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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현의 중국인 이야기 <13> 상족, 갑골에 문자를 남기다

동이 문자 ‘갑골문’ 3000년 만에 한자 뿌리로 밝혀지다

  • 디지털콘텐츠팀 inews@kookje.co.kr
  •  |   입력 : 2019-05-19 18:59:06
  •  |   본지 1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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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갑골문, 세상에 빛을 보다

- 淸 농부, 한약방에 판 거북껍질
- 학자 왕의영 용골 구하다 발견
- 절친인 유악, 갑골문집 출판

# 상나라 문 여는 핵심 열쇠

- 갑골 조각 위에 질문들 새겨
- 국가 중대사 점 쳐 하늘 뜻 물어
- 의지대상 필요한 수렵성향 방증

# 사물모양 본 뜬 상형문자

- ‘젖 유’ 젖 먹이는 어미 형상화
- ‘하늘 천’ 사람의 머리 위 나타내
- 자연과 사물 본 떠 관념 표시
- 은허선 갑골 유물 다량 발견

상 나라 19대 왕 반경은 형 양갑을 뒤이어 제위에 오르자 천도를 결정했다. 제위에 오르는 과정에서 분규가 있었고, 기강이 나태해진 나라의 면모를 일신하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백성은 천도의 번거로움을 들어 귀족은 귀족대로 안락한 현상 유지를 위해 반대했다. 이에 반경은 두 편의 훈고(訓詁)를 지어 발표했다. 백성과 관리를 대상으로 하여 천도의 당위성과 장점을 설명하며 다독이는 내용과 귀족을 대상으로 하늘의 뜻을 들어 성실히 따를 것과 복종하지 않을 경우 제재가 가해질 것임을 경고하는 위협이었다.

마침내 기원전 1300년경 당시 도읍이었던 엄(곡부)에서 은(殷, 지금의 허난성 안양시)으로의 천도가 이뤄졌고 이때부터 나라 이름을 은으로 불렀다. 그러나 새로운 곳에서의 생활에 적응하지 못한 백성, 특히 귀족들의 반발은 여전했다. 반경은 다시 훈고를 지어 달래면서 억눌렀고, 몇 해가 지나자 비로소 안정됐다.

■왕의영 3000년 만에 갑골문자 발견

   
상 나라는 기원전 1300년께 엄(곡부)에서 은(허난성 안양시)으로 천도했는데, 3000여 년이 지난 청나라 말기에 은허에서 한자의 뿌리로 밝혀진 갑골문이 새겨진 거북 등껍질과 동물뼈가 무더기로 발견됐다. 거북 등딱지의 복사.
청(淸)말인 1899년 산둥(산동)성 복산 출신의 왕의영(王懿榮)이 국자감 제주(國子監祭酒, 황가대학교장(皇家大學校長))로 재직할 때 학질을 앓았다. 여러 약을 썼으나 차도가 없던 중 베이징의 한의사가 처방전을 보내왔다. 처방에는 용골(龍骨)이라는 약재가 포함돼 있었다. 왕의영은 선무문(宣武門) 밖 달인당(達仁堂) 약재상으로 사람을 보내 약을 사왔다. 그런데 약재에 포함된 용골에 전서체(篆書体) 비슷한 글씨가 새겨진 것을 발견하고 오래된 고문자일지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기왕에 금석학자였고 골동품 감정에 일가견이 있는 데다 청동기에 주조된 명문을 연구하고 있던 차였다. 그는 곧바로 베이징의 약재상과 골동품상을 통해 용골을 사들이기 시작했다.

앞서 안양시 소상둔(지금의 소둔촌) 사람들은 조상 때부터 밭을 갈며 거북 등껍질이나 동물의 뼛조각을 발견했지만 소홀히 여겼다. 이성(李成)이라는 이발사가 옴에 걸렸는데 약을 살 형편이 못돼 만월(滿月) 강가에 버려진 뼛조각을 주워 가루로 만든 다음 발랐더니 효과가 있었다. 그는 즉시 뼛조각들을 모아 약재상에 팔았고, 약재상은 ‘본초강목(本草綱目)’에 나오는 ‘용골’로 여겼다. ‘본초강목’은 명 나라 때 의약학자 이시진(李時珍)이 지은 책으로, 용골은 맛이 달고 담담하며 피를 멈추고 피부를 생성시키며 부패를 방지할 수 있다고 기록한다. 여기서의 용골은 오래된 화석을 말하는데 갑골을 그것이라 보기는 어렵다.

아무튼 1년 동안 1000여 점의 갑골문을 수집해 연구에 박차를 가하던 왕의영은 1900년 ‘의화단(義和團)사건’ 여파로 영국 프랑스 등 8개국 연합군이 베이징을 공격해온 사건을 지켜보며 청 왕조의 무능과 부패에 분노하여 스스로 우물에 뛰어들어 자살했다. 그러나 세상과 조우할 갑골문의 운명은 왕의영을 대신할 유악(劉鶚)을 준비해두고 있었다. ‘노잔유기(老殘游記)’라는 소설로도 유명한 그는 이미 금석문을 공부하며 왕의영과 교우하고 있던 중이었다. 유악은 왕의영이 생전에 남긴 갑골을 모두 매입하고, 자신의 아들을 허난(하남)성 일대로 보내 5000여 점의 갑골을 더 수집했다. 뒷날 그중 1058개의 탁본을 찍어 중국 최초의 갑골문집인 ‘철운장귀(鐵雲藏龜)’를 출판했다. 여기서 ‘철운’은 그의 자(字)로, 자신이 소장한 갑골이라는 뜻이다.

   
사물이나 자연의 형상을 문자로 표시한 갑골문.
■한자의 원형, 상형문자 갑골문

먼저 갑골문 몇 자를 살펴보자. 갑골문 1의 ‘임금 왕(王)’은 천지 간을 세우는 사람이 왕으로서, 왕권이 하늘에 다다랐음을 나타낸다. ‘종족 이름 강(羌)’은 양치는 사람을 형상화한 것으로 고대 칭하이(청해)성 일대에서 양을 잘 치는 강족을 이른다. ‘젖 유(乳)’는 젖을 먹이는 어미를 형상화한 것이다. ‘종 노(奴)’는 여자가 지시를 받아 쓰임에 사용되는 형상이다. ‘지낼 역(歷)’은 곡식 ‘화(禾)’를 여러 번 경작하여 거둬들인다는 의미가 기원이다. ‘곧을 직(直)’은 목공이 직선을 내려다보는 형상이다. ‘하늘 천(天)’은 사람의 머리 위를 나타내고 맨 위의 가로 획(一)은 하늘을 대표한다. ‘편안할 안(安)’은 부녀자가 집안에 있는 형상이다.

갑골문 2의 ‘뫼 산(山)’ ‘불 화(火)’ ‘내 천川’ ‘곡식 화(禾)’ ‘귀 이(耳)’ ‘가죽 피(皮)’ ‘술 주(酒)’ ‘모래 사(沙)’ ‘합할 합(合)’ 등도 윗부분 그림을 참고하면 금방 의미를 알 수 있다. 전형적인 상형문자로써 자연과 각종 사물의 형상을 본떠 관념을 표시한 것이다.

   
동물 견갑골의 복사.
의아한 것은 상 나라 대에 이르러 상족에 의해 사용되기 시작한 갑골 유물이 은허(은 나라 유지)에서는 다량 발견된 데 비해 이전 상 유적에서는 지금껏 정주상성에서 발견된 두 점 정도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그런데 갑골에 기록된 문자는 연구 결과, 이전까지 그리 신뢰하지 않았던 ‘사기’ 은본기의 왕조 세계가 거의 정확하다는 것을 입증한다. 즉 문자로서의 기능을 제대로 가졌고, 체계적인 분석이 가능할 정도의 기록을 남겼다는 것이다.

   
무더기로 발견된 갑골복사.
은허에서 주로 발견된 갑골복사(甲骨卜辭)는 점을 친 기록들이다. 거북의 등딱지나 큰 짐승의 견갑골 등에 여러 개의 구멍을 뚫어 열을 가한다. 구멍을 뚫는 것은 그렇게 하면 더 잘 터지기 때문이다. 무엇인가를 묻고 기원하는 동안 열을 받은 갑골은 어느 순간 터지고 갈라진다. 그러면 그것을 신의 답으로 여겨 해석한다. 그리고 그 해석의 내용을 갈라진 옆이나 뒷면에 기록해둔 것이 갑골복사이다. 덕분에 후대 사람들은 그것으로 당시를 엿볼 수 있게 된 것이고 그 기록의 문자를 갑골문이라 이른다.

■점과 제사의 나라, 상

   
은허의 상상 모형도다. 강을 해자 삼아 성을 대신했고, 아직 기와가 발명되지 않았던 때라 짚으로 지붕을 이었다.
지난 회에서 보았지만 상족은 신을 숭상하고 제사를 중하게 여겨 사람을 제물로 바칠 정도였다. 그들은 중요한 매사를 점을 쳐 하늘의 뜻을 묻고 따랐다. 여기서 말하는 하늘은 신령이다. 오늘날 우리가 말하는 종교의 신은 아니라는 것이다. 하늘과 땅의 정령,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조상의 영령이었다. 바꿔 말해 그들은 귀신을 믿었던 것이다.

짐승의 뼈를 이용해 점을 친 것이 상대가 처음은 아니다. 신석기시대의 유사한 유물이 발견된 바도 있다. 그렇지만 하의 경우는 확실히 다르다. 우선 하의 유적에서는 갑골이 발견되지 않았을 뿐 아니라 그들의 통치에 신의 뜻을 물어 따랐다는 기록도 보이지 않는다. 아마도 족(族)이 다른 때문이었을 것이다.

상은 유목, 즉 수렵목축민적 성향이 강한 족이었다. 성향이란 것은 자연환경이나 외부적 요인에 의해 만들어지는 것이기도 하지만 기질과 같은 내재된 근본적 요인도 있다. 어쨌거나 정착 생활에 적응하지 못하거나 회피한다는 것은 권위에의 수긍이나 복종심이 낮았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하지만 아직 과학에 근거한 예측은 불가능한 때였으니 연륜의 경험에 따른 권위를 부인하면 그만큼 불안은 가중되기 마련이었다. 당연히 의지할 그 무엇을 찾아야 했다.

하늘과 땅, 조상의 영령에 빌면 그 덕분인지 바라는 것이 이뤄지기도 하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다. 아무래도 그저 빌기보다는 뜻을 물어 따르는 것이 더 나을 듯 싶었다. 점을 친 까닭이다. 그리고 점의 해석에 대한 기록은 바르고 그름을 확인할 수 있게 했지만 그 자체로 역사의 밑거름이 되었다.


◆중국, 황제 사관 ‘창힐’ 내세워 한자 시조로 명명

- 한자 시초 갑골문 사실 인정않고, 새 발자국 본떠 창안 합리화시킨 가공의 창조자 내세워 조상 강조
- 中 역사에 동이족 편입위한 계략

인류 최초의 문자는 기원전 2800년경 메소포타미아 남부 수메르 지역의 도시에서 자신들의 언어를 쐐기부호로 표시한 것으로 알려진다. 갑골문자의 등장을 상이 하를 멸한 기원전 1600년경으로 소급하더라도 최소 1000년 이상 뒤진 셈이다. 그렇지만 인류가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고 소통하는 것은 말로 가능하지만, 표시하여 약속으로 삼고 다른 곳으로 전달하고, 더 나아가 남기고 싶은 욕망은 말만으로는 불가능했다. 구석기시대부터 인류가 동굴 벽화나 각종 암각화 등으로 남긴 유산은 바로 그런 욕망의 산물이었을 것이다. 그러니 ‘기호’로서만 보자면 어느 한 유적이나 유물을 두고 최초 운운하는 따위가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싶다.

‘복희씨는 조수(鳥獸)의 발자국과 산천의 지리를 관찰한 뒤 가까이는 신체를, 멀리는 사물을 본떠 최초로 팔괘(八卦)를 고안했다. 이로서 천지의 법칙과 현상을 표시할 수 있게 됐다. 신농씨의 세상이 되자 새끼줄을 매듭지은 결승(結繩)으로 사물을 표시하게 되었다.’ 중국 최초의 자서(字書) ‘설문해자(說文解字)’ 서문에 나오는 이야기다.

팔괘는 일단 미뤄두고 결승으로 정보를 전달하고 무엇을 기억하는 방법은 타이완이나 오키나와, 아프리카 등지에서 지금도 행해지고 있으니 고대 중국에서 행해졌을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결승(결승문자)을 온전한 문자로 볼 수는 없고, 중국에서는 황제(黃帝)시기에 이르러 사관(史官)이던 창힐(倉頡)이 문자를 창제한 것으로 다음과 같이 전한다.

‘창힐은 조수의 발자국을 보고 문양에 따라 사물을 구별할 수 있음을 알고 유사함에 의거하여 모양을 본떴다. 이를 ‘문(文)’이라 하고, 모양과 소리를 덧붙여 ‘자(字)’라 한다. ‘문’은 물상의 근본이고, ‘자’는 증식하여 점차 많아지는 것을 말함이다.’

중요한 모든 것에는 창조자가 있어야 하고, 더욱이 그는 자신들의 조상이어야만 하는 중국인이다. 그런데 한자는 갑골문을 원형으로 발전된 것이고, 그 이전의 다른 문자의 흔적이 발견된 바도 없다. 결국 한자의 시초가 갑골문이라는 명확한 사실은 얼버무리고 창힐이라는 가공의 창조자를 내세운 것이다. 일찍부터 세상의 중심은 자신들이고, 하의 역사를 이었던 상의 시대가 막을 내린 뒤에도 여전히 ‘오랑캐’라는 의미의 ‘동이’를 거두지 않았던 때문일 것이다.

   
동이족 문명의 증거가 속속 발견되자 베이징대학과 국립타이완대학 총장을 역임한 푸스녠(傅斯年)은 동쪽에서는 동이가, 서쪽에서는 하족이 각각 황허문명을 창조했다는 ‘이하동서설(夷夏東西說)’을 내놓았다. 동이가 동쪽 황허문명의 주인이라는 사실은 분명한데 하족과 한통속이 되는 것은 아무래도 억지스럽다. 다음에 다시 따져보자.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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