이성 대야(大冶)시 대야호반 인근으로, 1973년 그곳 동록산 광산 채굴과정에서 청동도끼(銅斧) 등과 함께 고대 제련장 유적이 발견되었다. 조사 결과 은으로 천도하기 전인 조을왕 대에 이미 동을 채굴해 세계적으로 가장 오래된 구리광산임이 밝혀졌다. 또한 이후로도 서주(西周)·춘추전국·남송·청대는 물론 중일전쟁 시기에는 일제까지 채굴해 갔음에도 여전히 풍부한 매장량을 자랑하는 세계적인 규모이고, 지금도 인근에 여러 종류의 금속 광산이 산재해있다. 황허유역의 왕 조을이 어느 날 문득 장강을 건너와 광산을 발견하고 채굴하지는 않았을 테니 이미 그전부터 누군가 구리 등의 광물을 생산하고 있었을 것이다. 가까운 지역의 부족 혹은 방국(邦國) 세력을 찾아보지 않을 수 없는 이유다.

■신감유적과 오성유적의 차이

   
이 동록산에서 북쪽 장강 너머인 우한(武漢)시 반룡호 변에 자리잡은 반룡성 유지.
과연, 동록산에서 조금 더 남쪽으로 내려가 장시(江西)성 성도 난창(南昌)시를 지나면 신간(新干)현이 나온다. 1989년 그곳 대양주(大洋洲) 마을에서 저수지를 건설하던 중 분묘를 발굴했는데 ‘상대대묘(商代大墓)’로 명명했다. 상 중기 양식의 각종 예기와 권력의 상징인 부(斧), 월 등의 청동기 유물이 발굴되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함께 발굴된 옥기 등의 다른 유물은 지역 토착 문화인 장강유역 양저(良渚)문화 양식을 이어받은 것이고, 당시 그 지역에는 신감국(新淦國)이 있어 ‘신감대묘’로도 불린다. 장강 북쪽 상과 교류한 문화와 토착문화가 혼재한 것이다.

관련하여 또 하나 주목할 것은 상대대묘에서 서쪽으로 약 20㎞ 떨어진 장수(樟樹)시 청강(淸江)현의 오성(吳城) 유적이다. 이 오성 유적의 유물은 남방 토족(土族)의 문화 양식으로 신감대묘 옥기 등의 유물과는 유사한 양식을 보이지만 상대 양식의 청동기는 없다.

신감국은 상대보다 훨씬 이전에 남방으로 내려와 인근 부족과의 교류에서 영향을 받아 독자적인 문화양식을 만들었지만 북쪽의 상족과도 일정한 연결을 지속한 것으로 볼 수 있는 것이다. 그것은 신감국 청동기 유물 중에 궤(簋:제사에서 곡물을 담는 그릇), 작(爵:술잔), 가(斝:술병의 일종) 등의 예기는 보이지 않아 이미 예법의 상당한 변형을 짐작할 수 있는 점으로도 추정 가능하다. 그렇다고 신감국의 청동기 양식이 전적으로 상으로부터 전해 받았다는 뜻은 아니다. 신감국의 청동기 유물 중에서 병기류는 오히려 상보다 앞선 강력한 것으로 그 독자성을 또렷이 나타내기 때문이다.

그럼 ‘사기’ 등의 사서(史書)에 아직 등장하지 않는 장강유역, 또는 그 남쪽 세력이 청동기 주조 기술 등에서 훨씬 앞서있던 것일까? 당시 황허유역의 주류 세력은 상족이었으니 비교하면 그럴 수도 있다. 더구나 신감국의 동면구(銅面具)는 앞서 3, 4회 연재에서 보았던 쓰촨성 산싱투이(三星堆)문명의 면구와 상당한 유사성을 보인다. 험준한 산악에 둘러싸인 쓰촨 분지는 장강을 통해 동서로 교류하기에 용이하다는 점을 고려하면 불현듯 등장한 산싱투이문명 주인공의 수수께끼도 얼핏 짐작할 수 있을 듯하다.

■반룡성의 진실

   
동록산 채굴 과정을 재현한 모습이다.
우 임금이 구주(九州)를 개척했다는 이야기는 그가 세웠다는 하나라가 허난성 언사 언저리의 작은 영역에서 그 명운을 다했으니 아무래도 믿을 수 없고, 후대 사가들이 당대(當代)의 영역을 근거로 역사 만들기를 한 것으로 볼 수밖에 없다. 하를 이은 상 역시 구주에는 턱도 없이 못 미치지만 영역을 넓혀가는 과정으로, 다음 회에 보겠지만 장강 유역 낯선 종족과의 교류는 수월하지 않았다. 그런데 반룡성을 거점으로 신감국 등 일부 세력과의 청동기 교류는 우호적이었다면 다른 까닭이 있지 않았을까?

황제 세력에 패한 염제 세력의 남쪽으로의 이주는 앞서 살펴본 바 있다. 또 허베이성 들판의 ‘탁록지전(涿鹿之戰)’에서 패한 치우 세력의 일부도 남쪽으로 흩어졌다. 그렇지만 여전히 동이라 불리던 옛 터전에서 떠돌던 그들 중 상족은 기어이 하족의 주 세력인 걸에 대한 정벌로 허난성 일원의 주도권은 장악했지만 여전히 지속되는 반발로 체제는 그리 안정적이지 못했다. 그런 그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강력한 무기를 생산할 수 있는 구리와 주석, 아연 같은 청동기 원자재였다.

   
반룡성의 건축물 모형도
허난성 일원에도 원자재 광산은 있었다. 그러나 매장량이 그리 많지 않은데다, 인근에 산재한 다른 동이 부족들과의 치열한 경쟁 등으로 충분히, 안정적으로 공급받기 어려웠다.

눈길을 돌리니 장강 남쪽에는 양질에, 매장량까지 넉넉한 구리 등의 금속 광산이 많았다. 하지만 남방의 다른 환경과 물에 익숙하지 않은 상족으로서는 그림의 떡이었다. 다행히 그들 지역에는 우호적인 염제 혹은 치우의 후손들이 안정적인 터전을 잡고 있었다. 협조와 거래를 요청해 구리 등 원자재를 공급받되 장강 건너 남쪽에 성을 세워 불안을 느끼게 하지는 않겠다고 약속했고, 그 마지노선이 반룡성이었다면?

물론 추론일 뿐이다. 그렇지만 상나라 대에 화려하게 꽃 핀 청동기 문화의 이면에는 원자재 확보를 위한 각축과 협력이 있었던 것은 분명하다.


# 뗀석기·황금·청동기… 전략물자들, 문명의 걸음 재촉하다

- 석기시대·산싱투이·상나라 등
- 원거리 수송에 많은 인력 동원
- 감독관 생겨나고 노예도 등장

인류의 발전에는 반드시 당대의 전략물자라 할 무엇이 있었다. 석기가 그 시작이라면 비웃겠지만 그때는 그랬다. 또한 아무리 하찮게 보여도 원자재 확보에는 희생이 따랐고, 반발을 억누를 권력이 있었다. 아직 전쟁이라고까지 할 수는 없겠지만 그 승자들이 문명의 걸음을 재촉했다.
   
반룡성 터에서 출토된 동월(銅鉞) 및 면구(面具·1 2 3)와 신감대묘에서 출토된 유물인 신인수면동두상, 와호입이편족정, 대월(4 5 6) 그리고 은허서 출토된 사모무정(7).
석기시대의 뗀석기도 발에 차이는 돌이라고 아무 것으로나 만들어지는 게 아니었다. 쪼개면 날카로운 빗면이 형성되는 돌은 따로 있고 그런 석재는 특정 지역에 한정되었다. 사람이 거주하기에는 마땅치 않은 지역이지만 중요한 도구의 원자재로는 꼭 필요하니 1차 가공으로 크기와 무게를 줄여 수송해야 했다. 무리의 구성원 중에서 손재주가 있거나 힘이 센 사람이 맡아야 했다. 아주 고된 역할인 것이다.

산싱투이의 그 엄청난 양의 황금은 어디에서 생산된 것일까? 아무런 기록도, 어렴풋한 구전(口傳)조차 없다가 수천 년이 지난 어느 날 불쑥 모습을 드러내 세상을 놀라게 한 산싱투이문명은 얼마 뒤 쓰촨성 청두(成都) 시내 서쪽에서 또 다른 황금문명으로 이어진 것이 밝혀졌다. 이른바 금사(金沙)문화다. 그런데 청두평원에는 금 생산지가 없다. 가장 가까운 곳이 200㎞ 이상 떨어진 금사(金沙)강 유역으로, 고대로부터 사금(沙金) 산지로 유명하다. 생산과 운송을 맡을 인력이 따로 있었을 것은 분명하고, 감독하는 무력도 반드시 필요한 일이었다.

상나라 시기 구리와 주석 광산 분포도를 보면 장강 유역이 훨씬 많고 매장량도 풍부했다. 그런데 상나라 초기의 정주상성이나 반룡성 등에서 발굴된 청동기에 포함된 납 성분은 다른 지역 유물에 비해 동위원소 비율이 아주 높게 나타난다. 신감대묘와 산싱투이에서 발굴된 청동기 납 성분의 동위원소 비율도 그와 같다. 그들 납의 출처는 단정 지을 수는 없지만 윈난성 동부나 구이저우(귀주)성 서부일 가능성이 높다. 두 지역에 동위원소 비율이 높은 납 광산이 있었기 때문이다. 기술 역시 풍부한 자원에서 발전의 속도가 빨랐을 것이다.

   
황허유역의 새로운 주인이 된 동이세력 상족은 이전 하나라 세력과는 완전히 다른 행보였다. 창강유역 세력과 교류하며 원자재를 확보하고, 창강 하류유역 세력은 상류 쓰촨성의 고대 주역들과 연결되고, 그 고리에는 염제 혹은 치우의 후손들이 있었다. 인간을 노예로 삼아 잔혹하게 다루기도 한 이들이었다.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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